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케릭. 그만큼 산꼭대기까지 올랐다가 순식간에 절벽으로 떨어진 이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창녀의 아들로 태어나 고교를 중퇴했고 뉴욕경찰청장까지 오른 입지전의 대명사였다. 그가 최근 미국 15개 부처 중 최대 규모인 국토안보부 장관에 지명되자 그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한국 여성과의 사이에 딸을 낳은 적도 있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일주일 만인 2004년 12월10일 갑자기 지명이 취소됐다. 이유는 멕시코 출신의 불법 이민자를 가정부로 고용해 왔고 그 고용에 따른 세금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케릭 자신이 밝힌 대로, 상원 인준청문회 준비를 하면서 자신도 몰랐던 그 같은 불법 사실이 드러나 스스로 지명 철회를 요청한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화려한 성공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온갖 의혹을 달고 다닌 문제덩어리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의 ‘추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콘도미니엄 사용비 5000달러를 내지 않아 체포영장이 발부된 전력을 갖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 정도 전력만으로도 장관이 되기엔 어림도 없다. 2003년엔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돼서는 경찰을 훈련시키라는 임무는 하지 않고 돈 버는 일에 열중하다가 쫓겨났다는 사실이 또 드러났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뉴욕경찰청장 퇴임 후 전기충격총 회사에 임원으로 갔는데, 단 3년 만에 600만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자기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이 회사의 스톡옵션을 팔아 챙긴 거액이 재산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 회사는 전기충격총을 대부분 주나 지방의 경찰에 팔아왔다는 사실이 이유를 말해 준다.

  압권은 그 다음이었다. 그는 정부(情婦)를 두고 있었다. 한 명이 아닌 두 명이었다. 정부 중 한 명은 감옥 간수였다. 케릭은 뉴욕경찰청장 전에 뉴욕시의 교정(矯正)감독관이었다. 다른 한 명은 리건북스라는 출판사 사장이었다. 이 출판사는 케릭의 자서전(‘미아: 정의를 추구한 인생’)을 펴낸 곳이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뉴욕경찰청장 재임 당시 갱단과도 연결돼 있었다고 <뉴욕 데일리 리포트>가 폭로했다. 그는 뉴저지 주의 한 건설회사에 동생을 취직시켜 놓고 있었는데, 그 회사는 갱단인 갬비노 패밀리와 밀접하게 연결된 곳이라는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런 케릭의 전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인물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왜 장관에 지명했느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는, 케릭의 후견자와 같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추천 때문이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고장 났기 때문이 아니냐고 본다. 백악관은 케릭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자체 검증 절차를 거쳤고 문제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믿는 언론은 별로 없다. 재선의 자신감에 들뜬 부시 행정부가 제대로 된 검증도 없이 급하게 일을 서두르다가 실수를 한 것으로 보는 분위기이다.

  어느 쪽이든 케릭의 사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이 때로는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한 경우이다. 미국처럼 공직자 임용 검증 절차가 엄격하기로 유명하고,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에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허용범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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