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대응력 , 소형차 전략, 비용절감 ‘3단 콤보’

흔히 일본 기업은 불황에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상시적이고 철저한 관리에 힘입어 위기 때의 대응력을 높여둔 결과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에는 좀 달랐다. 진원지가 아닌 데다 직접 피해도 별로 없어 금방 체력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미국, 중국에 버금가는 대형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로써 2002년 이후 부러움을 샀던 주요 기업의 사상 최고치 경신기록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대로라면 2009년은 굴욕의 한 해로 마감될 확률이 높다.

금융위기 후폭풍이 가장 셌던 분야는 전통적인 효자산업인 자동차 부문이다. 당장 대표선수인 도요타부터 요철 천지의 비포장도로 위에 있다. GM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른 지 1년도 안 돼 판매 급감으로 대규모 적자를 냈다. 언론에선 ‘도요타 쇼크’라는 신조어도 만들었다. 외우(금융위기, 엔고)에 내환(공격적 확대경영, 고가 위주 제품 개발, 현장 경쟁력 약화)까지 겹쳐진 결과다. 다행히 4분기 이후 조금씩 훈풍이 불고 있지만, 불황의 생채기를 기억하는 일본 경제 주역들의 위기감은 여전하다. 

설비 투자 3년 내 조기 회수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와중에 주목받는 일본 기업이 있다. 업황 자체가 충격 여파로 흔들리는 자동차 부문의 기업이어서 더더욱 관심이 뜨겁다. 도요타조차 범접하기 힘든 흑자행진을 기록하며 각종 순위를 끌어올리는 중이다. 지난 상반기(1~6월) 239억엔의 영업이익을 올렸고, 글로벌 판매순위도 10위로 뛰어올랐다. 특히 판매증가율은 상반기 현대기아차, 폭스바겐에 이어 3위까지 올라섰다. 같은 기간 도요타의 영업적자는 8670억엔(예상)에 달한다.

흑자 규모가 크진 않지만 경쟁업체의 대규모 적자기록을 보면 충분히 선전했다. 상반기 흑자는 일본의 4대 완성차 메이커(도요타 혼다 닛산 스즈키) 중 유일하다. 이 결과 주요 언론은 스즈키가 자동차 업계의 상식과 다소 벗어나는 저수익형 소형차 전문 메이커란 점에서 ‘산업의 이단자’로 분석하며 재평가 논의에 불을 지폈다. ‘작지만 강한 기업’의 전형이란 타이틀과 함께 불황기 생존전략의 성공사례로 꼽히자 관련업계도 안테나를 바짝 올린 상태다.

스즈키는 1980년대 이후 자동차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후발주자란 얘기다. 오히려 이륜차로 불리는 오토바이 업계의 강자로 더 유명하다. 연간 생산량만 봐도 자동차(250만 대)보다 오토바이(330만 대)가 더 많다. 때문에 스즈키는 엄연히 빅4인데도 작은 생산규모와 소형·경차 집중 전략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다.

오토바이가 유명하다 해도 정작 스즈키 금고를 살찌우는 주역은 자동차다. 2009년 성공 스토리의 핵심 주역도 자동차가 맡았다. 매출 비중을 보면 자동차(2조4536억엔)가 오토바이(4543억엔)보다 5배 정도 많다. 이밖에 보트와 전동차량 등도 만든다. 2008년 기준 시장별 매출액 비중은 해외에서 67.9%, 내수 32.1%로 나타났다.

금융위기는 스즈키를 확실히 강소기업으로 각인시켰다. 무엇보다 신속하고 유연한 위기대응 전략이 주효했다. 덩치 큰 경쟁업체들이 한파에 속수무책일 때 스즈키는 특유의 날렵하고 즉각적인 대응으로 서리를 피할 수 있었다. 중후장대의 상징인 자동차 업계의 딜레마는 과도한 설비투자 부담으로 요약된다. 잘 팔릴 땐 몰라도 불황일 땐 설비투자가 발목을 잡아서다. 하지만 스즈키는 최소한의 설비투자를 고집해왔다. 즉, 설비투자 효율을 증가시켜 2~3년 안에 투자를 조기 회수하도록 고정비를 변동비로 녹여버렸다.(2005년 기준 감가상각율 45.3%) 판매가 줄어도 수익이 나도록 만든 셈이다.

이는 3년 정도의 경차 모델 교체주기와도 일치한다. 위기가 닥쳐도 3년 안에 신형모델을 출시, 대응하도록 체질을 갖추겠다는 의미다. 오토바이 설비에서 경차를 만들고, 경차 라인에서 소형차를 만들 수 있게 했다. 회사는 이를 3년 안에는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 쌓기로 평가한다. 언제든 변신할 수 있도록 상시 대응력을 강화했다는 얘기다.

