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달러 마케팅’에 철야 영업 까지… 쇼핑객 지갑열기 안간힘

 ‘연말 쇼핑객을 잡아라!’    미국 유통업체가 연말 대목을 앞두고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제 침체 속에서 올 한 해의 성적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시기가 바로 연말 대목이기 때문이다. 보통 11월과 12월 연말 매출은 미국 유통업계 전체 매출액의 절반을 차지한다. 특히 추수감사절이 끝난 다음날에 실시되는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은 연말 매출의 성패를 좌우하는 분기점이다. 유통업체들은 블랙프라이데이부터 시작되는 연말 홀리데이 쇼핑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월마트, 추수감사절부터 밤샘 영업

 블랙프라이데이의 전형적인 모습은 새벽에 길게 줄을 선 쇼핑객들이 문을 열기가 무섭게 뛰어 들어가 싼 값에 나온 TV 등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것이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집어들 만큼 싼 물건이라는 의미로 이런 아이템엔 ‘도어 버스터’란 이름이 붙어있다. 월마트는 올해는 아예 추수감사절인 11월26일부터 다음날까지 24시간 영업에 들어갔다. 고객들을 끊이지 않고 받아 매출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월마트의 전략은 사고 방지를 위한 목적도 있다. 지난해 블랙프라데이 세일 당시 뉴욕 주 나소카운티의 한 매장에서 삼성TV를 먼저 잡으려고 쇼핑객들이 뛰어 들어오는 바람에 안내를 하던 직원이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밤샘영업을 하면 고객들의 흐름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월마트는 기대했다. 또 도어 버스터 아이템을 직접 집는 대신 그 앞에 길게 줄을 세워 차례대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개선했다.

전자제품 유통매장인 베스트바이는 고객들이 할인된 제품 코너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색풍선을 달고, 주차장에 직원들을 배치해 고객들이 내리는 즉시 인기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쿠폰을 나눠 주었다.

대형 소매업체인 타깃은 ‘3달러 마케팅’을 벌였다. 3달러짜리 토스터와 커피메이커를 통해 고객을 유인하고, 50%까지 할인하는 의류와 장난감을 팔았다. 32인치 고화질 LCD TV를 246달러에 판매하고, 100달러 이상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10달러짜리 기프트카드를 지급했다. K마트, 토이저러스 등도 정상가격보다 대폭 할인된 가격을 내걸고 고객을 끌어들이는 총력전을 전개했다.

할인 폭을 둘러싼 치킨게임

문제는 블랙프라이데이 이후의 상황. 블랙프라이데이는 원래 대폭 낮춘 가격에 제한된 물건을 팔아 연말 쇼핑 분위기를 돋우는 일종의 바람잡이 역할이다. 그러나 쇼핑객들은 이후에도 더 낮은 할인 가격으로 물건을 사려고 버티고 있다. 반면 유통업체들은 과잉재고로 최대 90%까지 땡처리를 했던 지난해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난해와는 달리 재고를 이미 상당히 줄여놓았기 때문에 과잉재고에 떠밀려 바닥에서 물건을 파는 현상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고급 백화점인 삭스는 다른 유통업체와 마찬가지로 올해 재고 수준을 20% 줄였다. 매출 감소를 각오하더라도 일정한 이윤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삭스는 지난해 재고 처분을 위해 백화점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 무려 70%의 세일을 단행했었다. 스티브 새도브(Sadove) 최고경영자는 “지금은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며 “훨씬 적은 품목이 홀리데이 시즌에 판매되기 때문에 사이즈가 없거나 잘 팔리는 아이템은 일찍 동이 나고 할인가격표가 붙은 아이템도 훨씬 적게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컨설팅그룹인 헤이그룹의 크레익 로울리(Rowley) 컨설턴트 역시 지난해와는 좀 다른 양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올해는 60~70% 할인 상품이 줄어들 것”이라며 “만약 꼭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70% 할인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유통업체가 불황의 와중에서 배수진을 치는 것은 바닥까지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소비자들의 체질을 바꿔놓지 않으면 내년 이후 시장이 정상화되더라도 애를 먹을 수 있다는 장기적인 계산이 깔려있다. 재고를 줄여 공급을 줄이고, 아예 정상가 자체를 내려 소비자들에게 원래 가격표대로 물건을 사야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미국소매유통협회(NRF)의 엘런 데이비스(Davis) 부사장은 “홀리데이 재고 물량은 보통 3~4월에 주문하는데 올해는 이 시기에 경제지표가 안 좋아 재고 물량 주문이 더 적었다”며 “현재 항구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보면 지난 2002~2003년 수준으로 떨어져있는데 이는 물건 반입 물량이 줄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말 홀리데이 시즌을 앞둔 소비자들은 현재로선 적극적으로 지갑을 열 생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미국 소매유통협회와 조사 회사인 빅리서치가 공동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홀리데이 소비자들의 예상 지출액은 1인당 평균 약 682.74달러로 지난해 705.1달러에 비해 약 3.2%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약 69%의 소비자가 지난해와 같거나 혹은 적게 쇼핑을 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고, 55%는 할인할 때 제품을 구매하며, 41%는 할인 쿠폰을 이용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11%는 심지어 중고판매가게나 초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컨설팅 업체인 액센추어의 조사결과도 비슷하다. 86%의 응답자가 최소 20% 이상 할인하지 않으면 움직일 생각이 없으며, 25%는 최소 50%는 할인해야 지갑을 열겠다고 응답했다. 빅리서치의 팸 굿펠로우(Goodfellow) 선임 애널리스트는 “소비자들이 좋은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사려고 오랫동안 지켜본다”며 “(유통업자에게) 상황이 썩 좋지는 않다”고 말한다.

연말 대목 분위기는 현재 높아져가는 실업률 때문에 발목이 잡혀있다.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10%대 실업률로 소비자들은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지출이 늘어나려면 아무래도 주식시장보다는 고용 시장이 회복되어야 한다. 결국 올 연말 유통업체 매출은 전체적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약간 증가하는 데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소매 판매조사 회사인 ‘리테일 포워드’는 “올 연말 소매판매 시장이 지난해와 같은 규모를 기록할 것”이라며 “의류 판매와 가정용품 판매는 지난해보다는 감소폭이 줄어들어 2% 정도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