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혁명 타고 신생기업 배출 비옥한 토양으로 진화

뉴욕이 실리콘밸리의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미디어, 광고, 리테일업계가 밀집해 있는 뉴욕의 생태계가 인터넷과 모바일을 기반으로 불고 있는 소셜미디어 혁명과 맞물려 신흥기업을 배출하는 비옥한 토양으로 진화하고 있다. 뉴욕의 최대 산업인 월가가 기우는 대신 새로운 테크 산업이 뉴욕의 골목에서 번성하고 있다.

‘북부 브루클린 조찬 모임’, 뉴욕 우편번호로 11211~11222 지역에 있는 테크 기업과 미디어, 홍보, 대학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난 1월 시작됐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모이는 이 조찬 모임은 이제 불과 두 번 만났을 뿐인데 입소문을 타고 가입하려는 신청자가 줄을 섰다. 3월 둘째 주에만 니케이 비즈니스 온라인 칼럼니스트, 벤처 창업가, 제품개발 디렉터, 파리에 본부를 두고 런던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PR 전문가 등이 가입했다. 세 번째 모임인 3월26일 조찬은 이미 예약이 끝났다. 47명이 참가하고, 9명은 스케줄이 가변적인데 이 뒤로 22명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 모임이 인기 있는 이유는 2월26일 참석자 명단을 보면 금세 드러난다. 위치기반 소셜네트워킹 회사인 포스퀘어를 비롯해 핫 포테이토(소셜네트워킹 회사)·식스 어파트(소셜네트워킹 회사)·플리커(사진 공유 회사)·바이메오(비디오 공유 회사)·플레이버필(문화 가이드 회사) 등이 이곳의 멤버다. 최근 디지털 신흥기업 가운데 뜨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뉴욕에는 이런 소규모 조찬 행사는 물론 집회와 같은 대형 모임도 수시로 열린다. 지난 3월2일 저녁 뉴욕 패션 칼리지인 FIT대 해프트 오라토리엄. ‘뉴욕 테크 밋업’이라고 불리는 이날 행사에는 697명이 참가했다.  지난 2004년 시작된 이 모임은 매달 화요일 저녁, 미리 선정된 6명이 5분간 컴퓨터 전문가, 투자자, 기업가, 해커 등 앞에서 새로운 것을 선보이는 모임이다. 참석자들은 업계 동향을 살피고, 투자 기회를 모색하며, 동업자를 이 모임에서 발견한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뉴욕은 실리콘밸리와 다르다. 그래서 좋아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10년 전 닷컴 붕괴 이후 꺼졌던 새로운 테크 붐이 뉴욕에서 재건되고 있는 모습을 새롭게 조명했다.

뉴욕이 새로운 테크 기업의 메카로 등장하는 데는 기술 이노베이션의 성격이 변하고 있는 것이 주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과 컴퓨팅 인프라는 곳곳에 있기 때문에 현재 새로운 이노베이션은 소셜네트워킹처럼 이를 이용한 서비스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애나리 색스니언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 교수는 “출판·광고·미디어와 패션 산업이 모두 뉴욕에 있다”며 “새로운 기술과 인터넷을 통해 모양을 새로 갖추고 정의를 새로 내리는 변신이 이들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새로운 마케팅을 벌이고, 정보의 습득과 전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창출 등을 활발하게 모색하는 산업들이 뉴욕에 모여 있다는 얘기다.

뉴욕에 기반을 둔 벤처캐피탈 회사인 유니온 스퀘어 캐피탈은 현재 27개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이 벤처캐피털의 투자내역서에는 모바일 소셜네트워킹 회사인 ‘포스퀘어’, 마이크로블로깅 플랫폼을 제공하는 ‘텀블’, 인터넷 비디오를 TV로 연결하는 소프트웨어 회사인 ‘박시’, 게임네트워크 회사인 ‘징가’ 등이 들어있다. 이들 기업들은 과거 기업에 제공했던 소프트웨어를 인터넷을 통해 직접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회사로 변신중이다. 유니온 스퀘어 캐피탈의 프레드 윌슨 창업자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소프트웨어 가운데 80%가 기업이 쓰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소비자를 위해 제공되며 더욱 미디어 중심적인 특징이 있다”며 “이는 바로 뉴욕이 강점을 갖는 분야”라고 말한다.

빽빽하게 밀집해 네트워크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뉴욕의 소셜라이프와 생태계는 테크 기업에 필요한 공급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제공한다. 광고 회사인 더블클릭의 CEO 출신으로 럭셔리 제품을 온라인을 통해 할인판매하는 웹사이트 ‘길트그룹’을 설립한 케빈 라이언 사장은 바로 뒷마당에 잠재고객이 존재하는 뉴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가 고용하는 사람은 삭스와 돌체 & 가바나에서 오는데 그들은 모두 뉴욕에 있다. 우리는 뉴욕에 있어야만 한다.”

