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프롬, 로스네프트, 트란스네프트. 러시아의 미래는 한마디로 이들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가 세계 에너지 안보를 좌우하는 축으로 등장하면서 러시아 경제를 이끄는 이들 3대 국영 에너지기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즈프롬은 러시아 독점 가스사이자 세계 최대 가스회사이고, 로스네프트(‘네프트’는 러시아어 ‘네프치(석유)’의 영어식 표기)는 러시아 2위 석유회사, 트랜스네프트는 파이프라인 독점사다.
이들 3대 기업은 푸틴 정권 탄생과 더불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 정부 지원 없이도 외국 기업들과 충분히 맞설 만큼 규모와 경쟁력이 확대되고 있다. 지금 러시아에는 이들이 삼두마차(三頭馬車)를 형성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정점에서 지휘하는 ‘국가 자본주의(에너지기업과 정치 권력이 융합된 자본주의)’ 형태가 나타났다. 에너지가 세계를 지배하는 세태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즈프롬은 세계 가스 부존량의 16%를 장악하고 있는 초거대 에너지기업이다. 러시아 가스 생산의 93%를 책임지고 있다. 천연가스 소비의 25%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서유럽 국가에게는 가즈프롬의 존재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가즈프롬이 지난해 생산한 천연가스 양은 5472억㎥. 석유로 따지면 하루 942만 배럴에 해당한다. 이는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하루 원유 생산량과 맞먹는 규모로 석유 2위 생산국 러시아의 생산량과도 큰 차이가 없다. 가스를 석유로 환산하면 단독으로 세계 석유사 전체와 맞먹을 수 있는 규모다.
지난 5월 가즈프롬은 주가 상승으로 시가총액 규모로 세계 3위에 올랐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 1년 사이에 400%가 급등했다. 시가총액이 3053억9000만달러로 영국의 석유기업 BP(2528억달러)와 마이크로소프트(2800억달러)를 제쳤고, 엑슨모빌(3908억달러)과 제너럴일렉트릭(3729억달러)에 이어 세계 3위에 등극하면서 세계 경제계를 놀라게 했다.
가즈프롬은 1991년 구 소련의 가스부(部)가 국영기업으로 변신하면서 탄생했다. 외국 자본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유치하면서도 러시아 정부는 51% 지분을 유지해왔다. 지금도 ‘공룡기업’이지만 해외 기업 인수와 가스 운송, 배송망 장악, 소매 영업 진출 등을 통해 회사 덩치를 키우면서 세계 에너지기업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옐친 정권 때 총리를 역임했던 체르노미르딘 전 총리 등 역대 대통령의 심복들이 기업을 총괄해왔다. 지금은 제1부총리이자 ‘푸틴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알렉산드르 메드베데프가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회사 시가총액이 수년 내에 1조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가즈프롬은 실제로 사업다각화를 위해 외국 기업, 특히 유럽 에너지기업 인수에 혈안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대표 에너지회사인 ENI를 인수하려다 실패했지만 올해 영국 센트리카 인수를 시도하면서 영국과 논란을 빚고 있다. 영국 무역산업부 등 8개 부처 장관들은 “가즈프롬의 센트리카 인수가 영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며 정부 개입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즈프롬은 “영국 정부가 기업 인수를 방해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보이면서, “인수를 방해할 경우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로스네프트는 지난 7월19일 런던과 모스크바 동시 상장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상장규모는 104억달러. 러시아기업 상장 역사상 최대 규모다. 상장 이후 자산가치가 800억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코스를 일방적으로 집어삼켰다는 해외 투자가들의 우려와 더불어 상장 성공 여부로 고민했던 세르게이 보그단치코프 사장은 BP 등 세계 유수 기업이 주식을 매입한데 한껏 고무돼 있다.
