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전자업계에서는 몇 가지 충격적인 실적 발표를 했다.

 먼저 소니는 2004년(2004년 4월~2005년 3월) 영업 실적 예상을 크게 하향 조정했다. 그룹의 영업 이익은 전년도보다 11% 늘어난 1100억 엔(약 1조1000억 원) 정도이나, 이는 이전의 예상을 약 30%(500억 엔)나 밑도는 것이었다. 같은 기간의 매출액은 전년보다 5%가 줄어든 7조1500억 엔으로 예상했다. 이는 이전까지의 예상을 2000억 엔이나 밑도는 것이었다. 일본의 대표 기업 소니의 예상 실적 하락은 일본에 큰 충격을 줬다.

 소니는 며칠 후 4분기(2004년 10~12월) 실적 발표에서도 매출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8% 줄어든 2조4181억 엔이고, 영업 이익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무려 13% 줄어든 1381억 엔이라고 밝혔다. 그나마 영화와 금융 부문에서 실적을 올려서 그만큼이나 했다. 주력인 전자 부문에서는 23%나 수익이 줄어들었고, 반도체는 적자였다. 게임 부문도 37%나 수익이 줄어들었다. 이후 소니와 비슷한, 다른 기업들의 예상 실적 하향 조정 발표가 비 오듯이 쏟아졌다.

 NEC는 2004년도 영업 이익 예상을 1500억 엔에서 1350억 엔으로 줄였다. 히다치는 3000억 엔에서 2600억 엔으로, 도시바는 1900억 엔에서 1600억 엔으로, 후지쓰는 2000억 엔에서 1700억 엔으로, 모두 15% 이상 영업 이익 예상치를 하향 조정했다.

 더 심한 곳도 있다. 산요전기는 지난해 10월 일어난 니가타 지진의 영향으로 2004년에 710억 엔의 최종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됐으며, 파이오니어 역시 80억 엔의 당기 순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됐다. 3개월 전만 해도 산요는 140억 엔, 파이오니어는 100억 엔의 흑자를 기대하던 상황이었다. 파이오니어가 적자를 보게 되면 9년 만의 적자다.

 원래 일본을 받쳐온 양대 제조업이라고 한다면 자동차와 전자다. 특히 전자산업은 80년대 일본 경제가 세계 제일의 경쟁력을 자랑할 때의 원동력이 된 산업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는 컸다.

 그러나 이번의 실적 하향 조정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일본은 2003년 여름부터 2004년 중반기에 이르기까지 빠른 경제 회복세를 보였다. 

 이 경제 회복세의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중국’이고 또 하나가 ‘신3종의 신기’였다. ‘신3종의 신기’는 디지털 카메라, DVD 레코더, 패널 TV를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 ‘3종의 신기’라는 말은 일본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거울, 칼, 곡옥(曲玉)을 가리키는 말. 이들 ‘3종의 신기’가 1950년대 말~1960년대 초에 ‘필수 가전제품’이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당시는 일본이 전쟁의 상처를 딛고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로 흑백 TV, 세탁기, 냉장고가 생활필수품이 되며 폭발적인 내수가 일었다. 당시 일본은 이때의 호경기를 ‘신화 속의 이자나기 신이 일본을 창조한 이후 최고의 호황’이라는 뜻으로 ‘이자나기 경기’라고 불렀는데, 어느 가정이나 장만하는 이들 3가지 품목에도 역시 신화에서 유래한 ‘3종의 신기’라는 별명을 붙였었다.

 일본 경제가 2003년 이후 회복세를 보이는 데 디지털 카메라, DVD 레코더, 패널 TV가 큰 역할을 하자 일본 매스컴에서는 이들 3가지 상품을 ‘신 3종의 신기’라고 부르며 경제 회복을 기대했다. 이른바 전자업종의 회복세가 만들어낸 ‘디지털 경기’가 2003년 이후 일본 경제 회복의 실체에 가까웠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일어난 전자업종의 부진은 일본으로서는 그냥 가볍게 여기기는 힘든 일이었다.

 순조로웠던 디지털 경기가 갑자기 심각해지고 기업들이 앞다퉈 업적을 하향 조정하는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수요 일순이 원인이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이미 어느 정도 일반 가정에까지도 보급이 진행됐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 개척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예전의 경우 고화질을 기대해 새로운 기종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미 기존 디지털 카메라도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히 고화질이어서 새것을 무리해 구입하지는 않는다는 분석이다. DVD 레코더 역시 어느 정도 일본 내에서는 수요가 일순해 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다만 패널 TV만이 중장기적으로 계속 시장이 급속한 신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장 수요 이상으로 전자기업들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은 경쟁 격화와 가격 하락이다. 상품이 많이 팔린다고 해서 반드시 매출액이 많아지거나 이익이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일본에서 급성장하고 패널 TV 시장의 경우 매년 꾸준히 가격이 20%씩 하락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PDP 텔레비전의 경우 ‘1인치당 1만 엔’이 되면 보급이 쉬워질 것으로 예측했고, 이것이 일본 업체들의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에 경쟁이 격화되면서 지난해 연말에는 42인치대 텔레비전 가격이 훌쩍 30만 엔대로 내려갔다. 지난 한 해 동안 30~40% 정도 가격이 하락했다. 물론 기술 혁신으로 원가가 절감될 경우 이런 가격 하락을 기업이 두려워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해의 가격 하락은 ‘제 살 깎아먹기’ 전쟁이었다는 것. 특히 패널 TV는 육안으로 봐서 각 회사 제품들의 화질 차이가 금세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승부는 가격 승부다. 마치 ‘요원의 불길처럼’ 가격 하락이 번져간다고 일본 업계에서는 표현한다. 파이오니어의 예상 실적을 흑자에서 적자로 바꿔놓은 것은 바로 이 가격 하락이었다. DVD 레코더의 가격도 40% 가까이 떨어졌다.

 두 번째로는 지나친 생산이다. 일본의 대형 가전제품 회사들은 디지털 가전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지난해에는 생산 능력 증강에 힘을 썼다. 이 생산 능력 증강이 설비 투자로 잡히면서 사실 일본의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증강을 해놓고 보니 좀 지나쳤다. PDP 텔레비전의 경우 2004년의 세계 수요가 약 270만 대였는데, 이 텔레비전의 부품인 플라즈마 패널 메이커의 생산 능력은 전 세계에서 약 340만 대였다. 결국 이는 플라즈마 패널 가격 급락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상황이 전 전자부품업체로 이어졌다. NEC의 경우 액정 TV가 많이 팔렸음에도 반도체 자회사인 NEC일렉트로닉스가 부진한 바람에 영업 이익이 줄어들었다. 지난해 4분기에 액정용 반도체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이 원인이다. 도시바의 경우 역시 반도체 메모리의 가격 하락 때문에 실적이 떨어졌다. 4분기에는 우리나라 삼성전자 역시 가격 하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자회사들이 재고 처분에 주력하면서 생산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민간용 전자제품 생산량은 전달 대비 12.1%나 줄어들었다. 이 영향으로 전 산업을 망라한 광공업 생산량이 4분기에 0.8% 감소한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이런 상황이 설비 투자 약화 등으로 이어지면서 전체 경기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를 우려 속에 주시 중이다. 실제로 마쓰시타는 가장 좋은 실적을 내놓고도 ‘구조 조정’을 하겠다고 나섰다.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해당 기업 입장에서야 당연한 일이지만 나라 전체로 보면 실업 증가로 인한 경기 침체의 위험성도 내포하는 것이다. 일본 경기의 지속 회복이 전자업종이란 덫에 걸린 셈이다.

최흡 조선일보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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