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락·재반등의 30분 쇼크… ‘이유는 아직도 오리무중’

미국의 증권 역사상 지난 5월6일은 ‘이해할 수 없는’ 날로 기록될 전망이다. 물동이의 바닥에 구멍이 난 듯 주가가 별 이유 없이 단번에 곤두박질쳤다가 별 이유 없이 회복됐다. 불과 30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개장 시에는 여느 날과 다름없는 흐름이었다. 1만868포인트에서 시작해 작은 등락을 거듭했을 뿐이다. 그러나 정확히 오후 2시20분 한꺼번에 272포인트가 내려갔다. 이 정도면 ‘폭락’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있을 수 있는’ 하락세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여 분 후인 2시46분에 무려 995포인트가 빠져나갔다. 짧은 시간이지만 주가를 지켜보던 이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긴 심연 속의 멈춰진 시간이었다. 그래프는 마치 태평양의 해저 계곡인 마리나 해구의 깊이를 그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단 26분 사이에 995포인트가 자유낙하 하듯 떨어진 것은 미국 주식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다. 문제는 이 신기하면서도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에 대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를 두고 ‘혼란스러운(haywire)’이라고 할 뿐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못했다.

도마 위에 오른 초고속 거래

일부 종목의 주가에서도 이상스런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1주당 40달러대를 유지하던 종목이 불과 몇 분 사이에 단 몇 센트로 무너지기도 했다. 물론 수 분 뒤에는 가격이 다시 40달러대로 뛰어오르며 정상을 찾았다. 단 수 분 만에 사상 최대치의 붕괴 장세를 보인 것도 기록적이지만 이후의 모습도 밝은 하늘에 정체불명의 UFO를 본 듯 수수께끼처럼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폭락세를 보인 지 36분, 그리고 최저점에 도달한 뒤 17분 만인 2시56분에 995포인트까지 붕괴한 주가가 387포인트 빠진 상태로 회복, 무려 600여 포인트가 회복된 것이다.

증권 거래인들은 이 같은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으며, 누가 어디서 “이게 왜 이래”라는 외마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무슨 귀신에 홀린 듯 한 표정으로 전광판의 숫자를 주시하기만 했다. 수십 년 동안 주식시장을 누비며 거래인 생활을 해왔다는 폴 스미스씨 역시 “내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으며, 가뜩이나 불안하던 차에 드디어 올 것이 오는 것인가라는 참담함이 순간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짧은 시간 내의 폭락세와 그 직후의 재반등을 제대로 설명하는 이들이 없었으며, 지금까지도 이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조차 찾기 어렵다. 증시와 금융계의 개혁을 부르짖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하의 월스트리트에서 최근 찬바람을 몰고 다니는 증권거래위원회(SEC)조차 이 같은 사건이 벌어진 데 대해 아직까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날 저녁 주식시장이 마감되자마자 SEC와 다른 연방 정부 당국자들은 이 사건의  단서를 찾아 나섰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사안인 만큼 이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높기도 했지만 당국이 원인 규명에 나서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례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인 규명에 나섰다는 발표 이후에도 이렇다 할 설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초고속 거래(High Speed Trading)에 의한 매매가 사건의 발단일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초고속 거래와 이번 주가 폭락은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현재 주식거래는 컴퓨터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매도겦탉?주문 모두가 컴퓨터의 일정한 신호로 입력돼 이를 분석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답이 주어져 매매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 같은 매도겦탉?주문은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커다란 보드에 보이던 매도겦탉?주문의 양과는 달리 컴퓨터 신호 내부에서 매우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져 이뤄진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잘게 나뉜 조각들은 적절한 상대방 신호에 잘 대응하여 빠른 시간 내에 매매거래가 이뤄지도록 해주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조각을 내고 매매가 이뤄지는 나노초 동안에도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난 1월13일 SEC는 ‘플래시 거래(flash trading)’를 금지시켰다. 건전하지 않은 거래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플래시 거래는 컴퓨터를 이용해 매매 주문을 내는 것을 이용해 대형 증권사들이 초대형 컴퓨터를 동원, 다른 매매 주문이 접속돼 다른 신호와 접촉하는 데 걸리는 극초 동안의 간격을 미리 알아내 주문 상태를 알고 자동적으로 이에 대응해 차익을 내도록 하는 기법을 말한다.

