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중시 경영’으로 신화창조



4세대 이통 세계 특허 15% 독점

- 2004년 부산에서 열린 ‘ITU텔레콤 아시아 2004’에 참가한 중국의 초고속통신 장비 제조업체인 화웨이 부스(왼쪽).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3세대 이동통신시스템인 ‘광대역 코드 분할 다중 접속(WCDMA)’ 방식에서 진화한 4세대 시스템 ‘LTE(Long Term Evolution)-어드밴스트(Advanced)’ 시제품 개발을 완료하고 지난 1월 25일 시연회를 가졌다. 연구원들이 LTE 시제품을 버스 안에서 시연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덩샤오핑이 중국 경제 개혁개방을 선포한 후 가장 글로벌화에 성공하고, 가장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을 꼽는다면? 정답은 가전업체인 하이얼이나 컴퓨터 PC전문 업체인 레노버, 철강 대기업인 바오산 강철 같은 기업이 아니다. 

IT(정보기술) 산업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 에릭슨 같은 기업들을 위협하면서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화웨이(華爲·Huawei)’가 그 주인공이다.

몇가지 실례를 보자.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는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 가운데 하나로 화웨이를 선정했다. 지난해 미국 경영전문지인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가 뽑은 ‘2010년 가장 창조적인 기업(most innovative company)’ 명단에서 화웨이는 페이스북과 아마존, 애플, 구글에 이어 세계 5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다. 인민해방군의 기술 장교 출신인 런정페이(任正非·67)는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부호 리스트에서 5위에 올랐고, 2006년 4월 미국 시사주간지인 타임(Time)은 런정페이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명’에 뽑았다. 

1988년 광둥성 선전에서 런 회장이 6명의 동업자들과 함께 2만위안(약 340만원)을 갖고 통신장비 대리상으로 출발한 화웨이는 20여년 만에 시골 구멍가게에서 이동통신장비 분야 세계 2위로 도약했다. 원래 수입장비 대리판매업체였으나 1993년 전화교환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네트워크 설비 및 단말기 제조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중국 산업계에서 살아있는 ‘성공 신화’로 불린다.

올해 초 현재 9만5000여명의 종업원이 근무 중이며 미국, 인도, 러시아 등 세계 17개국에 18개의 연구개발(R&D) 센터와 20개가 넘는 혁신센터를 각각 두고 있다. 총매출액은 2004년 38억달러에서 2009년 277억달러로 급증했다. 해외 매출액 비중은 총매출의 75%에 이른다. 중국 기업 가운데 이만한 회사를 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 20.6% 기록

네트워킹·통신 시장 조사 전문그룹인 ‘델 오로’(Dell Oro)의 조사에 따르면, 화웨이는 알카텔루슨트와 독일 지멘스를 추월했다. 2010년 2분기 현재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 20.6%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에릭슨(33%)과 노키아-지멘스(20.8%)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성과를 내고 있는 화웨이는 거대 자금을 지원받는 국유 기업이 아니라 정부의 지분이 하나도 없는 민간 기업이다. 오히려 전 직원이 사원지주제 형식으로 지분을 갖고 있어 번 만큼 가져가는 구조가 확고하다.  

화웨이가 욱일승천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현실적으로는 경쟁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용이 낮은 고급 R&D 인력에 의한 기술경쟁력을 꼽을 수 있다. 연간 R&D 인력 비용은 1인당 4만5000달러로 에릭슨, 노키아 같은 선진기업의 20%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장 큰 원동력은 철두철미한 ‘기술 중시 경영’이다. 

단적으로 화웨이 내에서 R&D 관련 인력만 4만3600명으로 전 종업원의 46%나 된다. 창업 후 매년 최소 총매출의 10% 이상을 R&D에 쏟아부은 결과, 화웨이는 2008년과 2009년 연속 국제특허 출원 건수 분야에서 세계 1위와 2위를 차지해 일본과 미국,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압도했다.

이는 경쟁사인 미국 시스코의 14배, 1위인 에릭슨보다 50% 정도 많은 것이다. 화웨이는 특히 4세대(4G) 이동통신기술로 주목받는 LTE(Long Term Evolution) 분야에서 세계 특허의 15%를 독점하고 있다.

- 화웨이 본사 사옥.
- 화웨이 본사 사옥.

