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빌라들은 담장 두께가 1.5~2m지요. 탱크만이 벽을 깨부술 수 있지요. 높이요, 기본이 6m지요. 그 안에 뭐가 있는지는 주인밖에 몰라요. 지난 한해 동안 이 지역 부동산 거래액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무려 30억달러나 돼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지척거리에 있는 루블료브카 지역에서 만난 부동산 전문가는 동네 얘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기자에게도 생소한, 한마디로 별천지 세상 얘기였다.

 모스크바 시를 감싸고 있는 외곽순환도로(MKAD). 이곳에서 자동차로 불과 1분만 가면 접할 수 있는 루블료보·우스펜스코예 대로. 이곳은 소련 시절 공산주의의 축소판이다. 주로 정부 고위 관리들과 당 간부들이 살았다. 고급 별장과 레스토랑, 휴양소들이 들어선 공산주의 시절 권력가들의 천국이었다.

 지금 이곳은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옛 소련 시절 부유촌의 이미지는 사라졌다. 대신 초현대식 별장들이 들어서고 있다. 러시아 정부 관리들과 올리가르히로 불리는 신흥재벌들이 경쟁하듯 초호화판 별장을 건설하는 중이다. 야외 수영장과 골프 연습장이 딸린 슈퍼 헤비급 빌라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연예인과 의원들도 가세했다. 공산주의 시절 고위 관리들의 천국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자본주의 현장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루블료브카,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부러울 것 없는 러시아 부자들의 생활 구역이다.

 루블료브카에서 쇼핑을 하려면 적어도 1만달러는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물건 값이 워낙 비싸다는 얘기다. 이곳 마을의 종합쇼핑오락센터 ‘바자르’는 소문난 곳이다. 대서양과 지중해에서 직송해 온 고급 해산물이 인기 품목이다. 새우와 바닷가재는 마리당 100~500달러,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들여온 치즈는 700~3000달러에 팔리고 있다.

 신발 매장도 가관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신발들을 전시해 놓았다.  프랑스 유명배우 제라르 드파르듀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요한 바오로 2세가 신거나 신었다는 신발들이 전시돼 있다. 고객들은 신발을 주문하면서 수천달러를 지불한다. 주문한 뒤에도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매장 측은 부자들이 한두 켤레가 아닌 수십 켤레의 구두를 주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죽·모피 매장은 10만달러짜리 모피코트를 파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 시즌에는 크리스털 제품들이 아주 인기였는데, 크리스털 촛대 하나 가격이 자그마치 5000달러(500만원) 수준이어도, 가격은 크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또 다른 백화점인 주코브카-플라바에서는 금으로 장식된 8000달러 핸드폰, 타조 가죽으로 만든 구두가 1500달러에 팔려 나갔다. 애완동물용 매장도 대단했다. 개가 입는 옷 한 벌에 200~500달러, 금과 다이아로 만든 개목걸이는 2300유로에 팔리는 중이고, 애완동물 입 냄새 제거제까지 팔고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 인기를 끄는 상품은 애완동물 시력 보호용 안경이라고 했다.

 주변 고급 식당들도 부자들의 세상이다. ‘바자르’ 내 레스토랑. 코냑 종류만 수십 가지로, 24K 금으로 장식된 크리스털 병에 든 코냑은 100년 이상 된 것이다. 값은 수천에서 수만달러까지였다. 카지노도 있는데, 카지노와 클럽을 겸한 ‘디나스티아’ 내 식당은 이 지역 요지에 자리잡은 황금 상권이다. 직원들이 카지노 앞 사거리 입구에 푸틴 대통령 별장까지 10㎞. 옐친 대통령 별장까지 10㎞라는 표지판을 세워 놓아야겠다고 말할 정도로 위치가 좋았다.

 음식 값은 기본이 30~60달러. 코냑 루이 13세와 헤네시 리처드의 가격은 200달러인데, 당연히 한 병 값이 아니라 한 잔 가격이다. 이곳 고급식당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는데, 바로 주코프카에 있는 식당 ‘황제의 사냥’이다. 이곳에서는 사냥철이 되면 곰고기와 사슴고기, 멧돼지고기 등이 메인 요리로 바뀐다. 레스토랑 매니저 루샨 아르슬라노프씨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영화감독 니키타 미할코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유리 루쉬코프 모스크바 시장 등이 식당을 찾는다”고 말했다.

 루블료브카에 살고 있는 부자들은 인생을 확실하게 즐긴다. 예술과 문화, 스포츠 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주변 지역에는 사철 이용할 수 있는 잔디구장과 실내 빙상장이 있다. 6개의 개봉관을 갖춘 영화관도 있다. 개인 예약이 가능한 곳이다. 이곳 개봉관에는 거의 모든 영화들이 준비돼 있으며, 영화뿐 아니라 술과 안주를 준비해 대접한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갤러리도 생겨났다. 갤러리 소유주인 블라디미르 출리코프씨는 “유리 바쉬메트나 니콜라이 페트로프 같은 거장들의 콘서트가 열리면 입장료가 수백달러를 넘는데도 홀이 꽉 찬다”고 말했다.  그는 “루블료브카 부자들은 생일잔치와 이브닝파티에 오케스트라와 서커스, 불꽃놀이는 기본”이라며, “러시아 연예인에 식상한 부자들은 외국의 유명 음악가, 쇼맨들을 초빙해 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루블료브카에 사는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들이지만, 무조건 돈을 뿌리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러시아에서 마주하기 힘든 친절한 분위기와 서비스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점원이 손님에게 등을 돌리는 것조차 싫어해 점원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루블료브카는 러시아 일반인들도 상상하기 힘들고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이곳에는 러시아판 비버리힐스가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