CEO 리더십 주목 …‘알뜰한 도전가’

차별화도 이번 금융위기를 버텨낸 스즈키의 특화전략 중 하나다. 유명 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는 “특화전략으로 주력시장을 확보한 스즈키가 전부를 대상으로 풀 라인업을 추구하는 GM 방식보다 경쟁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요컨대 스즈키는 신흥시장 및 소형차 비중 강화 덕분에 실적 차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신흥시장 비중이 59.3%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한다. 특히 1983년 진출 이래 94.5%의 시장 장악에 성공한 인도 등의 사업기반이 안정적이다. 북미·서유럽 등 선진시장에 사활을 걸었던 나머지 메이커들과는 애초부터 다른 길을 걸은 셈이다. 선진시장 판매비중이 62.6%인 도요타가 굴욕적인 성과를 냈을 때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던 이유다.

불황에 강한 라인업도 강점이다. 스즈키는 전체 라인업 중 소형차 비중이 99.2%에 달한다. 세계 시장에서 소형차 비중이 증가(2004년 44.8%→2009년 55.5%)하는 등 소형차 중심으로의 시장 재편이 가속화하고 있는 흐름에 잘 올라탔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결과다.

일본 기업이 불황에 강하다는 인식은 주로 감량 경영 노하우에서 비롯된다. 이런 점에서 스즈키의 비용 절감은 예외가 아니다. 수요 급감, 가격 압박 등 외부 악재에 대비해 철저한 비용 절감으로 수익 창출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스즈키의 비용(판매원가, 판관비 등) 절감액은 매출액 대비 7.9%에 달했다. 확실히 탁월한 장점이다. 비용 절감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도요타의 절감 규모가 2.6%인 걸 보면 역시 굉장한 결과다.

스즈키의 비용 절감 성과는 생산현장에서 정점에 달한다. 사소한 낭비요인 하나 지나치는 경우가 없다. 코사이(湖西)공장의 경우 1전(錢) 단위 절약 모토까지 내걸었다. 운송, 전력, 동작 낭비 등을 줄이기 위해 현장지혜를 충분히 활용함은 물론이다. 운송 낭비를 막고자 공장 레이아웃을 L자형으로 설계해 1회 이동으로 부품 투입이 가능하게 했다. 통상의 3~4회 이동을 1회로 줄인 것이다. 전력 절약도 획기적이다. 태양, 중력 등 무비용 자원을 활용해 비용 절감을 극대화했다. 최종 조립이 끝난 완성차를 1대씩 운송하던 걸 10대씩 묶어 무인운송차가 나르도록 하기도 했다. “전기와 물, 공기는 돈이 들지만 태양과 중력은 공짜”라며 “공장에서의 부품 이동은 아무런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회장의 의지가 투영된 결과다.

스즈키 경쟁력의 원천은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으로 귀결된다. 스즈키 오사무(鈴木修) 회장의 존재감이 그만큼 대단하다. 오사무 회장은 1978년 사장에 취입한 후 스즈키를 21개국 31개 생산거점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원래 은행원이었는데 1958년 창업자의 사위가 되면서 스즈키에 들어왔다. 경영기획실에 배속됐지만, 자발적으로 생산현장에 지원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경영 혁신 차원에서 일선 후퇴를 결정했다. 그러다 위기 상황 후 책임경영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2008년 말 대표로 복귀했다.

오사무 회장은 “간부 중 오일쇼크를 경험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남에게 불 속의 밤을 줍게 하기보단 먼저 줍겠다”며 의미심장한 취임일성을 날렸다. 우연의 일치일지 몰라도 그의 복귀와 함께 스즈키의 장부는 확연히 건실해졌다. 재취임 1년도 안 된 시점의 성과란 점에서 오너 리더십이 부각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30년 전 사장 취임 때처럼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확실한 구원투수 역할을 한 셈이다.

실제로 그의 출현 이후 회사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평가다. 특유의 현장주의와 도전주의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는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스즈키의 기업 체질을 강력하고 체계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지금도 수시로 생산현장을 방문하며 위기의식을 고취하고 다닌다.

비용 절감과 관련한 재미난 일화도 많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오사무 회장은 요즘 후지산 높이인 3776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한다. 2008년 회사 전체가 사용한 종이를 계산해보니 4233만 장이었는데, 이걸 쌓으면 높이가 3810m에 달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회장의 3776 발언이 종이 사용 감소 운동을 낳은 건 불문지사다. 또 전체 사원의 서랍을 조사해 1인당 지우개 1개, 연필 1자루, 볼펜 2자루를 빼고는 모두 압수했다. 이후 비품 구입은 회장 결재 사안으로 격상(?)됐다. 직원에게만 고통 분담을 강요하는 최고경영자도 아니다. 본인 역시 출장 땐 가장 싼 좌석에 탄다.

오사무 회장의 도전정신도 높이 평가된다. 인도 시장 진출 당시 달러박스였던 미국 대신 불모지 인도를 택한 것만 해도 최고경영자의 도전정신이 반영된 결과여서다. 이는 인도의 국민차 구상과도 맞아떨어져 지금은 대박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도전정신과 관련해 회장은 “우물을 파려면 제일 먼저 파라”고 강조한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국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주간지 <한경비즈니스>, <이코노믹리뷰>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현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