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 대사가 전격적으로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에 내정됨으로써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사실상 확정됐다. 지금 워싱턴과 한국에서는 이 새로운 진용의 성격을 두고 분석이 한창이다. 핵심은 이들이 지난 1기 행정부와 같은 ‘강경파’인가, 아니면 국제적 현실을 중시하는 ‘실용파’인가 하는 데 모아져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들은 ‘강경파’이자 동시에 ‘실용파’이다.

 미국 외교·안보 정책에서 강경파라고 할 때는 흔히 ‘네오콘’(신보수주의)을 떠올린다. 네오콘은 세계를 선과 악의 대결로 나눠 보는 기독교 종교적 신앙처럼, 이 세계를 미국(혹은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과 미국의 적대세력으로 나누는 사람들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악은 공존을 타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쳐부수어 없애야 할 상대이듯이, 네오콘에게 미국의 적대세력은 없애야 할 ‘악의 세력’이다. 부시 대통령이 대테러전을 선언하면서 “미국에 협력하지 않으면 미국의 적”이라고 선언한 것이나, 그가 2002년 연두 교서에서 북한과 이란 등을 ‘악의 축’이라고 불렀던 것은 모두 이런 사상에 기초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또한 그 철학적 근저에는 이 선과 악의 대결사상이 깔려있다. 대량살상무기를 통해 미국을 공격하려 한다고 판단했던 이라크는 제거돼야할 대상일 뿐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 혼자서 성전(聖戰)을 수행하듯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내정자는 지난 4년간 그런 부시의 외교·안보정책의 최측근 보좌역이었다. 라이스는 이라크 침공을 가장 앞장서 주장하고 옹호해 온 인물이다. 부시 대통령의 ‘가정교사’로 불릴 만큼 부시 대통령의 정책과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따라서 라이스의 국무장관 지명은 지금까지 부시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이 그대로 또는 더 강력히 집행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라이스가 외교정책의 수장이라면,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안보정책의 실행자로 완벽한 이념적·철학적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수많은 국내외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럼즈펠드 장관을 교체하지 않은 것 역시 라이스를 국무장관에 지명한 것과 같은 배경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음으로써 그의 기존 정책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혔다. 라이스와 럼즈펠드를 쌍두마차로 한 부시 2기의 외교·안보정책의 방향은 변화할 어떤 이유도 보여주지 않는다.

 국무부 내의 다른 주요 인물들 또한 마찬가지다. 로버트 죌릭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국무부 부장관에 지명되자 라이스의 국무부가 ‘실용주의’ 노선을 걸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부 대두했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강경 노선의 대립 개념이 아니며, 유연한 외교정책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실용주의란 굳이 따진다면 ‘이념주의’의 반대말과 비슷한 개념으로,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문제와 상관없이 오직 미국의 국가 이익 보호와 목표 달성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생각이다.

 이럴 경우, 예컨대 북한 핵문제는 오직 미국의 안보와 세계 전략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다뤄질 수 있다.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을 배려해서’ 또는 ‘국제 여론을 의식해서’라는 식의 관점은 실용주의 노선과는 걸맞지 않다. 북한 문제에 대한 보다 강력한 대응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강경파’와 ‘실용파’는 하나의 그룹이지 분리되거나 대립하는 세력이 아니다. 라이스와 럼즈펠드, 죌릭의 공통점은 모두가 부시 대통령과 절친한 관계를 맺어 온 인물들이란 점이다. 부시 대통령의 이번 2기 외교·안보정책 라인 구성이 친정체제 강화로 표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시에 대한 충성과 이념의 공유, 그것이 이번 부시 2기 외교·안보 라인의 특성이다.

 국무부 라인 중 존 볼튼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이 나가자 네오콘의 입김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성급한 예측이다. 네오콘 이념의 선봉에 서 있는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유임됐다. 더구나 존 볼튼의 후임자로 내정된 로버트 조셉 백악관 전 국가안보회의(NSC) 핵확산방지 담당 보좌관은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현 NSC 보좌관) 바로 밑에서 모든 외교·안보정책을 함께 해온 사이다. 미국의 외교 전문가들은 “존 볼튼과 로버트 조셉은 짝을 이루는 사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볼튼만큼 강경파라는 뜻이다.

 국무부 차관보에 내정된 크리스토퍼 힐 대사 자신은 대화를 중시하고 한국의 사정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하나, 그는 최근 여러 강연에서 “북한 핵문제는 무기한 방치할 수 없다”거나 “북한 인권문제는 핵문제와 별개이며 내정 간섭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하는 사이로 평가된다. 부시가 힐 대사를 자신의 텍사?크로포드 목장으로 초대했다는 사실 이상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또 한 축인 국가안보회의도 기존 성향에서 변할 것이 없다. 라이스 보좌관 후임자는 누구도 아닌 스티븐 해들리 부보좌관이다. 라이스와 함께 지난 4년간 이라크와 북한 문제를 다뤄 왔다. 그 아래 마이클 그린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있으며, 다시 그 아래 빅터 차 아시아 담당국장이 임명됐지만, 이들도 모두 강한 보수주의자들이다.

 이것만일까.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최고 지휘자이자 ‘실세 대통령’으로까지 불리는 딕 체니 부통령이 이들 모두의 뒤에 버티고 서 있다. 그는 부시 행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총사령탑이나 마찬가지다. 요즘 한국에서는 미국의 새 외교·안보 라인이 ‘실용주의자’들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 기대가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들 인물의 면면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허용범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