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에 안방 내주고 5위 추락

성장하는 기업과 쇠퇴하는 기업은 숫자로 나타난다. 각 분기, 회계연도를 마친 시점에 매출, 이익, 주가 등의 성적표가 공개되고, 기업 간 명암이 갈린다. 하지만 가끔 욱일승천하는 기업의 기세와 쇠퇴하는 기업의 안간힘이 한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지난 4월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북미 최대의 휴대전화 전시회 ‘CTIA(Cellular Telecommunications & Internet Association) 2009’ 전시장은 기업 전쟁의 명암을 한 화면에 담은 현장이었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글로벌 휴대전화 전쟁에서 치고 올라오는 스타 기업의 면모를 유감없이 뽐낸 반면, 한때 미국 IT기업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모토로라는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석양의 기업처럼 위축됐다.

반드시 맞는 등식은 아니지만, 기업의 위상은 대개 전시회에서 차지하는 면적으로 나타난다. 이번 전시회에서 LG전자는 약 926m²의 공간을 점유, 참가 기업 가운데 가장 넓었고, 삼성전자도 827m²의 면적에 제품을 전시해 한국 기업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반면 지난해 7276m²의 공간을 차지했던 모토로라의 전시장은 올해는 절반도 안 되는 약 331m²로 줄었다.

20여 년 전 세계 시장에 적수가 없었던 모토로라가 당시엔 흔적도 없었던 한국의 휴대전화 기업들에게 밀려나고 있다. 모토로라는 지난해 하반기 자신의 안방인 북미 시장 수위자리를 삼성전자에게 내주고 말았다. 삼성은 지난해 3분기 북미 시장에서 점유율 21.9%로 모토로라의 21.2%를 뛰어 넘었다. 4분기에는 LG전자마저 모토로라를 제쳤다. 삼성전자(23.7%), LG전자(20.9%), 모토로라(17.1%) 순으로 역전됐다.

마치 방향을 바꿔 달리는 듯한 상승과 추락의 길에는 이제 가속이 붙었다. 올 1분기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4600만 대의 휴대전화를 판매해 점유율 19.2%를 기록하고, LG전자도 2300만여 대의 휴대전화를 판매해 점유율 9.6%로 3위 자리를 지킨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모토로라는 올 1분기 점유율이 7.8%로 떨어져 지난해 4분기(8.2%)보다 2.4%포인트 하락했다. 세계 시장에서 5위로 떨어진 모토로라는 이제 중국 기업 ZTE에게마저 추격당하고 있는 양상이다.

모토로라의 재무제표는 피를 흘리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모토로라의 매출은 1년 전보다 26% 감소한 71억달러로 줄었다. 1년 전 1억달러의 흑자를 냈던 모토로라는 3분기 3억9700만달러의 순손실에 이어 4분기에는 무려 36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모토로라는 지난해 10월 30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올 1월 다시 4000명을 해고했다.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올해 계획했던 새로운 휴대전화 출시도 속속 중단되고 있다. 글로벌 크라운 캐피탈의 테로 퀴티넌 애널리스트는 “모토로라는 너무 규모가 줄어들어 각 계층의 수요에 맞는 휴대전화를 생산할 수 있는 제품 개발 라인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라며 “글로벌 휴대전화 공급자로서 어떻게 이번 위기를 빠져나올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모토로라의 오늘은 화려했던 모토로라의 어제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1969년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다”는 메시지를 송신했던 무전기가 바로 모토로라 제품이었다. 1928년 배터리 정류기를 다루는 회사에서 출발한 모토로라는 1936년 최초로 경찰 순찰용 휴대 무전기를 개발하고, 양방향 무전기, 상업용 FM 방식 무전기, 무선호출기, 세계 최초의 휴대 무전기 등을 만들어 낸 무선통신기기 분야의 선두주자였다.

모토로라는 1973년 세계 최초의 휴대전화인 다이나텍을 개발하고, 10년 뒤 이를 상용화한 다이나텍 8000X모델을 출시했다. 육중한 모양으로 ‘흰색 벽돌’로 불린 이 제품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771g짜리 경량화 제품으로 10시간 충전에 단 30분만 통화할 수 있었지만 3995달러의 초고가에 팔렸다. 

당시 삼성전자는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을 여는 나라가 휴대전화 하나 못 만들면 되겠냐”며 모토로라의 다이나텍8000 10대를 들여와 분해, 조립을 반복한 끝에 최초의 국산 휴대전화 SH-100을 만들었다. 당시 삼성은 모토로라의 제품보다 ‘약간 가볍다(700g)’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 수준이었다.

모토로라가 1996년 출시한 스타텍은 최초로 진동과 문자메시지 기능을 지원하면서 88g의 초경량 제품으로 출시돼 전 세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7500만 대나 판매됐다. 1970년대 매출 7억9000만달러였던 모토로라는 1990년대 들어 매출 규모 108억9000만달러의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스타텍 이후 후속 제품을 개발하지 못한 모토로라는 이때 1차 고비를 겪는다. 모토로라가 주춤거리는 사이 바짝 뒤를 추격한 노키아에 1998년 휴대전화 시장 1위 자리를 내주고 만다. 이후 적자에 허덕이던 모토로라는 2004년 휴대전화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히트를 기록한 레이저폰(Razr)을 출시했다. 면도날처럼 얇은 두께의 레이저폰은 전 세계에서 1억 대 이상 팔렸고, 국내에서도 200만 대 이상 판매됐다.

모토로라는 그러나 여기서 다시 스스로 판 ‘성공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패션업계처럼 유행이 바뀌는 휴대전화 시장의 흐름을 선도하지 못하고, 레이저의 짝퉁처럼 보이는 제품군을 선보이다 깊은 추락의 골로 떨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애플과 모토로라를 비교하면서, 2001년 경기 침체 당시 애플은 오히려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가며 아이팟과 아이폰 등 히트제품을 낸 데 반해, 모토로라는 연구개발 투자를 등한시하는 바람에 이후 운명이 갈렸다고 분석했다.

인포테크 리서치그룹의 카미 레비 수석 애널리스트는 “휴대전화 제조업체는 가장 최근에 히트한 제품만큼 인기가 있는 것”이라며 “이 제품을 얼마 후 (스스로) 벽에 던져 박살내지 않으면, 휴대전화 제조업체는 곤경에 처한다”고 말한다.

가령, 2005년 모토로라의 레이저폰은 대당 500달러에 팔리는 아이콘 제품이었으나, 2년 뒤엔 이동통신회사 서비스를 2년간 이용하는 조건으로 30달러만 내면 구입할 수 있는 제품으로 전락했다. 당시 삼성은 이미 모토로라의 레이저폰보다 40% 더 얇은 ‘실버킬러(Slvr-kllr)’ 제품을 출시하며 시장에서 앞서가고 있었다.

모토로라의 몰락은 냉정한 기업 전쟁의 단면이다. 오늘 게으른 기업은 내일 멸망한다는 생존 법칙의 또 다른 방증일 뿐이다. 2009년 CTIA 전시장은 이런 면에서 화려한 전쟁터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넓은 공간에 이번에는 애플의 아이폰을 겨냥, 터치폰에 유저 인터페이스를 대폭 보강한 신제품을 최전선에 배치하며 다시 고지를 선점하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한편에 1위를 지키려는 노키아의 수성의지와 부활을 노리며 안간힘을 쓰는 모토로라의 분전, 미래의 삼성·LG를 꿈꾸는 중국 ZTE의 야망이 서로 충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