뉴욕엔 초기 단계의 투자회사, 창업자금을 대는 인큐베이터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인기 있는 데일리 이메일 회사인 스릴리스트 공동 창업자인 벤 레러는 최근 아버지 케네스 레러와 함께 투자회사를 세워 700만달러의 투자자금을 끌어들였다. 벤 레러는 올해 25개 테크 기업에 투자할 예정이며, 이 중 80%는 뉴욕에 있는 회사에 투자할 계획이다. 아버지 케네스 레러는 미국 인터넷 미디어의 스타로 떠오른 ‘허핑턴 포스트’의 공동 창업자로 인큐베이터 회사인 베타웍스의 투자자이기도 하다. 베타웍스는 뉴욕 맨해튼 미트패킹지역에 근거를 둔 회사로 지난 2007년부터 약 25개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를 받은 기업에는 인터넷 주소 축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트닷라이(Bit.ly)’와 트위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트위트덱’ 등 주목받는 회사들이 들어있다.

일부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리스트들도 뉴욕으로 눈을 돌려 돈을 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두고 구글·트위터·페이스북 등에 초기투자했던 론 콘웨이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의 20%에 해당하는 자금을 뉴욕에 있는 25개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그는 “1년 전만 하더라도 뉴욕에 대한 투자 규모가 절반 이하였다”며 “뉴욕에는 실리콘밸리의 최고 신생기업처럼 유망한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기업가와 엔지니어·투자자 등이 유기적으로 얽혀 실리콘밸리 태동 초기의 생태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전미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경제 침체로 고전했던 지난해에도 모두 247건 14억달러에 이르는 벤처 투자 계약이 뉴욕에서 일어났다.

실리콘밸리의 성장에는 스탠퍼드 대학과 버클리 대학 등 대학이 큰 기여를 했다. 연구인력을 제공하고, 새로운 기술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들을 배출하는 요람 역할을 했다. 반도체 기술이 스탠퍼드 대학에서 나왔고, 구글 역시 스탠퍼드 대학 출신들이 창립한 기업이다.

뉴욕의 대학들도 이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컬럼비아 대학 응용수학과 크리스 위긴스 교수는 정기적으로 신생기업 기업가들을 캠퍼스로 초청, 학생들에게 테크 기업에 대한 경험을 들려주며 학교 내에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뉴욕시가 일부 참여하고 있는 벤처캐피탈 회사인 NYC 시드는 뉴욕 대학 폴리테크닉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학생들의 유망한 아이디어를 이익을 창출하는 벤처로 전환하는 것을 돕고 있다.

유망한 기업을 키우고 멘토 역할을 하는 기술 인큐베이터 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보스턴 기반의 도그패치랩스는 지난 1월 뉴욕에 문을 열고 유망한 기업에 몇 개월간 임대료 없이 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 초기투자 가능성을 열어 두고 가까이에서 유망기업을 살펴보며 키우는 것이다. 도그패치랩스에는 현재 13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뉴욕의 테크 붐은 역설적이지만 월가의 붕괴로부터 힘을 받고 있다. 졸업 후 월가로 향했던 인재들이 뉴욕에서 다른 커리어를 찾기 시작하면서 테크 기업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판단을 돕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헌치의 설립자인 크리스 딕슨은 “졸업 후 모건스탠리로 갔을 학생들을 테크 기업에서 구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트그룹의 케빈 라이언 사장은 “테크 커뮤니티가 과거보다 훨씬 광범한 풀의 사람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며 “서부에서 오는 인력을 채용하는 게 훨씬 용이해졌는데, 꼭 테크 기업이 아니더라도 뉴욕에는 다른 일자리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웹호스팅컴퍼니를 운영하는 스캇 빌씨는 20여 년 동안 살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최근 맨해튼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는 “테크 커뮤니티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고, 신생기업들이 바닥에서 끈끈하게 연결되는 모습이 실리콘밸리 초기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뉴욕이 테크 메카로서 새롭게 부각된다고 하더라도 아직 실리콘밸리에 비해서는 부족하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실리콘밸리가 갖고 있는 격자처럼 얽힌 경험 많은 멘토들과 풍부한 자금력을 지닌 초기투자자의 존재는 아직 뉴욕이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색스니언 교수는 “실리콘밸리는 늘 테크 클러스터를 선두에서 이끌어왔다”며 “그러나 실리콘밸리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경기에 따라 부침을 겪고 있는데, 지금은 뉴욕이 빛을 발하는 기회를 맞고 있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