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일 실시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는 단지 미국이라는 나라의 차기 대통령 한 사람을 뽑는 의미를 훨씬 넘어선다.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정책과 진로는 세계 질서에 영향을 미치며, 한반도도 그 직접적 영향권에 있다.

 벌써 3년째 세계의 테러집단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면서도 테러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은 이 전쟁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이며,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반미(反美) 정서와 외교적 고립 속에 새로운 국제관계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또 긴장의 극대치에 근접하고 있는 북한 핵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지 등 지구적 현안들을 안고 있다. 그리고 이 현안들의 해결책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승자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대통령 선거일이 19일 남은 10월14일 현재 미국 주요 언론들이 발표한 여론조사는 문자 그대로 ‘통계학적 동률’이다. 10월부터 매일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전국 지지도를 발표해 온 <ABC>·<워싱턴포스트> 공동 조사에서 두 후보는 48% 대 48%로 똑같았으며, <로이터>·조그비 여론조사에서도 46% 대 45%로 부시 대통령이 단 1%포인트 앞섰을 뿐이었다.

 지난 9월30일부터 보름 동안에 걸쳐 세 차례 열렸던 대선 후보 TV 토론을 거치면서 케리 후보가 무섭게 상승했으나, 현 상태에서 두 후보의 지지율은 완전 교착 국면에 빠져 있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일 2주일여를 앞두고 이처럼 완전 동률을 이뤘던 것은 현대적 여론조사가 실시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역별 선거인단 확보 경쟁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각 주(州)별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 전체를 차지하는 ‘승자 독식’ 제도를 통해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전국적 지지도보다 실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이 선거인단 확보 경쟁이다. 전국 선거인단 총수 538명 중 과반수인 270명을 확보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

 지난 10월14일 <USA투데이>가 분석한 선거 판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전국 선거인단에서 207명을 확보, 196명을 얻고 있는 케리 후보를 앞서고 있다. <뉴욕타임스>도 부시 대통령이 232 대 221로 케리 후보를 앞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USA투데이> 분석상 아직 12개주, 135명의 선거인단이 주인 없이 남아 있는 ‘스윙스테이트’이고 각 지역별 여론조사는 불과 2~5%포인트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 이런 상태라면 이번 대선은 플로리다(선거인단 27명), 오하이오(선거인단 20명)와 같은 큰 덩어리가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승부가 달려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런 여론조사 수치 외에 미국인들이 현재 현 정부에 대해 갖는 민심을 바탕으로 결과를 전망하기도 한다. 여론조사에 나타난 미국의 민심은 부시 대통령의 재선 가도가 매우 위태로운 국면에 처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도는 현재 취임 후 최저치인 47% 언저리까지 떨어져 있고, 미국인의 과반수가 이라크전의 가치에 회의적 시각이다.

 예컨대 지난 10월14일 발표된 <로이터통신>·조그비 공동 조사에서는 미국인의 49%가 “백악관에 새로운 인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답했다. “부시의 재선을 바란다”는 이는 46%에 그쳐 정권 교체를 바라는 이가 더 많았다. 또 같은 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51%의 미국인은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미국의 현 상태에 심각한 의문을 표시했다.

 그렇다고 미국 대선의 결과를 예단하기에는 역시 너무 이르다. 보통 각 주별로 수십 %에 이르는 부재자 사전 투표는 여론조사에 반영되지도 않고 있다. 지난 2000년 대선 때 대부분의 언론들은 투표 당일 출구 조사를 토대로 플로리다주가 민주당 앨고어 후보의 승리로 판명났다고 잘못 보도했다가 대망신을 당했다. 미국 전체 인구의 12%에 달하는 흑인들이 얼마나 투표장에 나타날 것인지도 접전지가 몰려 있는 미국 남부지역의 투표에 결정적인 변수이다. 흑인들의 케리 후보 지지도는 무려 80%에 이른다. 평소 투표율이 저조했던 젊은 층의 선거 관심도도 올해에는 유례없이 증폭돼 있어, 대체적으로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이들 젊은 세대의 투표 참여율 또한 단 1%의 차이로 승부를 가를 수 있는 이번 대선의 핵심 관찰 포인트이다.

 사실 이번 미국 대선은 부시와 케리의 싸움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인들이 흔히 ‘ABB’라고 부르는 선거 구도, 즉 ‘부시 말고는 누구라도’(Anybody But Bush)라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구호가 더 이번 선거의 본질에 가깝다. 케리 후보 지지자들은 꼭 케리 후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부시가 더 싫기 때문에 케리 후보를 대안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부시 대통령을 혐오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의 대외정책에 있다. 이들은 부시 대통령의 오만한 태도, 국제적 협력을 무시한 ‘나 홀로’ 식의 전쟁이 미국을 더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부시 대통령의 대외정책을 9.11 테러 공격 이후 위기에 처한 미국의 현실에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자 국가 안보를 책임진 지도자의 단호한 태도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반전(反戰) 전력을 가진 케리 후보는 최소한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 지도자로서는 부적격이라고 본다.

 이런 양측 지지자들의 시각은 차기 정권의 정책 방향을 시사한다. 부시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그는 국민의 추인을 받은 대테러 전쟁의 당위성을 바탕으로 더욱 강력하게 이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부시 대통령의 대외정책 핵심 기조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집단에 대해서는 예방적 선제공격을 통해 이를 근원적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케리 후보가 이길 때는 이라크전의 전면 재검토 등 대외정책의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는 게 사실이다. 미국 국내적으로 보면 9.11 테러 이후 안보문제가 강조되면서 강화되어 온 미국 사회 전반의 보수·우경화 경향의 강도와 속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리가 주목할 점은, 미국의 현 상태에서 부시든 케리든 누구도 테러와의 전쟁을 쉽게 끝낼 수는 없다는 점이다. 미국을 향한 테러 위협이 실제적으로 존재하고 9.11 테러 공격의 악몽이 생생한 상태에서 국가 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이 이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 국민들의 생각도 이중적이다. 3년여째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일상화’에 지쳐 있고 미국의 국제적 고립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역시 절대다수는 테러와의 전쟁은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부시 대통령의 전쟁을 비판하는 케리 후보가 다른 점이 있다면 테러 세력의 박멸이라는 명분이 아니라, ‘어떻게 테러와 싸울 것이냐’는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다.

 미국 차기 행정부와 한반도 문제의 관련성도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한반도 문제는 다른 말로 북한 핵무기 문제인데, 부시나 케리 모두 북한의 핵 보유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케리 후보가 북한 핵문제에서는 더 강경하다.

 이곳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의문 중 하나는, 과연 케리 후보가 북한과 직접 협상을 할 경우 북한 핵문제를 풀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10년째 북한을 달래고 위협하며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봤으나 결국 남은 것은 북한이 4~7개(케리 후보 주장)의 핵폭탄을 만들 시간을 벌게 했다는 사실뿐이다.

 케리 후보는 자신이 집권할 경우 북한과 직접 대화를 통해 1953년 휴전 이후 누적된 모든 문제를 풀겠다고 장담했지만, 지금까지 50년 동안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그 ‘비법’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만일 북한이 케리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마저 거부한다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이곳 한반도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근본적 질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정권)을 지구상에 존재해선 안 될 ‘악의 집단’으로 규정했고, 케리 후보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은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한계시점이다. 누가 차기 미국 정부의 책임자가 되든지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는 한반도 문제가 대외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로 올라 있을 수밖에 없다.

허용범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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