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란 말은 <홍길동전> 같은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이 전광석화처럼 출몰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즈니스맨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글로벌 비즈니스맨’이란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을 정도로 사업가들에게는 국경의 의미가 무의미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래서 북미의 기업인들이나 유명 인사들에게 전용 제트기는 이제 친숙한 존재가 됐다. 누가 전용기를 타고, 전용기를 이용하는 데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알아봤다.

 루 평균 1000만명의 고정 청취자를 확보하고 있는 방송인 러시 림바우는 전용 제트기 예찬론자다. 라디오 토크쇼 사회자로 뜨기 시작할 1990년대 초반 무렵 그는 1년에 300일 이상 출장을 다녀야 했다. 미국 전역에서 강연과 방송 출연 신청이 쇄도했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 민항기를 이용했다. 

 그런데 스케줄이 점점 더 빡빡해지자 도저히 일반 항공기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 그는 측근의 권유로 1990년대 후반부터는 전세기를 이용해 전국을 순회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세기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2000년 봄 림바우는 걸프스트림 G-4를 구입했다. 이제 그는 전용기에 위성TV와 위성인터넷을 장착, 이동중에도 정보를 한시도 놓치지 않는다. 적어도 그에게는 3300만달러(약 360억원)란 비용이 아깝지 않다. 이동이 자유로운 만큼 수입도 올라갔기 때문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 창업자 폴 앨런 등이 방한했을 때 그들의 공식 일정과 함께 타고 온 자가용 제트기도 화제에 올랐다.

 사업가들에게는 전용 제트기의 효용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맥시멈 임팩트라는 리더십 트레이닝 전문회사의 토드 던칸 대표는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며 “스케줄을 분석해 보고 공항에서 1년에 23일 이상을 허비한다는 통계를 본 순간 전용 제트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전용기를 보유하거나 리스하고 있는 미국 기업은 1만6000개사로 지난 1990년대초 이후 70%나 급증했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최근 기업 CEO들의 전용기 이용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분석해 보면 지난해 경영진의 전용기 비용으로 5만달러 이상을 쓴 기업은 250개, 10만달러 이상은 100군데가 넘었다. 전용기 비용으로 이같은 비용을 지불한 기업은 2002년 각각 140개, 33개에 불과했지만 2년 사이에 큰 폭으로 늘어났다.

 물론 전용기 이용에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기업들이 CEO의 비행 비용을 과다하게 지출, 주주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USA투데이>는 이같은 현상을 CEO들의 ‘전용기 중독’으로까지 표현했지만, 비즈니스 출장에서 시간을 절약하고 기밀 유지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시간 절약·기밀유지 보장

 미국 기업 1만6000개사 이용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있는 아바쿠스 코퍼레이션 창업자인 게리 버분은 중역들에게 제공키 위해 엠브레어사의 리거시 이그제큐티브를 2년 전 매입했다. 그는 “전용기 안에서는 우리끼리 허심탄회하게 회의를 할 수 있다”며 “만일 민항기를 타고 출장을 다녔다면 우리 임원들이 지금처럼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같은 추세로 인해 자가용 항공기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 2004년 한 해에만 87억달러(약 9조원) 규모의 자가용 비행기가 팔렸다. 항공 컨설팅회사 틸그룹의 수석 애널리스트 리처드 아불라피아 부사장은 “자가용 항공기시장 증가율이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다소 둔화되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며 “앞으로 10년 동안 2005년 달러화 가치 기준으로 1000억달러(약 110조원) 규모인 7000여대의 자가용 비행기가 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자가용 비행기를 구입하거나 공동 소유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비행기가 필요할 때 바로 탈 수 있다. 예약할 필요 없이 24시간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 소유일 경우 국내선은 최소 4시간 전에만 통보하면 정해진 시간에 항공기가 이륙할 준비를 마치고 고객을 기다린다. 국제선은 48시간 전에 알려 주면 된다. 항공사의 비행 스케줄에 따를 필요 없이 자신의 스케줄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또 미국 전역에 있는 5400개 공항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일반 항공사들은 580여개 공항에만 국한해서 비행기를 운항한다. 특히 항공기 공동 소유 프로그램은 고객이 있는 곳까지 비행기를 보내기 때문에 그야말로 전국 구석구석에서 비행기를 탈 수 있다. 공항까지 걸리는 시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등을 합치면 하루가 꼬박 걸리는 일도 흔하다. 자가용 항공기나 공동 소유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이렇게 ‘비는 시간’이 사라져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자가용 비행기 제작업체 가운데 선두주자는 한국에도 꽤 이름이 알려진 걸프스트림사다. 1958년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자회사로 출범한 걸프스트림은 전용 제트기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한편 가장 인기 있는 전용 제트기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전용 제트기’하면 ‘걸프스트림 시리즈’를 떠올릴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한국에도 걸프스트림 시리즈를 보유한 재벌이 있을 정도다. 이에 따라 걸프스트림은 업계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틸그룹은 최근 ‘2005 자가용 비행기시장 전망’에서 걸프스트림이 향후 5년 동안 시장점유율 25.3%를 유지하며 1위 자리를 보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2위는 캐나다 봄바디에사이며 그 다음으로 세스나사, 다소, 레이테온사 등의 순이다.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직접 구매하거나 공동소유제도를 이용하거나 선불카드를 구입하는 방법 등이다.

