빈 상가 즐비…유령도시처럼 썰렁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20년 가까운 쇠락의 세월은 디트로이트의 도심을 슬럼가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영화 <8마일>에 나오는 뒷골목 힙합 문화의 배경이 바로 디트로이트 도심 8마일을 분기점으로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역이고, <로보캅>에 나오는 살벌한 풍경도 디트로이트가 무대다.

디트로이트의 슬픔은 디트로이트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우드워드 애비뉴를 따라 북쪽 번화가로 올라가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GM 본사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구장, 전설적인 챔피언 조 루이스를 기리는 주먹 동상 <피스트>와 25피트 높이의 <즐거운 녹색 거인> 청동상, 뉴욕의 문화를 연상시키는 ‘디트로이트 미술관’과 ‘팍스’ 영화관. 신구 건물이 과거의 영화와 최근의 경제력을 반영하는 번화가는 그러나 한산하다. 지난 5월5일 오후 2시, 비즈니스가 한창일 이 시간에도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건물을 조금 자세히 둘러보니, 번화가 1층의 황금 위치 매장에도 ‘싼 렌트’라는 광고전단이 붙어있고, 자물쇠가 채워진 채 이미 오래 방치돼 먼지가 뽀얗게 쌓였다.

도시는 이제 심장부까지 죽어가고 있지만, 활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디트로이트 지역 언론은 GM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디트로이트의 본사를 이전해 외곽의 기술센터와 합칠 것이라는 보도를 하고 있다. GM의 프리츠 핸더슨 최고경영자(CEO)는 기자회견에서 이 질문을 받고 “우리는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있다”면서도 “아직 본사 이전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 답변에도 디트로이트 시민들은 전혀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젠 몸으로 알기 때문이다.

GM의 몰락으로 지역경제가 동반 침체하는 모습은 이제 디트로이트를 넘어 미시간 주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GM 본사에서 나와 75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40여 분 달리면 GM의 폰티악(Pontiac) 브랜드를 생산하는 폰티악시가 나온다. 이 도시 역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일부 선술집과 아이스크림 가게를 빼곤 상점들이 문을 닫고, 임대중이라는 간판만 무성하다. 인구 5만 명가량의 도시 전체가 이미 큰 짐을 옮기고 나머지 짐만 남겨둔 이사 가는 집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도시에 다시 새 짐이 들어올 가능성은 사라졌다. GM은 지난 4월27일 자구 노력안을 발표하면서 ‘폰티악’ 브랜드를 정리 명단에 포함시켰다. 폰티악 브랜드의 사망선고는 미국인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1926년 도시 이름을 따서 탄생한 폰티악 브랜드는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상징했다. 1960년대 폰티악 GTO는 고성능 엔진으로 스포티한 힘 좋은 차를 상징하는 ‘머슬카(muscle car)’ 시대를 열었다.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78년에는 한 해 89만6980대가 팔렸다.

특히 GTO모델은 4.6초 만에 시속 60마일 속력을 내면서 마니아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존 울코노비츠 HIS글로벌인사이트 애널리스트는 “폰티악은 당시 산업에서 가장 열망 받는 브랜드였다”고 말한다.

머슬카는 1970년대 들어 연비에 대한 규제가 도입되고, 보험료가 높아지면서 급격히 쇠퇴했지만, 폰티악은 1980년대 말 ‘그랜드 AM’ 모델을 생산, 특히 젊은 블루칼라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폰티악은 급격히 몰락했다. 폰티악은 ‘아즈텍’이라는 SUV모델을 생산했는데, 이 차는 ‘디트로이트 사상 가장 볼품없는 차’로 평가된다. 그저 딜러들에게 공급차종을 늘리고, SUV가 이윤이 많다는 이유로 생산한 아즈텍은 ‘계산기만 두드려 결정하는 GM 관료주의의 결정판’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전성기였던 1978년에 90만 대를 생산했던 폰티악은 지난해 26만7300대로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폰티악은 올 1분기에는 불과 4만2000대를 생산해 전년 동기 대비 44%나 줄었다.

디트로이트, 폰티악으로 이어지는 쇠퇴의 전염은 이제 디트로이트 북부 워런으로 옮겨갔다. 이곳에서는 크라이슬러 ‘닷지 램’과 ‘닷지 다코다’등을 생산했었다. 그러나 크라이슬러가 지난 4월30일 파산보호신청을 함에 따라 트럭 조립공장 등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도시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초만 해도 2700여 명의 근로자가 3교대로 근무했다. 하지만 3개월 전 2교대로 줄었고 그나마 한달 전에는 종업원 수가 1교대 700명으로 감소했다. 이들 공장은 크라이슬러가 부실을 털어내 새로운 크라이슬러로 되살아난 이후에나 다시 가동에 들어갈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전망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주민들 대부분은 이미 마음이 떠나 있다.