러시아 정부 등에 업고 ‘승승장구’
로스네프트는 막대한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으면서 생산가는 국제 기준으로 보면 턱없이 낮다. 하지만 국제 투자가들은 상장 이후 러시아 정부가 최대주주로 남아 있다는 이유로 러시아 내에서 특별대우를 계속 받을 수 있어 무한한 발전성이 있다는 점을 매력적으로 여기고 있다. 잠재적인 수익 창출 능력도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그단치코프 사장은 달라진 러시아 기업 환경을 더 강조한다. “로스네프트는 현대적이고 믿을 만하며 나무랄 데 없는 경영을 하고 있다”며 “유럽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베테랑급 은행 경영자들이 이사회에 포진해 있고, 미국 회계 기준을 따르고 있어 서구 기업 못지않다”고 강조한다.
그는 “로스네프트의 목표는 러시아 석유와 가스 산업에서 새로운 기업 지배구조의 모범을 세우는 것”이라고 투자자들에게 자신 있게 강조한다. 지난 4월에는 서방 언론인을 초청해 회사 시설을 개방하고 인식을 개선시키려 노력했다. 로스네프트의 이 같은 변신은 곧 러시아에 대한 국가 신뢰도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로스네프트의 성장에는 푸틴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1993년 설립된 이 회사는 처음에는 허름한 유전을 관리하던 회사였다. 하지만 크렘린궁이 러시아 석유 업계 2위였던 유코스 회장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를 손보기하면서 해체된 유코스그룹의 지주사들을 고스란히 인수하면서 강력한 에너지사로 떠올랐다.
호도르코프스키는 지난 2004년 대선을 앞두고 푸틴의 대항마로 거론되면서 크렘린궁은 그를 제거했다. 호도르코프스키는 탈세 등 7가지 혐의로 체포된 뒤 시베리아의 감옥에서 생활하고 있다. 로스네프트는 유코스의 핵심 자회사인 유간스크네프테가스를 인수, 현재는 하루 15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슈퍼파워로 성장하고 있다.
국영 석유 가스 파이프라인사인 트랜스네프트도 막강 화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 기업은 송유관, 가스 수송관 분야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 러시아 산업에너지장관인 빅토르 흐리스텐코는 트란스네프트가 카스피 송유관 건설 컨소시엄(CPC)에 들어간 러시아 정부 지분을 인수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CPC는 카자흐스탄 서부에서 러시아 흑해 연안 노보로시스크에 이르는 1500㎞ 길이의 송유관 설치와 관리를 전담한다. CPC는 러시아가 자신을 배제한 채 미국이 성사시킨 바쿠-트빌리시-세이한(BTC) 송유관에 맞불을 놓은 야심작이다.
이 뿐만 아니라 트란스네프트는 러시아 내 파이프라인을 독점 관리하고 있다. 트란스네프트는 가즈프롬과 로스네프트처럼 국제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점차 러시아 정부 지원 하에 에너지기업으로 슈퍼파워를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가즈프롬과 로스네프트는 트란스네프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파트너라서 공생관계는 필수적이다. 특히, 이들 회사의 유전과 가스전이 시베리아에 몰려있어 파이프라인을 통해야만 정상적으로 생산 수송이 결합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트란스네프트 없이는 에너지기업의 의미가 없다. 트란스네프트의 위력은 코빅딘스크 가스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 가스전에서 가스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BP와 러시아의 튜멘네프트(TNK)의 합작사인 BP·TNK가 가스전의 최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코빅딘스크 가스전 개발은 트란스네프트의 비협조로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가스 단일 수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즈프롬은 트란스네프티와 더불어 수출뿐만 아니라 국내 배송까지도 목을 죄고 있다. 한마디로 BP·TNK는 가스관에서 가스를 생산하고도 수출 면허와 공급망을 확보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BP·TNK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분의 51%를 가즈프롬에 내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이마저도 가즈프롬이 결정을 미루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러시아 정부의 ‘에너지 제국’야심은 끝이 없다. 러시아는 지난해까지 가즈프롬과 로즈네프트의 합병 시나리오로 이를 실현하려 했다. 하지만 크렘린궁 내 양대 파벌의 갈등으로 일단 목표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푸틴의 의지에 달려있다. 푸틴 대통령이 거대 에너지 3사의 통합을 추진하면 일제히 ‘우향우’할 수 있는 게 지금 러시아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