매년 직원 중 하위 5% ‘물갈이’…경쟁 치열

대신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활력곡선(Vitality Curve)을 벤치마킹해 매년 하위 5%는 물갈이하며, 2명을 뽑으면 서로 경쟁시켜 한명은 탈락시킬 정도로 사내 경쟁 강도가 엄청나다. 런정페이 회장은 “기업이 건강하려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야 한다. 아무런 경쟁이 없는 회사는 죽은 회사”라고 말한다.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를 일절 거부하고 있는 런 회장은 인민해방군 시절 전군(全軍) 기술성과상 1등상을 받은 기술자 출신으로 ‘기술 중시’ 마인드가 뿌리박혀 있다.

2003년 이후 관련 기술업체와 파트너십을 구축해 소프트웨어, 플랫폼, 휴대전화 단말기 등 다방면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했고 핵심 고객인 보다폰뿐 아니라 부품공급업체인 인텔과 경쟁사인 지멘스, 3Com과도 합작사를 설립하는 등 적극적 개방형 시스템을 구축했다.

선전에 있는 39만평 규모의 화웨이 본사에는 중국 정부가 인증한 정식 교육기관인 화웨이 유니버시티가 있다. 이곳의 가장 큰 존재 목표는 직원·파트너·고객을 교육하며 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IBM, 액센추어 같은 컨설팅 전문업체에 의뢰해 글로벌 수준의 인사·조직·회계 시스템을 도입해 투명경영을 하고 있고 데이터센터를 통해 전 세계 지사의 네트워크 관리와 고객 서비스망 모니터링은 물론 ERP관리, 매출관리 등을 최첨단 수준으로 진행하고 있다. 

성장 전략도 독특하다. 먼저 해외 진출의 경우, 중국 국민당과의 대결 시 농촌 공략 후 도시로 치고 들어가 성공을 거둔 마오쩌둥식 전법을 응용, 기업 세계에 적용했다. 즉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도 비슷한 홍콩에 진출해 첫 성공을 거둔 다음 러시아와 남미 등 기술 수준이 다소 미약한 신흥시장에 진출했다.

세번째로 화교 인구가 많은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다시 성공을 거둬 자신감을 가진 다음 마지막으로 통신장비의 본무대인 유럽과 미국 시장을 본격 공략하고 있다. 후발 주자로서 성공을 위해 ‘주도면밀한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런 회장의 독특한 경영철학도 주목된다. 그는 장루이민 하이얼 회장의 ‘이리론’에 필적하는 ‘늑대론’을 설파하고 있다. “세계적인 통신장비 업체가 되려면 모든 임직원들이 늑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후각이 예민한 늑대처럼 제품 개발과 시장 개척·판단을 예민한 감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 절대 굴복하지 않는 늑대처럼 과감한 공격 정신을 가져야 하며, 무리를 지어 다니는 늑대처럼 임직원들이 서로 단결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그는 통신장비 이외의 사업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이를 ‘빨간색의 무용 신발’에 비유해 얘기한다. “빨간색의 무용 신발이 매우 유혹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설비 통신 이외의 사업도 유혹적이다”면서 “그러나 이 신발을 신으면 영원히 벗지 못하고 평생 춤춰야 하기 때문에 결코 이 신발을 신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이런 실력을 바탕으로 화웨이는 글로벌 IT업계에 쇼크를 잇따라 불러일으키는 다크호스로 꼽힌다. 화웨이의 파상 공세를 견디다 못한 미국 루슨트와 프랑스 알카텔이 수년 전 합병을 단행했고, 100년 역사를 지닌 캐나다 대표 기업인 노텔(Nortel)은 2009년 파산을 선언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집요한 미국 시장 진출 노력과 3Com 같은 미국 기업 인수 합병을 국가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가로막거나 견제하고 있다.

화웨이는 이제 한국 기업들까지 공격 사정권에 넣고 있다. 화웨이는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을 포함한 세계 60여곳에 LTE 상용 서비스와 시범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으며 지난해 말에는 100달러대(약 11만원)의 고성능 스마트폰을 내놓은 데 이어 태블릿PC 사업 진출까지 서두르고 있다.

일본의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 박사는 얼마 전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진짜 기업가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종이에 한자(漢字)로 ‘任正非’라고 썼다.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을 가리킨 것이다. 그는 “낮은 생산원가로 세계적인 일류상품을 만들 수 있는 길을 개척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올 1월 하순 우리나라의 전자통신연구원(ETRI)은 LTE 어드밴스트라는 최첨단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LTE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점해놓고 있는 화웨이의 장벽과 강인한 기술개발 및 글로벌 경영 능력을 뚫거나 능가하지 못한다면 자칫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화웨이의 ‘벽’과 전략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업의 노력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