 직접 구입·공동 소유·선불카드 등

 보유 형태도 다양


 
현재 인기 있는 자가용 비행기의 가격은 270만달러(비치크래프트, 약 30억원)에서 1억2000만달러(봄바디에사 리어제트, 약 1400억원)까지 다양하다. 가장 큰 자가용 제트기인 보잉 747-400시리즈의 가격은 1억9000만~2억3000만달러(2600억원 전후)다. 물론 여기에다 월 관리비, 조종사 및 승무원 급여, 연료비까지 전적으로 오너가 책임져야 한다.

 자가용 비행기의 매입 가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는 ‘공동소유제(Fractional Aircraft Ownership)’가 기다리고 있다. 이는 값비싼 항공기를 여러명이 공동으로 구입, 각자 필요할 때 쓸 수 있게 하는 비즈니스다. 공동소유제는 지난 1986년 이그제큐티브 제트사가 자회사로 넷제트를 설립한 게 시초다. 그 뒤 워런 버핏의 버크셔 헤더웨이가 1998년 이그제큐티브사를 인수한 데 이어 다른 업체들이 속속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보험사 헌틀리 맥기사의 CEO 마이크 샤나한은 올 2월 항공기 공동소유제도의 효용 가치를 절실하게 느꼈다. 갑자기 뉴욕주 글렌폴즈로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출장일 전날 저녁 도저히 연기할 수 없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베이징 정도의 거리를 하루 안에 오가야 했던 것이다. 마침 넷제트사 회원이었던 샤나한 대표는 걸프스트림 200을 대기시킨 뒤 저녁식사를 마치고 푹 쉰 뒤 이른 아침 세인트루이스를 출발, 출장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업무를 끝내고 그날 저녁에 다시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왔다. 샤나한 대표는 “민간 여객기를 이용했다면 사흘이나 걸릴 일정이 단 14시간만에 끝나 버렸다”며 “공동 소유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게 비용 절감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항공기 공동 소유 운용 방식은 이렇다. 항공기 공동 소유자는 최대 16명에서 최소 2명인데 공동 소유자가 16명이라면 비행기 가격의 16분의 1을 내고 2명이면 2분의 1을 낸다. 마치 콘도 소유권을 여러명이 소유하고 휴양지를 돌아가며 사용할 수 있듯이 공동소유제에서도 필요할 때 얼마든지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다.

 항공기 공동 소유 전문회사들은 일종의 ‘공동 구매’ 형식으로 항공기를 구입하고 운용과 관리를 한다. 고객들은 자신이 공동 소유하는 비행기뿐 아니라 그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다른 항공기를 모두 쓸 수 있다. 따라서 다른 공동 소유자와 겹치지 않고 자신이 필요할 때 항상 비행기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특정 기간에 고객들의 수요가 겹쳐 남는 비행기가 없으면 회사는 다른 곳에서 항공기를 전세해 서비스한다. 때문에 비행기가 없어 여행을 하지 못하는 일은 없다. 게다가 한꺼번에 고객이 몰리는 상황도 자주 발생치 않는다.

