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에서 렌즈교환 방식의 ‘디지털 일안(一眼)리플렉스(DSLR)’ 카메라 시장에 대형 전자업체들이 뛰어들며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렌즈교환이 안되고 셔터만 누르면 카메라가 알아서 찍어주는 디지털 카메라 콤팩트 기종이 한물가면서 마쓰시타와 소니, 삼성 등 일본 안팎의 전자업체들이 사진 전문가들과 젊은이들로부터 각광받는 렌즈교환방식 DSLR 시장으로 잇따라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각광받았던 콤팩트 기종은 사양화하고 있다. 콤팩트 기종을 생산하던 전통적인 업체들은 시대의 조류에 밀리고 가격 경쟁에 뒤지면서 적자에 허덕이거나 하나 둘 철수하고 있다.

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 규모는 8000만 대 수준이다. 여기서 DSLR이 차지하는 비율은 5%인 420만 대정도. 그러나 매출액 기준으로는 전체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부가가치가 높다. 특히 렌즈가 고가다. 과거에는 전문가들이 찾았으나 요즘은 일반인들에게 많이 보급되고 있다. 카메라 본체 가격이 10만엔 전후인 제품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 큰 이유다.

한 개의 렌즈만을 사용하는 일안렌즈는 사진을 찍는 렌즈와 별도로 눈으로 피사체를 보는 창이 있는 범용 카메라와 달리 렌즈를 통해 피사체를 보고 그 모습을 그대로 사진에 담는다. 눈으로 보는 것과 사진에 찍히는 것의 차이가 없으며 다양한  렌즈를  바꿔가며 쓸 수 있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총아로 떠올랐다.

일본 시장에 마쓰시타와 소니, 삼성 등 대형 전자업체들이 속속 진출하며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불과 1~2년여 전에는 캐논과 니콘이 독주했다. 한국에서도 캐논 ‘EOS 350D’, 니콘 ‘D50’, 올림푸스 ‘E-330’이 보급형 DSLR 카메라의 3인방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일본은 사정이 달라졌다. 대형 전자업체 3사의 진출로 시장 판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쓰시타는 지난해 1월에 올림푸스와 손잡고 공동개발을 시작했다. 이어 소니와 삼성테크윈이 뛰어들었다.

대형 전자업체가 뛰어들자 전통 카메라 메이커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니콘은 지난 1월부터 디지털 제품에 주력하기 위해 필름 카메라 생산을 중단했다. 중단되는 제품은 모든 필름 카메라 기종과 교환형 수동초점렌즈, 관련 부속품이 포함된다. 필름 카메라 사업은 접은 셈이다.

반면 코니카미놀타는 같은 달 카메라 제조를 중단하고 디지털 카메라를 포함한 사업을 소니에 넘겼다. 이 업체는 전체 직원의 10%에 달하는 3700명을 감축했다. 1873년 창업한 코니카와 1928년 창업한 미놀타가 2003년 합병한 이 메이커는 한때 업계 3위 기업이었다.

올림푸스와 팬택, 후지쓰 사진필름 등 다른 전통업체들도 디지털 카메라 사업에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전통 카메라 메이커들이 허덕이기 시작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대형 전자업체의 강점과 맞물려 있다. 화상처리기술과 액정디스플레이, 필름 대신 빛을 화상으로 바꾸는 감지기 등의 첨단 기술을 전자업체들은 겸비하고 있다. 전자업체의 특성상 전통 카메라 업체에 비해 기술·가격 경쟁력 면에서 매우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셈이다.

전통 카메라업체들과 합종연횡

그렇다고 대형 전자업체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한 것은 아니다. 이들 역시 단독으로 DSLR 시장에 진출할 수는 없었다. 노하우가 부족하고 인지도도 떨어지기 때문에 리스크가 컸던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일안렌즈 주구매층은 얼마 전까지 작품사진이나 광고사진 등을 찍던 사진 전문가나 애호가 등이었다. 이들은 선호하는 메이커를 고집하기 마련이었다.

또 카메라의 ‘몸통격’으로 교환이 가능한 촬영렌즈인 ‘교환렌즈’의 확보가 카메라 시장 진출에 매우 중요했다. 교환렌즈는 초점거리 50mm의 표준렌즈와 이보다 초점거리가 짧거나 긴 광각렌즈, 망원렌즈, 초점을 조절할 수 있는 줌 렌즈 등이 있다.

기존 카메라업체들이 많은 교환렌즈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후발 전자업체로서는 이들 업체와의 제휴가 절실했던 것이다.

마쓰시타는 올림푸스 및 코닥 등이 책정한 이른바 ‘포서드’라는 DSLR 공동규격 진영에 뛰어든 상태. 이 진영의 렌즈 접속부는 ‘오픈’ 규격이다. 같은 진영의 교환렌즈에는 호환성이 있다. 마쓰시타와 올림푸스는 이 규격에 따라 공동개발했던 DMC-L1을 올 들어 발표했다. 이 기종은 고화질인 750만 화소의 감지기를 탑재했으며 소비전력도 과거 동종 제품에 비해 20% 줄었다.

코니카미놀타로부터 디지털 카메라를 넘겨받은 소니는 코니카미놀타가 지금까지 세계 시장에서 판매해온 교환렌즈의 사양규격에 맞는 제품을 개발한다. 소니는 빛을 감지해 전기신호로 바꾸는 전하결합소자(CCD)와 화상처리기술 등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이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교환렌즈 업체들에 출자하고 있어 마음먹기에 따라 새로운 교환렌즈도 생산할 수 있다. 소니는 디지털 카메라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 2위인데 코니카미놀타의 교환렌즈를 사용함으로써 수익기반을 강화하고 캐논과 니콘 등 이 분야 선두업체를 추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삼성테크윈도 지난해 10월 일본 펜탁스와 DSLR 카메라 공동개발 및 사업협력을 위해 제휴하고 이미 시장 공략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올림푸스, 소니 등 일본 메이커를 제치고 한국 내 디지털 카메라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내년 3월에는 세계 3위의 디지털 카메라 브랜드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중국 톈진에 생산능력 600만 대 규모의 신공장도 기공하는 등 생산체제를 강화했다.

반면 대형 전자업체들의 진출로 시장 포화 우려가 현실로 제기되고 있다. 현재 일본 국내에서 DSLR의 보급대수가 500만 대를 육박했고 보급률은 70%에 달했다. 지난해 이후 출하 대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DSLR 시장이 포화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 업체들이 잇따라 한국 진출을 선언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 세계 1위인 캐논과 5위인 니콘은 최근 한국에 현지법인을 잇달아 설립하고 공격적 시장 개척에 들어갔다.

자국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포화하자 DSLR이 성장 중인 한국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한국에서 DSLR 시장은 매년 두 배씩 성장하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올해 10만 대 이상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본다.

일본 전통 카메라 업체들은 이런 자구책을 통해 대형 전자업체와의 격돌에서 살아남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