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가전 왕국’ 소니가 지난 5월7일로 설립 60돌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맞은 셈이다. 10년 전 50주년을 맞아서는 도쿄 디즈니랜드를 빌려 떠들썩한 기념행사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용히 지나갔다. 언론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주요 일간지 중 <아사히(朝日)신문>과 <니혼게이자이(日經)신문>만이 지면을 일부 할애해 소니의 ‘환갑’을 덤덤히 알렸을 뿐이었다.

소니는 ‘젊음’과 ‘독창성’을 내건 사풍으로 일본 제조업의 성장과 세계화를 이끈 전후 일본의 대표기업이다. 소니가 내놓는 ‘일본 최초’는 곧 ‘세계 최초’였다. 지난 1955년 선보였던 트랜지스터라디오로 휴대형 라디오 시대를 열었다. 1968년에는 선명한 화질의 ‘트리니트론’ 브라운관 TV를 투입, 전 세계 TV시장을 선도했으며 1970년 발매된 워크맨은 세계적으로 3억5000만대가 팔려 소니의 상징이 됐다. ‘가전 왕국’이라는 수식어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소니의 전신은 패전 직후인 1946년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와 이부카 마사루(井深大)가 공동 창업한 도쿄통신공업사. 도쿄 긴자의 뒷골목에서 자본금 한화 약 6만원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이부카는 기술개발, 모리타는 경영으로 역할을 나눠 회사를 키워나갔다. 창업기 소니에는 ‘모르모트’ 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내놓는 족족 대기업들이 베껴가 남 좋은 일만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업자들은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워크맨과 CD 등 일세를 풍미한 상품을 연달아 내놓으며 소니는 세계적인 가전·음향 기업으로 커갔다. 미국에서 워크맨을 출시할 때는 재미난 일화가 있다. 모리타는 세일즈맨에게 흰색 정장을 입혔다. 보통 옷보다 주머니가 훨씬 컸다. 워크맨이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휴대하기 간편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런 류의 성공 일화들이 늘 소니를 따라다니곤 했다. 

소니의 이른바 ‘중흥조’는 지난 3월 말 상담역으로 일선에서 떠난 오가 노리오(大賀典雄.76) 전 명예회장. 그는 브랜드이미지와 디자인의 중요성에 일찍 눈을 떴다. 뮤지션 출신인 그가 이끈 소니는 영화와 음악, 게임시장으로 진출, 사업을 다각화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현재 소니의 골격을 완성했다.

소니는 1990년대 IT 혁명에 맞닥뜨렸다.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68) 전 회장 겸 최고경영책임자(CEO)가 ‘제2의 창업’을 내걸고 기존의 아날로그 AV(음향. 영상)와 IT의 접목을 추진했다. 그는 사내외에서 예언자로 추앙받았다. 인터넷은 “현대사회에 떨어진 운석”이라고 갈파한 것도 그였다. 일본의 IT 버블이 한창이던 지난 2000년 3월 소니의 주가는 2만3900엔에 달했다.

하지만 디지털상품의 격한 가격경쟁에서 버텨내지 못하며 이익을 창출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히트상품이 없었고 기술력이 저하됐다. 과거의 성공체험은 현실의 역경을 헤쳐 나가는데 오히려 장애가 됐다. 주가는 2003년 4월 2720엔으로 급락해 있었다. 주력인 전자부문의 경우 지난 3월 말로 3년 연속 적자를 맞았다. 이런 나락은 뒤늦은 디지털 박막형(평판) TV 출시에서 예고된 것이었다.

LCD TV ‘브라비아’로 승부수

소니는 1997년 독자의 평면 브라운관 TV를 내놓고 승부수를 띄웠다. 하지만 고객들의 취향은 이미 디지털 박막형으로 옮겨간 뒤였다. 성공체험에 안주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던 것이다. 워크맨도 인터넷시대가 되면서 애플의 아이포드(iPod) 등에 자리를 내주었다.

