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을 업고 인도 중소도시들의 소비 증가세가 뚜렷하다. 중소도시의 소비 증가세는 대도시를 압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인도 공략을 노리는 우리 기업들에게 솔깃한 소식이다.
- 인도 최대 슈퍼마켓 체인 빅 바자르 매장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서 남쪽으로 약 160㎞ 떨어진 소도시 알와르(Alwar). 인구 30만 명의 작고 조용한 도시다. ‘사막의 땅’ 라자스탄 주에 속해 있는 도시라 그런지 길거리에는 흙먼지가 풀풀 날린다.   

먼지가 자욱한 도로 주변 구멍가게들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로 즐비하다. 늘어선 구멍가게들 사이로 자리한 현대식 슈퍼마켓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빅 바자르(Big Bazaar)라는 인도 최대 슈퍼마켓 체인점이다. 슈퍼마켓 안에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마치 도떼기시장 같다. 시골 도시 슈퍼마켓 매장치고는 전혀 예상 밖이다.

남편과 함께 쇼핑 온 한 30대 여성은 “이곳에선 주차 걱정할 필요도 없고, 한 곳에서 필요한 모든 생활용품을 구입할 수 있어 1주일에 4~5번은 찾는다”고 말했다.

이 슈퍼마켓 매장의 지난 2010년 상반기(1~6월) 매출은 1억8000만 루피(약 47억원)에 달했다. 시골 슈퍼마켓으론 적지 않은 판매액이다.

뉴델리에서 동북쪽으로 약 60㎞ 떨어진 미루트(Meerut). 인구 400만 명의 제법 큰 도시다. 도심 곳곳이 고층빌딩 건축과 도로건설 등으로 분주하다. 도시가 발전하는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반 호이젠(Van Heusen)이라는 낯익은 의류 브랜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글로벌 브랜드로 제품 가격이 인도인에겐 꽤 부담스러운 곳이다. 그럼에도 매장 안은 많은 고객들로 붐비었다.

한 인도 중년여성이 정장과 바지 등을 샀다. 구매 가격은 5만 루피, 우리 돈으로 약 130만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그녀는 이 매장 단골손님이다. 3년 전 뉴델리 매장에서 남동생 결혼 선물용으로 의류를 구입한 후 이 브랜드를 좋아하게 됐다. 이후 필요할 때마다 뉴델리 매장을 찾았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미루트에도 지난해 매장이 개장됐기 때문이다. 이 매장의 2010년 11월 한 달 매출은 230만 루피(약 6000만원)였다. 보통 하루 매출이 10만 루피(260만원) 정도라고 한다.

- 인도 중소도시·농촌을 겨냥해 개발한 삼성전자의 햇볕 충전 휴대폰
- 인도 중소도시·농촌을 겨냥해 개발한 삼성전자의 햇볕 충전 휴대폰

중소도시 소득 늘며 소비에 탄력

인도 중소도시에 강한 소비 열풍이 불고 있다. 그 동안에는 뉴델리나 뭄바이, 방갈로르, 첸나이, 콜카타 등 대도시가 소비를 주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소도시들의 소비 증가세가 대도시를 압도하고 있다. 대도시에서 시작된 인도인들의 소비 열풍이 중소도시로 강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중소도시에서 소비 열풍이 부는 이유는 첫째, 인도 경제의 고속 성장 덕분에 이 지역 주민들의 소득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농민을 비롯한 저소득층 지원에 나선 인도 정부의 최근 정책도 한 몫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한 해 동안 수십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지원을 하고 있다.

인도마켓리서치(IMRB)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인도 도시 소비의 73%는 대도시권이 아닌 중소도시에서 창출된다. 전체 도시 인구의 85%를 점유하는 이들 중소도시 소비자들의 연평균 소득은 30만 루피(780만원)에 달한다. 인도 1인당 국민소득(1100달러)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들 중소도시 소비자들의 소비패턴 역시 대도시를 따라가고 있다. 그 동안 대도시에서 구매율이 높았던 평면 텔레비전, 반자동식 세탁기, 다이렉트 쿨 냉장고와 같은 제품이 중소도시 시장으로 판매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휴대폰은 도시는 물론 농촌에서도 필수품이 됐다.

