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법규를 강화하면서
앞으로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젠 더 이상 중국은 제조업자들의 천국이 아닌가.
 중국의 노동 정책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외국 자본을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삼아온 중국은 적극적인 외자 유치를 위해 20년 이상 친기업적 노동 정책을 지속해 왔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우리 노동자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600~900위안(약 9만~13만5000원)의 월급을 받고도 우직스럽게 일하는 중국 근로자는 ‘제조업 천국’ 중국의 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동 정책의 무게 중심이 노동자 권익 보호로 조금씩 옮겨가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 등 중국의 4세대 지도부 등장 이후 부쩍 강조하고 있는 ‘이인위본’(以人爲本; 인민을 근본으로 삼음) 통치 이념과 맥락을 같이한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수반된 빈부와 지방 간 격차, 실업 등과 같은 사회문제 속에 신음하는 소외 계층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공회(工會; 우리의 노조와 비슷) 조직도 부쩍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자 스스로의 권리 의식도 급속히 성장하는 추세다. 경제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지방 각지에서는 제 몫을 찾으려는 노동자·농민들의 폭동에 가까운 시위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위로는 정부가, 아래로부터는 노동자가 압박하면서 중국을 ‘제조업 천국’에서 ‘노동자의 천국’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2004년 12월1일부터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대폭 강화한 ‘노동보장감찰조례‘를 시행했다. 조례의 위상도 기존의 노동·사회보장부(한국의 노동부) 규칙과 규정을 국무원 총리령으로 격상시켰다.



 노동 관련 법규 대폭 강화

 

 새 조례는 기업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노동자 단체나 개인은 노동보장법률을 위반한 사례에 대해 행정 부서에 고발할 수 있는 권한을 신설하고, 고발자에게는 포상금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각급 단위 공회는 노동자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자단체의 법규 준수 여부를 감독하도록 규정했다. 노동보장감찰을 받는 기업은 감찰단 요구에 따라 서면 자료를 제출해야 하며, 규정 위반 정도가 심한 기업은 명단이 공개된다.

기업의 의무는 훨씬 구체화되고 엄격해졌다. 기업주들이 의무적으로 납입해야 하는 각종 사회보장기금을 제대로 내지 않을 경우 미납금액의 1배 이상 3배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규정하고, 사회보험기금을 사취할 경우에는 벌금과 함께 형사 책임까지 부과되도록 했다. 또 기업주가 연장 근로 시간 기준을 무시하고 작업 시간을 연장할 경우 해당 노동자 1인당 100~500위안(약 1만5000~7만5000원)의 벌금을 물도록 했다.

 임금 체불에 대한 처벌도 강화됐다. 노동자의 급여를 정당한 이유 없이 지불하지 않을 경우 지불해야 할 임금의 50~100%를 배상금으로 별도 지급하도록 했다. 이 밖에 모성 보호 규정도 강화해 임신 7개월 이상 여직원은 광산 작업이나 야간작업이 금지되며, 산후 휴가는 90일 이상으로 규정했다.

일부 지방에서는 새 조례 시행에 앞서 노동 관련 법규 위반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 사전 ‘군기’(軍紀) 잡기에 나서기도 했다. 상하이시는 2004년 11월 초까지 관할 지역 기업의 노동보장법 위반 업체를 집중 단속해 3177개 업체를 적발했으며, 그 중 위반 정도가 심한 474개 업체에 대해서는 벌금형 등의 처분을 내렸다.



 외자 기업 노조 설립 압박



 2004년 11월24일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은 충격적인 뉴스를 전했다. 철저하게 ‘무노조 경영’ 원칙을 고수해 온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가 중국에서는 손을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월마트는 11월23일 성명을 통해 “종업원들이 노조 설립을 요구할 경우 월마트 중국법인은 그들의 희망을 존중하고 중국의 노조 관련법에 따른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월마트의 이와 같은 노조 설립 허용 방침은 우리의 노총 격인 중화전국총공회(中華全國總工會)가 집요하게 공격한 결과다. 중화전국총공회는 30개 성·직할시·자치구 총공회와 16개 산업별 공회 등 171만개 하부 조직과 1억340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조직이다. 노조 최상급 단체로 볼 수 있는 이 총공회는 지난해 10월부터 중국에 진출해 있는 다국적 기업 중 공회가 없는 기업들을 지목해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총공회의 공격 대상에는 델·코닥·맥도날드·KFC 등이 포함돼 있었으며, 월마트는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타깃이었다.

 중국에 39개의 점포를 운영 중인 월마트는 중국인 근로자 2만여 명을 채용하고 있다. 2005년에 15개 점포를 중국에 추가 개점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월마트로서는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총공회의 공격을 계속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중화전국총공회의 공격 대상에 삼성전자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중화전국총공회 기층조직부 양훙린(楊洪林) 부부장은 2004년 10월 말 “각 지방 정부와 함께 공회를 설립하지 않는 외국 기업 블랙리스트를 작성할 계획”이라며 “공회 설립을 거부하고 있는 외국 기업은 장차 소송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부장이 당시 공회 설립을 거부하고 있는 기업으로 지목한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와 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 8개도 포함돼 있었다.

 삼성뿐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상당수 한국 기업들도 앞으로 노무 관리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2만여 개로 추산되는 중국 진출 한국 기업 대부분이 노동자 총 임금의 2%를 공회 경비로 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공회 설립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노사 분쟁



 선전(深?)의 한 가전업체 공장 근로자들은 2004년 11월 말 공장 이전과 임금 체불에 항의해 1개월 가까이 시위를 벌였다. 11월3일에는 원저우(溫州)에서 근로자 100여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2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승용차 3대를 불태우는 폭력 시위를 벌이다가 출동한 무장 경찰에 의해 진압된 일도 있었다. 대형 건설 현장에서 민궁(民工; 막노동꾼)들이 임금 체불에 항의해 시위를 벌이는 사건은 뉴스로도 취급 받지 못할 정도로 흔한 일이다.

 중국 근로자들이 스스로의 권익을 찾겠다는 권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노사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구슈롄(顧秀蓮) 전인대 부위원장은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2003년 노동 관련 소송은 2만2600건으로 전년보다 5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또 2004년 상반기 30명 이상의 노동자가 참가한 중·대형 분규도 2003년 같은 기간보다 11.9% 증가했다.

 이에 따라 임금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중국 국제금융보에 따르면 2004년 중국 임금 상승률은 6.4~8.4%로, 아시아 국가 가운데 인도 다음으로 높았다. 이는 중국에서 저임금의 이점이 갈수록 줄어들고, ‘노동 분쟁의 리스크’는 갈수록 늘어난다는 걸 보여주는 통계다.

조중식 조선일보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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