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월가’서 생존, 2분기 최대 순익
 ‘월가의 황제’로 군림해온 골드만삭스가 금융위기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놀라운 2분기 실적으로 다시 월가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7월14일(현지시각)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2분기 실적은 시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골드만삭스는 2분기에 34억4000만달러의 순익을 냈다. 주당 4.93달러의 순익이다. 이는 골드만삭스가 2008년 한 해 동안 거둬 들인 전체 순익보다 많다. 단순히 허리띠를 졸라매어 낸 이득이 아니라 경제 침체의 와중에서도 공격적인 영업으로 매출을 늘린 덕분이다. 매출 규모가 138억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6%나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47달러까지 떨어졌던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155달러를 넘어섰다.

골드만삭스의 뛰어난 영업실적은 폐허가 된 월가에서 살아남은 자가 누리는 혜택이기도 하다.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 월가 투자은행의 거물들이 사라지면서 골드만삭스는 주식·채권·통화·상품 트레이딩 부문에서 시장 점유율을 급속히 늘리고 있다. 가령 주식 인수 영업에서 골드만삭스는 12%의 시장 점유율로 2위에 올라섰다. 금융위기 전인 2007년 2분기 당시 골드만삭스의 순위는 이 부문 5위였다. 주식 인수가 늘면서 주식 트레이딩도 따라서 늘었다. 골드만삭스의 주식 트레이딩은 32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 전분기 대비 59%, 전년 1분기 대비 28% 증가했다.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골드만삭스는 여러 분야에서 쉽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유에스뱅코프 은행은 지난 5월 주식공개를 추진하면서 주인수 금융기관으로 골드만삭스를 선정했다. 금융 데이타 제공기관인 딜로직에 따르면, 유에스뱅코프는 그동안 씨티그룹이나 리먼브러더스를 주식공개 주인수 기관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들 금융기관이 사라지거나 크게 흔들리면서 5년 만에 처음으로 골드만삭스로 파트너를 바꾼 것이다.

로이 스미스 뉴욕 대 교수는 “골드만삭스는 지금 해변에 나와 있는 몇 안 되는 남자 중 하나여서 모든 여자들을 데려가고 있다”고 비유했다.

폐허의 월가에서 골드만삭스가 누리는 독보적인 지위를 <비즈니스위크>는 “100년 만의 홍수가 휩쓸고 간 마을에 유일하게 마른 통나무 야적장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고객들이 이제 다시 비즈니스를 하기위해 돈을 들고 올 때 골드만삭스는 마음대로 가격을 부르면서 물건을 팔고 있다는 것이다. 주택 버블 붕괴에 미리 대비하면서 서브프라임 위기를 피해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위험이 적은 채권 등을 들고 장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골드만삭스도 금융위기의 쓰나미가 지구를 덮칠 때 이를 피하지는 못했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의 몰락 이후 과연 투자은행이 살아남을지 의심받는 상황에서 골드만삭스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긴급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했다. 유동성 위기를 피하기 위해 미국 재무부의 부실자산구제계획(TARP)에서 100억달러의 자금을 지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자금원을 확보하기 위해 예금기반이 있는 상업은행을 인수하는 게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이 위기를 넘기고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로 다시 돌아갔다. 투자은행 모델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고, 지난 4월엔 58억달러의 유상증자와 21억달러의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6월엔 부실자산구제계획 자금을 조기 상환했다.

골드만삭스는 올 들어 막대한 이득을 내자, 이제는 직원들에게 사상 최대의 보너스를 줄 준비를 하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2분기 실적을 연말까지 이어간다면 올해 직원 1인당 77만달러(약 9억8000만원)의 연봉을 지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골드만삭스는 직원 보상을 위해 2분기에 66억달러를 유보했고, 상반기 급여로 113억달러를 책정해두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고액 연봉 지급 계획은 미국 의회를 술렁이게 하며 논란의 쟁점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상원 은행위원회의 쉐러드 브라운 의원은 “국민은 실업을 겪고 금융권을 살리기 위해 긴급자금을 대고 있는 와중에 골드만삭스가 큰 수익을 냈다며 보너스를 챙기겠다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선 투자은행의 성격상 성과에 따른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미국 내 대다수는 “위기 때는 납세자의 돈으로 혜택을 입은 뒤, 이득이 생기자 다시 자기들끼리 나눠먹는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골드만삭스의 2분기 실적이 과연 지속가능할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골드만삭스의 2분기 매출 가운데 절반 이상은 채권·통화·상품 트레이딩에서 나온 것인데, 경쟁자들이 구제금융을 상환하고 속속 비즈니스에 합류하기 시작하면 마진폭이 감소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신현송 프린스턴 대 교수는 “골드만삭스의 2분기 수익은 전통적인 은행업이 아닌 시장 중심의 영업에 의존해 낸 것”이라며 “1980년대 이후 800배 급신장한 증권 부문의 30년 버블이 해소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투자은행 중심의 금융사들이 계속 수익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골드만삭스의 은행자문 서비스 부문을 보면, 2분기 매출이 3억68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2007년에 비해선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또 헤지펀드의 증권·자금 거래 등을 대행하는 프라임 브로커리지 영업도 부진하다. 자기자본으로 매매를 하는 자기자본거래(proprietary trading) 역시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골드만삭스가 부담을 느끼는 것은 골드만삭스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다. 미국 음악·정치 사이트인 ‘롤링스톤’에 최근 골드만삭스를 ‘미국의 가장 큰 버블 머신’이라며 공격하는 글이 실렸다. 대공황 때 폰지 사기, 2000년 초 닷컴 버블, 2006년 주택 버블, 지난해 오일 버블 및 구제금융 사기, 지구온난화 버블 등의 배후에 골드만삭스가 있다는 다소 선정적인 내용의 글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글에 대한 찬반을 떠나 아무튼 ‘피를 빨아먹는 거대한 뱀파이어 문어 괴물’이라는 별명이 사람들의 입에 붙어 다니는 상황에서 골드만삭스가 과거처럼 자유롭게 비즈니스를 하고 거액의 보수를 지불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