필수 생활용품(FMCG) 소비를 예로 들어보자. 이 분야 소비는 지난 10년간 3배나 급증한 1조3000억 루피(약 33조8000억원) 규모다. 눈에 띄는 것은 대도시와 중소도시간 FMCG 소비 성장률 격차다. 지난 2009년 대도시에서의 FMCG 소비 성장률은 8%였다. 중소도시에서의 성장률은 18%로, 대도시권보다 2배 이상 높다.

인도 소매 컨설팅 전문회사인 테크노파크 어드바이저는 2010년 4500억 달러 규모인 인도 도시의 소매업이 2013년 5350억 달러, 2018년에는 755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경우 인도 중소도시의 소매업 규모는 2013년 3900억 달러, 2018년 5511억 달러(약 660조원)에 이른다. 인도 중소도시가 기업들에겐 황금어장인 셈이다.

농촌과 중소도시의 성장 잠재력에 눈뜬 일부 기업들은 이 지역을 타깃으로 본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했다. 저소득층에 적합한 가격과 팩 사이즈를 출시하고, 프리미엄 제품들까지도 이를 모방하고 있다.

인도 최대 생활용품 업체인 힌두스탄 유니레버(HUL)는 농촌과 중소도시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대표적인 사례다. HUL은 세계 최대 생활용품 회사인 유니레버와의 합작회사다. HUL은 농촌이나 중소도시의 저소득층을 겨냥한 초소형 포장의 초저가 제품을 개발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예를 들어 4센트짜리 1회용 샴푸비누세트나 70센트짜리 바디로션, 90센트의 샴푸 등을 출시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코카콜라와 필립스 또한 HUL의 ‘초소형 초저가’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코카콜라는 6루피(150원)짜리 저용량 콜라를, 필립스는 10달러짜리 소형 라디오를 내놓음으로써 농촌과 중소도시에서 매출이 급신장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한국 브랜드도 중소도시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300개 정도의 중소도시 영업소를 갖춘 삼성전자는 올해 600개로 2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삼성은 또 지난해 중순 인도 농촌 및 중소도시를 겨냥한, 크레스트 구루(Crest Guru)라는 휴대폰을 출시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햇볕으로 충전하는 휴대폰으로 일조량이 풍부한 반면 충전이 어려운 인도 중소도시와 농촌에 특화한 제품이다. ‘인도 가전신화의 주인공’인 LG전자는 이미 농촌 혹은 중소도시를 겨냥한 저가의 삼푸르나(Sampoorna) 텔레비전 시리즈로 유명하다. 이 제품은 LG전자가 인도에서 최고의 가전제품 회사로 성장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벨몬트라는 저명 의류 브랜드를 갖고 있는 SKNL그룹은 최근 특별히 중소도시를 겨냥한 월드 플레이어라는 저가 브랜드를 만들었다. 이 브랜드의 가격대는 149~599루피(3800~1만5000원)로 인도 중소도시에 의류 가격파괴 바람을 일으킨다는 계획이다. 현재 인도 중소도시에 140여 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SKNL은 올해 안에 800여 개로 늘릴 방침이다.

인도 소매업은 이제 시작

문제는 인도에 우리의 이마트 같은 현대식 소매체인의 발달이 매우 미약하다는 점이다. 전체 소매업의 약 5%에 불과하다. 액수로는 2010년 현재 220억 달러 정도다. 나머지 95%가 길거리 상점(Kirana) 등 구멍가게나 재래시장에서 거래된다.

인도의 현대식 소매점 비율은 여타 국가에 비해 아주 열악하다. 시장조사기관인 부즈앤컴퍼니에 따르면, 전체 소매업에서 현대식 소매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 85%, 대만 81%, 말레이시아 55%에 달한다. 개발도상국인 인도네시아나 중국도 각각 30%, 20%에 이른다.

그러나 인도에서 현대식 소매업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역으로 인도에 긍정적이다. 그만큼 앞으로 인도에서 현대식 소매업의 발달 가능성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뜻한다. 또한 인도에 현대식 소매점이 발달하기 시작하면 인도인, 특히 중소도시 거주자들의 소비가 보다 가파르게 증가할 것임을 시사한다.

인도에 이미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물론 향후 진출할 기업들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마케팅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