헤지펀드의 성공비결은 컴퓨터 기술?

보통 증권회사가 컴퓨터 신호를 통해 증권거래소에 직접 거래 주문을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8마이크로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투자가들이 증권회사를 경유해 거래소 데이터 센터에 위치한 서버를 통해 주문을 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550~750마이크로초가 걸린다. 그러니 눈 깜짝할 새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컴퓨터 쪽에서 보면 엄청난 시간차를 이용해 자동적으로 대응하도록 프로그래밍하면 상당한 차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같은 초고속 매매에서 발생하는, 일반인들은 지난 2009년 8월까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틈새가 바로 이번 뉴욕 주식시장을 출렁이게 만들었으며, 주가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심해에 빠졌다 나오듯 붕괴됐다 제자리에 돌아오게 한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란 게 증권가의 짐작이다.

하지만 SEC가 이에 대해 속 시원하게 설명한 것은 없다. 초고속 거래를 하면서 극초 단위의 플래시 거래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해 이 같은 결과가 나왔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설령 설명하더라도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지난해 9월 SEC가 골드만삭스라는 거대 회사가 커다란 컴퓨터를 동원해 이 같은 편법으로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밝혀지기 꺼리는 미국의 치부’가 될 수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이 같은 내용은 ‘제로 헤저’라는 블로거가 폭로하기 전까지 월스트리트에서조차 거대 기업의 핵심간부가 아니면 알지 못했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초고속 거래로 움직이는 자금의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지난 2009년의 경우 1410조달러의 헤지펀드가 여기에 해당됐다. 그렇다 한들 이 같은 극초 단위의 거래 편법을 동원한 수법이 1000포인트 가까운 변동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컴퓨터 전문가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적인 원인도 가세했을 것이란 얘기다. 

오바마 “거래 시스템의 구멍을 막아라”

의문의 사건이 있은 다음날 SEC는 선물거래위원회(CFTC)와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고 조사할 것”이라는 짤막한 언급만을 내놓았다. 물론 이 같은 거래로 인한 컴퓨터의 글리치(돌연한 오작동)가 이날 사고의 원인이라고 규명하는 데에도 시간은 걸린다. 그때까지라도 당국이 이 문제가 불거지지 않기를 기대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고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이 잦아든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원인 규명과 별도로 다른 측면에서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뉴욕의 증시는 초고속 거래에 의한 플래시 거래 등이 수없이 벌어졌을 것이며, 누군가는 여전히 컴퓨터상의 기술적인 우위를 통해 거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법이 금지할 정도로 해악이 큰 거래 방법이 뉴욕 증시에 지금까지 존재해왔다는 점은 쇼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가지의 문제는 컴퓨터로 이뤄지는 현재의 증시에 누군가가 기술적인 우위를 이용해 이런 식의 편법적인 방법으로 이득을 취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나아가 경제위기 이전까지 엄청난 수익률을 자랑했던 헤지펀드와 온갖 펀드들의 성공 비결이 그들의 증시 예측 능력이나 분석 능력이 아니라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컴퓨터의 우위에 의한 것이라는 씁쓸한 분석도 대기 중이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금융개혁법안에 이런 거래를 금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고의 원인을 알아내야만 한다는 숙제가 SEC나 CFTC 등에게 주어졌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 자신도 이 문제와 관련해 “규제기관들이 문제의 근본을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는 말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불안을 온전히 잠재우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20여 년 동안 증권업에 종사해왔던 시포트증권의 테드 와이스버그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SEC에 물어볼 일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 정부가 증시가 이뤄지는 중간지역을 수십 개씩 만들어놓은 것이며, 그 중간지역은 어떻게, 어떤 규칙과 규제를 가지고 이뤄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미국 내의 ‘보이지 않는 손’들은 이번 사고의 파장을 인위적으로 서둘러 잠재우는 데 총력을 기울인 모습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신고서 기사를 수십 번 보도한 바 있는 <폭스뉴스>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혹평을 싣지도 않았으며, 유력 일간지들 역시 단신처럼 처리했다. 그리스의 경제 붕괴로 인한 유럽의 위기와 그 파장을 우려하는 기사에 가려졌지만 뉴욕 증시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번 사건은 앞으로 미국 경제의 건전성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경제의 단순하면서도 커다란 허점을 여지없이 보여준 사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