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안전, 정보통신 기술을 끌어올려 사람과 환경에 적합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제일입니다. 어느 나라 자동차 회사라도 이런 힘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지난 9월20일 도쿄돔 인근 도요타 도쿄 본사 8층 임원식당. 와타나베 가쓰아키(64) 도요타자동차 사장이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모처럼 점심을 함께 하며 ‘도요타 전략’을 밝혔다. 한국 토요타가 세계 최초의 고급 하이브리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렉서스 RX400h의 한국 판매를 시작한 그날 와타나베 사장은 인터뷰 내내  ‘환경’이라는 두 글자를 되풀이했다. 그의 발언을 요약하면 자동차 미래는 ‘환경 대응’에 달렸다는 것이다.

요즘 일본 자동차 메이커의 화두는 단연 환경이다. 일본말로 ‘환경 대응차’로 불리는 환경차는 이산화탄소와 배기가스를 대폭 절감한 엔진동력원을 가진 자동차를 통칭하는 용어. 가솔린엔진의 연비 개선 기술도 진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전기 모터를 병용하는 하이브리드차, 청정 디젤차, 연료전지차, 수소 자동차 등을 환경 대응차로 정의한다. 에탄올을 연료로 하는 에탄올차도 이산화탄소 배출이 제로로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도요타와 혼다가 환경 대응차에서 2강 구도를 구축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혼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혼다는 첨단기술을 가미한 환경 대응차를 잇따라 시장에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히 ‘꿈의 저공해차’인 연료전지차에서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도요타와 혼다가 환경차 빅2

발전 장치를 소형화한 신형연료전지차 FCX콘셉이 2008년 일본과 미국에서 발매된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배기가스 규제를 도입할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디젤엔진차도 3년 내 선보인다. FCX 콘셉은 배터리 크기를 20% 줄여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얹어 차체 높이를 낮추는 등 미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연료전지 무게도 1999년 시제품 202kg에서 2003년 96kg으로 줄인데 이어 이번 신형에서는 67kg이라는 경량화를 실현했다. 영하 30℃에서도 운행이 가능해졌으며 한번 수소연료 주입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도 작년 모델보다 30% 늘어난 570km에 이른다. 수소를 350기압으로 압축해 저장하는 고압 탱크에 5kg의 수소를 실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최고속도는 160km/h다. 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리스 방식이 될 전망. 연료전지차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꿈의 저공해차로 불리는 반면 차량 가격이 대당 1억엔 이상 고액이다. 결국 판매가 문제다. 그래서 주력하는 쪽이 청정 디젤차.

혼다는 청정 디젤엔진에서 배기가스의 질소산화물을 대폭 줄이는 매체 장치를 개발했다. 배기가스가 통과하면 질소산화물 분해에 효과가 있는 암모니아가 발생하는 세계 최초 기술이다. 디젤차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차보다 20~30% 적다. 유럽의 경우 신차 판매의 50%를 차지한다. 미국은 2009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배기가스 규제가 발효된다. 혼다의 청정 디젤차는 이 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뿐 아니라 일본과 유럽에서의 시판도 검토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디젤차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 3월 제네바 오토쇼에서 업체마다 디젤 모델을 앞 다퉈 선보인 것도 이런 수요 패턴의 변화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시장 조사 전문업체인 J.D.파워는 디젤차량 수요가 앞으로 10년간 배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J.D.파워에 따르면 작년 전 세계에서 팔려 나간 디젤차는 모두 1500만 대였지만 2015년에는 디젤차 판매고가 연간 2900만 대에 이를 전망이다. 그 견인차 역할은 북미 시장이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디젤차 비율은 3.2% 불과하지만 2015년에는 10%로 높아지게 되고, 이에 따라 전 세계 디젤차 비율도 현재 18%에서 26%로 높아질 것으로 J.D.파워는 보고 있다. 결국 혼다의 전략은 하이브리드차, 연료전지차, 청정 디젤차라는 ‘환경 3차’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것이다.

도요타자동차는 하이브리차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하이브리드(HYBRID)’는 동식물의 잡종을 뜻하는 말. 두 가지 기능이나 역할이 한 데 합쳐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유래된 하이브리드차는 자동차의 ‘심장’이 내연기관과 전기 모터가 복합된 차종을 뜻한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전기로 움직이는 전기 자동차의 혼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차량 주행 과정에서 낭비되는 에너지를 재흡수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내연기관에 덧붙여진 형태. 감속과 정차 시 운동에너지를 회수해 다시 가속과 주행 과정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발전기와 배터리, 전기 모터가 첨단 컴퓨터에 의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작동한다. 따라서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연비가 크게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최대 시장 ‘미국을 잡아라’

도요타는 가솔린엔진과 전동 모터를 병용해 달리는 하이브리드차로, 가정용 전원으로 충전할 수 있는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차’의 개발에 착수했다. 전동 모터로 주행 비율을 현재보다 높여 연비를 2배 정도로 향상시킨다는 복안. 도요타는 앞서가는 하이브리드 기술을 주축으로 연료전지차와 디젤엔진차, 에탄올차의 실용화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하이브리드차가 모든 종류의 자동차 동력과 조합될 수 있는 이점 때문이다.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전용차인 ‘프리우스’의 판매 대수(누계)는 이미 50만 대를 넘어섰다. 이는 경이적인 연비 성능 때문이다. 프리우스는 리터당 최고 35.5km를 달릴 수 있다. 일반 차량의 연비는 13.3km 정도. 한국 토요타가 9월20일부터 선보인 렉서스 RX400h도 무거운 SUV인 데다 272마력의 고출력임에도 공인 연비가 리터당 12.9km나 나온다. 휘발유엔진이 달린 동급의 RX350의 연비가 리터당 8.9km인 점과 비교하면 탁월한 효율성을 자랑하는 셈이다.

또 출발과 저속 주행 시에는 전기 모터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엔진 소음이 없으며 특히 급가속 시 전기 모터가 엔진에 힘을 보태기 때문에 가속성도 증가된다. RX400h에는 3300cc 휘발유엔진이 달려 있지만 모터가 동시에 가동되면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의 가속시간이 7.6초에 불과해 4000cc급 엔진 성능과 필적하게 된다고 한다.

전 세계 시장에서 연료와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소비자들도 연비를 중시하는 흐름이 대세로 자리 잡는 변화 속에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은 환경차라는 깃발을 내세워 선점에 성공했다. 도요타는 부품 경량화와 원가절감 등을 통해 전차종의 하이브리드화를 추진해 2012년까지는 총 판매 규모를 연간 100만 대로 늘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하이브리드시장을 관망해온 미국과 유럽 업체들도 도요타의 성공에 자극받아 하이브리드 모델을 앞 다퉈 내놓기 시작했다. 일부 업체들은 하이브리드 공동개발을 위한 제휴에도 적극 나서고 있어 하이브리드 합종연횡시대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와 혼다 등 시장을 선점한 일본의 쌍두마차를 따라잡기는 아직 역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