 고객들이 비행기를 연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공동 소유 프로그램 종류에 따라 50~400시간까지 다양하다. 공동 소유자가 많을수록 비용은 낮아지는 반면, 연간 이용 시간은 짧아진다. 항공기를 공동으로 소유한 고객들은 자신의 지분을 일정 기간(24개월)이 지난 후에는 감가상각비를 뺀 가격에 되팔 수도 있다.

 고객들은 이와 함께 항공기를 구입한 후 매달 지불하는 관리비도 내야 한다. 관리비에는 파일럿을 비롯한 승무원의 임금 및 교육비, 항공기 유지보수비, 보험료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실제 비행 시간에 따른 이용료도 지불해야 한다. 비행기를 탄 시간만큼 이용료를 내는 것이다.

 연간 50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세스나사의 사이테이션 CJ1을 기준으로 실제 소요되는 비용을 알아보면 16분의 1일 경우 초기 구입비가 28만달러, 매달 들어가는 관리비가 4500달러, 시간당 사용료가 1250달러다.

 항공기 공동 소유는 몇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우선 자가용 비행기를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사실상 자가용 비행기처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개인이 직접 항공기를 관리할 필요가 없다. 자가용 항공기는 소유자가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해야 하지만, 항공기 공동 소유는 전문회사가 관리는 물론 조종사 및 승무원 교육까지 책임진다.

 이와 함께 항공 선불카드를 이용한 전용 제트기 이용도 증가하고 있다. 항공 선불카드제는 공동 소유제를 운용하는 항공사들이 자가용 비행기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전용 제트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이 시장도 독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세기와 공동소유제의 장점을 결합시킨 항공 선불카드제는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해외에 전화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세스나사의 사이테이션은 7만5000달러부터 시작하는 카드를 팔고 있다. 이 카드를 사면 5~7명 정원인 미드사이즈 항공기를 20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다. 센션트제트는 10만달러부터 시작하는 카드를 팔고 있다. 5~7명 정원인 미드사이즈 항공기의 경우 시간당 이용 요금이 5800달러(왕복 4400달러)이므로 최소 단위인 10만달러짜리 카드를 구입할 경우 25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플라이트옵션사의 제트패스의 경우 선불카드 중 일부를 사용하고 남은 돈을 고객이 요구하면 즉시 돌려주는 서비스도 시행중이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글로벌 익스프레스 보유

 직접 소유와 공동 소유, 항공 선불카드 중 어떤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일까. 넷제트에 따르면 연간 탑승 시간이 50~400시간인 사람에게는 항공기 공동소유제가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수단이다. 탑승 시간이 연 50시간 미만이면 선불카드를 구입해 전세기를 이용하는 게 유리하고, 연간 400시간이 넘으면 비행기를 사는 게 낫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자가용 비행기 관련 산업인 비행기 인테리어업체도 함께 붐을 맞고 있다. 연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CTO(기술 담당 최고 임원) 나탄 미르볼드는 <베너티 페어>란 잡지에 ‘나의 첫 걸프스트림’이라는 글을 익명으로 기고한 적이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중고 ‘걸프스트림Ⅲ’을 구매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인테리어 경험 등을 소개했다. 미르볼드에 따르면 객실에 카펫을 까는 데만 2만5000달러가, 방음 장치를 덧붙이는 데 8만달러가 더 들어갔다. 독서용 할로겐램프 1만5000달러, 디지털 전화기 10만달러(팩스 추가에 2만달러는 별도) 등이다. 이 정도는 보통이고 때로는 ‘배(비행기값)보다 배꼽(인테리어 비용)이 더 큰 경우’도 발생한다. <보스턴 글로브>지는 최근 “PATS 에어크래프트사에 따르면 보통 인테리어를 마치는 데 3개월 이상 걸리는 것은 물론, 최대 3000만달러까지 비용이 들어가는 데도 플라스마TV 장착을 원하는 고객도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02년 7월17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사돈의 상가를 발인 1시간 전에 턱걸이하듯 방문할 수 있었던 것도 전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회장은 전날인 7월16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가까스로 시간을 맞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캐나다 봄바디에사가 제작한 글로벌 익스프레스를 보유하고 있다.

 ‘시간이 돈’이란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비즈니스맨들에게는 자가용 비행기를 운용하거나 항공기 공동소유제를 이용하는 게 결코 사치라고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어디든지 마음먹었을 때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을 보유했다면 전세계를 내 집 마당처럼 밟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