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 우랄산맥 북동쪽이자 북해연안 땅 끝에 위치한 야말반도의 중심 나딤시(市). 인구 7만 5000명이 살고 있다. 도시 역사는 겨우 34년 됐다. 겨우내 영하 30~60℃를 오르내리는 곳이지만 러시아를 먹여 살리는 동력원이다. 이곳은 가스 매장량(47조㎥)으로 세계 1위, 석유 매장량(99억t)으로 세계 6위의 자원 대국 러시아 석유 매장량의 74% 이상, 가스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 ‘에너지 심장부’요, 노다지 땅이다.

버림받았던 북극지대 야말반도가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1972년. 가스전과 유전이 속속 발견되면서 세상이 뒤바뀌었다. 타마라 아야비요바시(市) 행정실 직원은 “가스·석유개발이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주변도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며 “한집 건너 한 명 이상 석유·가스 종사자들이 살고 있을 정도”라 했다. 그는 “도시의 역사는 석유·가스개발의 역사”라며 “시 건물 전체가 에너지를 판돈으로 건설됐다”고 덧붙였다. 이곳 사람들은 “야말반도는 발만 비비면 석유와 가스가 쏟아지는 땅”이라며 농담했다.

이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수단은 오직 항공편뿐이다. 툰드라 지대에다 사방이 호수 천지라 외부의 접근도 어렵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직선거리 2300여㎞ 떨어져있어 모스크바에서 약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영하 40도의 극한지대가 노다지

지난 3월19일 기자가 야말반도를 찾아간 날은 영하 40℃였다. 공항에서 거리로 나서는 순간 벌써 코털이 얼어붙었다. 볼펜과 수성펜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쓸모가 없었다. 현지 주민들은 “여기는 모스크바가 아니다”고 충고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모피로 치장하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과 신발 모두 곰과 순록 등 동물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나탈리야 카쉬타노바씨(40)는 “극지대에서 생존하려면 모피 등이 가장 효율적인 보온 수단”이란다. 나딤시 주변의 유전지대와 가스지대는 널려 있었다. 헬기를 타고 주변 지역을 10분 정도 벗어나니 거대한 불기둥과 함께 유전이 나타났다. 유전은 곳곳에 형성돼 있었다.

러시아 제1석유업체인 루코일사가 운영하는 유전지대. 2001년부터 원유를 생산해온 전진 기지이다. 이곳에서 연간 100만 톤의 석유를 생산한다. 석유 생산 현장에는 6메가와트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와 석유 저장소, 송유관으로 원유를 내보내는 펌프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유전지대에서 1㎞정도 떨어진 곳에서는 펌프 매설작업이 한창이었다.

유전 관리책임자인 이반 비트코씨(47)는 “이곳 현장에는 2개 유전을 중심으로 1000명이 일하고 있다”며 “날씨와 생활 등 워낙 노동 여건이 열악해 노동자들은 두 달 동안 근무하고 휴가를 다녀온다”고 한다. 석유 노동자들은 24시간 교대로 일하고 있었다. 지난 1월에는 영하 55℃까지 기온이 떨어졌다. 석유 노동자인 세르게이 마르코프씨(40)는 “비행기로 세 시간 거리에 가족들이 살고 있고, 혼자 나와 일하고 있다”며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두 달 동안 석유 냄새만 맡고 산다”고 한다. 교대 근무 후 유일한 낙은 가족들과 전화로 안부를 묻고 TV를 시청하는 것이다.

이곳 유전지대에 매설된 펌프는 지하 3000m에서 원유를 끌어올렸다. 원유는 곧바로 정제되어 600㎞ 이어진 송유관을 통해 저장소에 보내지거나 유럽으로 연결된 송유관을 통해 수출되고 있었다. 극지대에서 작업과 생존이 가능한 것은 첨단 장비 덕이다. 빅토르 레비도비치(49) 기술담당 국장은 “러시아산뿐만 아니라 영국과 노르웨이에서 도입한 시추장비를 이용하고 있다”며 “툰드라지대에서 시추는 가장 어려운 작업이지만,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채굴기 등 현대화된 장비들과 지질학 분야의 첨단기술이 적용되고 있어 작업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에너지 무기화의 중심에 선 기업 ‘가즈프롬’

헬기를 타고 20분을 이동했다. 러시아 독점 가스사이자 공룡기업으로 불리는 가즈프롬이 운영하는 천연가스 압축기지. 툰드라에 떠있는 거대한 에너지 공급기지다. 헬기에서 내려다본 기지는 사방으로 파이프가 축적돼 있었고 직경 1200~1400㎜짜리 대형 가스관이 사방으로 뻗어있었다.

니콜라이 코로셀료프 압축기지장은 가스 압축 시설을 공개하면서 가스압 표시판의 ‘75’라는 숫자를 가리켰다. 그는 “툰드라지대에서는 이 압력을 유지해야 정상적인 가스 공급이 된다. 만약 이곳에서 가스압이 떨어지면 우크라이나와 유럽으로 공급되는 가스량는 곧바로 감소한다”고 했다. 이반 코찰코 안전국장은 “25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이 가스압 등을 상시 체크하고 있다”며 “이 기지에만 40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압축 기지는 100㎞마다 세워져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지난 1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공급 중단사태 이후 세계는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절대적인 유럽 각국은 에너지 수입선의 다변화와 가스 대체 에너지 안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부각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여유롭다. 원자력 건설에 대한 국제적인 여론이 부정적인 데다 각국이 당장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발 ‘에너지 무기화’의 전면에는 ‘가즈프롬’이 버티고 있다. 가즈프롬은 지난해 12월 주식거래 자유화조치로 주식시장 가치 1945억달러로 세계 3위의 에너지 기업으로 부상했다.

가즈프롬은 크렘린궁이 직접 관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에너지 회사다. 러시아 정부는 에너지 산업의 국가통제권 유지를 골자로 한 장기 에너지 전략 ‘2020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가즈프롬에 핵심 역할을 맡겼다.

알렉세이 포체프킨 가스프롬 국장은 “가스관의 길이와 가스관의 종착지에 따라 가스 공급가격은 책정된다”며 “옛 소련 국가들이 국가 간 합의에 의해 공급가 혜택을 받고 있지만 조만간 유럽 공급가인 1000㎥당 200달러 이상 수준으로 갈 것”이란다. 매년 유럽국가에 대한 가스 가격 인상 압박카드를 쓰고 있는 가즈프롬의 성장세는 하루가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하루 석유 생산량 940만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구 소련체제 붕괴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야말반도에서 생산된 석유의 80% 이상이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유럽은 이곳에서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25%를 공급받고 있다.

발레리 이사코비치 나딤 루코일 사장은 “야말 석유는 고갈되지 않는다. 가스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에서 석유를 생산한지 150년이 됐다. 어디 하나 생산을 중단한 곳이 없지 않느냐”며 자신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에너지 연구원은 “미국이나 서방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에너지를 더욱 전략화하고 무기화할 것”이라며 “이들은 에너지 대국인 러시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지금 러시아는 가즈프롬을 내세워 유럽 등 에너지 소비국을 인질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