 만약 GM마저 크라이슬러를 쫓아 오는 6월1일 파산보호신청에 들어가면 미시간과 인근 주들은 결정타를 맞으며 감원과 실직, 부도와 점포 폐쇄의 회오리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냉정한 경제법칙은 잘 나갈 때 뒤를 돌아보며 앞을 대비하지 않은 게으름과 오만함을 잔인하게 벌주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와 기아차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다.

매릭 매스터스 웨인주립대 경영학교수 겸 노동연구소장

“GM·크라이슬러 몰락 주범은

  관료주의 빠진 오만한 경영진”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웨인주립대의 매릭 매스터스(Masters) 경영학 교수 겸 노동연구소장은 지난 5월5일(현지시각) 인터뷰에서 크라이슬러와 GM의 청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미국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GM과 크라이슬러가 현재의 위기에 봉착한 것은 ‘강성 노조’보다는 관료주의에 빠진 오만한 경영진에 절대적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크라이슬러가 파산보호신청에 들어갔고, GM도 크라이슬러의 뒤를 따를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두 회사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두 회사가 어떤 형태로든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번영할지는 의심스럽다. 크라이슬러의 경우 지난해 170억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크라이슬러는 2012년에는 흑자를 보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지만 매우 낙관적인 계획이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는 등 여러 가정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미국 소비자들이 금세기 초처럼 1700만 대의 차량을 소화할 수는 없다. 아마 상당기간 1200만~1300만 대 정도의 수요만 있을 것이다.”

크라이슬러가 청산될 수 있다고 보는가.

“가능성이 있다. 크라이슬러가 청산되고 다른 회사가 (자산 등을) 인수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자동차 업계 내에 통합이 일어난다. 미국 회사뿐만 아니라 글로벌하게 발생할 것이다.”

GM도 청산될 수 있는가.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GM은 아직 먼 길을 가야 한다. 비용구조를 개선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제품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가 살아나는 것과 사람들이 (GM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별개다.”

미국인들이 GM에 쏟는 애정과 중요성 등을 고려할 때 최소한 GM을 청산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불가능한 것은 없다. 1950년대에는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들이 살고 죽는 것은 현실이다. 미국 정부가 영원히 GM을 지탱할 수는 없다.”

두 회사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됐는가.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글로벌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제의 거인이었다. 2위와도 경제력이 8배나 차이가 났다. 당시 미국 자동차 산업은 세계를 지배했다. 빅3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1986년까지도 72%에 달했다. 지금은 50% 이하로 떨어졌다. 1960년대 미국 자동차 업계는 미래에 대한 예지력을 잃었다. 특히 GM은 관료주의적 괴물이 됐다. 이득이 남지 않는 자동차를 계속 생산하면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차를 생산하는 데 실패했다.”

관료주의가 두 자동차 회사 실패의 유일한 이유인가.

“관료주의는 나쁜 경영의 줄임말이다. 올바른 차종과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만드는 데 실패했고, 비용은 계속 부풀어 올랐으며, 지탱할 수 없는 혜택을 주는 계약을 노조와 체결했다.”

두 회사가 실패한 데는 높은 임금과 지나치게 관대한 혜택을 요구해온 강성노조의 존재도 큰 요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데.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쌍방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GM의 실패를 노조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마치 여우 앞에서 양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 UAW는 제품을 디자인하지도 않았고, 마케팅 하지도 않았으며, 공장을 세우지도 않았고, GM의 오만함을 대변하지도 않았다. 물론 UAW의 계약이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비용을 회사에 지우는 부분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은퇴한 노동자들의 건강보험과 연금을 회사 측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어 회사 경쟁력 측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따져보면 적은 부분이다. 물론 노조가 지고 있는 여러 문제를 최소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일본 등 외국 자동차에 비해 생산성과 질이 떨어지고, 가격과 비용, 지탱할 수 없는 높은 임금 등이 모두 결합해서 미국 자동차 실패의 요인이 되었다. 미국 전체로 보면 2000년 144만 개이던 자동차 업계 일자리가 지난해 100만 개 이하로 떨어졌다. 이들 일자리도 상당부분 외국계 자동차 회사에서 제공한 것이다. 미국 자동차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