소니는 특단의 대책을 모색했다. 지난해 6월 처음으로 최고경영자에 외국인인 하워드 스트링어(64) 회장을 영입했다. 이공계 출신의 사장이다. 스트링어 체제는 대대적인 조직 군살빼기와 지난해 발매한 LCD TV ‘브라비아’ 시리즈를 승부처로 삼아 ‘소니의 부활’에 나섰다.

취임 석 달 뒤 스트링어 회장은 경영혁신 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향후 3년간 직원 1만명을 감원하고 세계 각국에 있는 생산거점 11개를 폐쇄하며 경영자원을 본업인 전자부문에 쏟기 위해 부문별로 독립성이 강한 현행 ‘컴퍼니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또 1200억엔 어치의 보유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을 매각하기로 했다. 소니은행과 생명보험 등 금융부문 지주회사의 주식공개도 2007년 이후로 연기키로 했다.

하지만 혁신계획에 대한 당장의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소니의 구조조정안이 시장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FT는 소니가 장기 성장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채 사업 철수와 근거가 부족한 전망치를 열거하는데 그쳤다고 혹평했다. JP모건의 애널리스트인 다카다 히로시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다 팔아버리면 소니 성장의 원천은 어디냐”고 반문했다.

‘브라비아’ 시리즈 덕택에 소니는 LCD TV시장에서 지난해 4/4분기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약진을 펼쳤지만 주력인 전자부문 전체로는 여전히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 소니는 TV시장에서 파나소닉 브랜드의 마쓰시타와 샤프에 뒤처져 있고 디지털 음향기기 시장에서는 미국 애플의 급부상에 고전하고 있다. 슬림형 TV와 PDP 등 디지털 가전의 신기술 경쟁에서도 뒤진 소니는 지난 2년 연속 전자부문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문제는 향후 전자부문의 성장전략도 뚜렷하지 않다는데 있다. 지난 5월1일 인터넷 비즈니스 전략을 검토하는 ‘비즈니스 전략실’이 신설된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나는 소니의 상품은 고객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고 강조했었다.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품을 계속 만드는 것이 ‘소니다움’이다. 스트링어 회장이 말하는 ‘Sony United’의 정신에 기술·고객·현장을 중시한다면 소니는 반드시 부활할 수 있다. 액정 TV와 디지털카메라 등에서 좋은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니의 힘의 원천은 상품이다.”

오가 노리오 상담역은 최근 <아사히신문>과의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소니의 미래를 낙관했다. 다만 전제는 역시 앞서가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가 상담역의 낙관이 현실화하는 것일까. ‘소니의 부활’을 예고하는 징후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가 최근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 4월 일본 언론은 소니가 삼성과 합병 생산한 패널을 탑재한 박막 TV의 히트를 발판으로 지난 회계연도에 대폭적인 영업이익을 올려 ‘부활’했다고 일제히 전했다.

소니의 지난 회계연도 매출은 전년대비 4.4% 증가한 7조4754억엔이며, 영업이익은 67.9% 증가한 1912억엔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 10~12월 세계 TV 판매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다음 회계연도 결산에서는 매출이 최초로 8조엔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현재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상품은 오는 11월 시판되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3’이다. 여기에는 슈퍼컴퓨터 수준의 중앙처리장치에 차세대 DVD의 표준규격을 노리는 ‘블루레이 디스크(BD)’의 구동장치가 탑재된다. 소니는 경쟁사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핵심부품을 독자 개발해 이익의 유출을 막으면서 업계표준을 거머쥐는 옛 ‘승리의 방정식’을 PS3에서 재연한다는 목표이다.

“독창적인 것이 아름답다” 창업주인 모리타는 생전 이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한다. 걸어 다니며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에서 히트상품 ‘워크맨’을 낳았던 것처럼 소니가 ‘젊음’과 ‘독창성’을 되살려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