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위로하고 정보도 공유… 구직 통로로 자리매김

 ‘실업자들이여, 소셜 네트워킹을 하라.’   칼 마르크스(Mark)가 금세기에 살았다면,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던 그의 공산당 선언은 이런 메시지로 변해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을 타고 온라인으로 흘러 다닐지 모른다.

전후 최악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현재의 경제 침체는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과 구별해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불린다. 실업률이 30%를 넘은 대공황 당시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 유례없는 깊은 침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실업자는 1500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일자리가 하나 생기면 6명의 실업자가 달려드는 절박한 상황이 매일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 대공황과 달리, 21세기 초에 벌어진 ‘대침체’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실업자들의 생활을 바꿔놓고 있다. 추운 겨울, 외투를 걸치고 길게 늘어선 구직행렬에 가담하고, 영화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때우던 실업자들은 이제 온라인으로 이력서를 밀어 넣고, 소셜네트워킹을 통해 위로를 받으며 또 구직의 기회를 찾는다.

뉴욕의 ‘405클럽’

실업자가 속출하는 뉴욕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다. ‘405클럽’은 일주일에 실업수당 405달러를 받는 사람들의 모임을 뜻한다. 뉴욕 주는 실업수당으로 주당 64~405달러를 지급하고 있는데, 405클럽은 실업수당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의 모임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봐야 실업수당으로 1년에 2만1000달러를 받을 뿐이다. 뉴요커들의 평균 연봉을 고려하면 웬만한 뉴욕의 실업자들은 다 이 모임에 가입할 자격이 있는 셈이다.

이 모임은 올해 1월 탄생했다. 금융위기 속에서 실직당한 한 명의 터프츠 대학 졸업생과 두 명의 펜실베이니아 대학 MBA 출신이 만들었다. ‘소니에픽레코드’에서 라디오 프로모션 매니저를 맡았던 개럿 데일(Dale)과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의 호세 곤잘레스(Gonzalez), 부동산 투자회사에서 일했던 에던 폴(Paul)은 서로를 위로하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다음은 집을 전전하며 바비큐파티를 벌던 이들은 실직당한 사람들이 하나둘 이 모임에 합류함에 따라 커피숍과 바 등으로 장소를 옮겼고, 마침내 온라인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를 출범시켰다.

405클럽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소니에픽레코드에서 일하다 해고된 애덤스(Adams)의 사례. 버지니아 대학에서 비즈니스를 전공한 애덤스는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기업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해 마련한 ‘패스트트랙’ 과정을 이수한 뒤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단체음식제공 서비스 회사 ‘업타운 컴포트’를 시작했다. 그녀가 이 비즈니스를 시작하자, 405클럽은 자신들이 아는 인맥과 정보를 총동원해 도왔다. 결국 그녀는 405클럽 회원 중의 한 명이 일했던 ‘성 주드 아동 리서치 병원’이 벌이는 자선 이벤트 행사를 맡아 500명분의 음식을 공급하는데 성공했다. 애덤스의 비즈니스는 빠르게 자리 잡고 있고, 애덤스는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405클럽 회원들을 임시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405클럽은 CNN, ABC 등 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소개되었고, 지난 8월 마침내 405번째 회원 가입을 기념해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조촐한 피크닉을 가졌다.

“누가 곰을 죽였나’ 등 다양한 실업자 클럽들

볼티모어 지역에서 6월에 설립된 ‘팀 언임플로이드’ 소셜네트워킹 사이트. 한 구직자가 마음에 담아 둔 가슴 아픈 사연을 올렸다. “이메일과 전화메시지를 확인하는 게 두렵다. 또 구직을 거절당하는 답변을 들을 것만 같다.” 온라인상으로 회원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른 구직자가 사연을 올렸다. “내 속에 남아있는 털끝만한 신뢰와 자신감은 모두 부서져버렸다.” 그러자 다른 회원이 글을 달았다. “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당신 잘못이 아니다. 걱정하지마라!”

실업자 소셜네트워킹 사이트가 빠르게 퍼지는 이유는 이처럼 직업을 가진 자는 모르는 비참한 실상을 서로 마음 터놓고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업자들은 재치 있는 이름을 단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를 속속 만들고 있다. 실업자를 위한 실업자만의 블로그를 추구하는 ‘해고자는 새로운 흑인계급이다(pinkslipsarethenewblack.com)’, ‘걱정마라. 인생은 아직도 좋다’를 모토로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일자리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nojobsurvivor.com)’, 실업자를 위한 최초의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로 지난 2007년 등장한 ‘해고자공간(layoffspace.com)’ 등이 대표적인 사이트다. 또 금융위기 한복판에서 문을 닫은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와 리먼 브라더스 직원들도 각각 ‘누가 곰을 죽였는가(whokilledthebear.com)’와 ‘영원한 리먼(foreverlehman.com)’ 사이트를 만들어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실업자들의 마음을 일본 단시(短詩) 하이쿠로 달래는 인터넷모임(unemployment haiku weekly)도 있다. ‘해고자 식단/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더니/유통기한 지났네’ 이들이 올리는 하이쿠엔 블랙유머가 짙게 담겨있다.

하지만 서로 자족하고 위로하는 모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에서 ‘RL 재핀 어소시잇’ 헤드헌터사를 운영하는 있는 로니 린 재핀(Zapin) 사장은 네트워킹 사이트인 ‘링크드인(Linkedin)’에 실업자들이 서로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 고용되라(get hired)’라는 그룹을 시작했다. 스스로 1980년대에 10달간 실업자 생활을 한 적이 있는 그는 “회원 수가 2000명이 넘는 다양한 사람들이 가입했고, 매우 도움이 되는 대화들이 오고간다”며 “끊임없이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한 건이라도 부정적인 글이 올라오면 삭제한다”고 말한다.

일자리를 찾는데 효과적인 소셜네트워킹 사이트

실업자들이 자신들만의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를 만드는 이면에는 소셜네트워킹 자체가 이미 강력한 구직 통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일간신문 ‘구인란’에서 온라인 구인 게시판으로 옮겨온 구직 루트는 이제 소셜네트워킹으로 진화하고 있다.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트위터, 링크드인 등은 잠재적인 고용주와 동료를 연결하는 귀중한 네트워크일 뿐만 아니라 구인정보가 가장 빨리 올라오는 곳이기도 하다.

CNN은 이제 회사의 인사 담당자들은 구직자의 이력서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킹을 들여다본다고 전한다. 과연 누가 ‘추종자’이고 ‘친구’들인지 소셜네트워킹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구직자의 배경과 교제 범위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셜네트워킹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직장을 구할 때 불리한 위치에 처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물론 소셜네트워킹을 통해 세세한 사생활이 모두 드러나 원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위험도 있다. 그래서 구직자들이 이력서를 손질할 때,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함께 다듬는 게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