쁜 일이 있을 때, 축하의 자리에 ‘샴페인 터뜨린다’고들 말한다. 샴페인(Champagne)은 프랑스어 샹파뉴의 영어식 발음. 프랑스 북동부 샹파뉴 지방 또는 이곳에서 나는 발포성 와인을 말한다.

최근 ‘와인 종주국’ 프랑스 와인이 위기를 맞고 있지만 샴페인만큼은 예외다. 해마다 성장세를 거듭하면서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을 살려준다. 특히 경기가 좋은 나라에서 프랑스 명품 시장과 함께 꾸준히 잘 팔리는 것이 명품 이미지를 가진 샴페인이다.

샹파뉴 지방은 파리에서 동쪽으로 140㎞ 떨어진 곳에 있다. 샹파뉴의 중심도시 랭스와 에페르네에는 모엣 샹동, 태탱제, 루이 로드레, 폴 로제, 앙리오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샴페인 브랜드들이 몰려있다. 랭스는 프랑스 왕들이 대관식을 치렀던 랭스대성당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샹파뉴는 지금 포도나무에 잎이 막 돋아나는 계절이다. 샹파뉴 지방의 포도밭은 3만2000헥타르. 이곳에서 생산되는 포도 품종, 피노 누아, 피노 뫼니에, 샤르도네를 섞어서 만든 것이 샴페인이다.

이곳에서 샴페인 생산에 필요한 포도를 재배하는 농가는 약 1만9000호. 직접 자신이 생산한 포도로 샴페인을 만들어 파는 농가도 있지만 많은 수는 수확기에 샴페인 생산·유통 업체에 포도를 판다. 자사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또 농가에서 포도를 사들여 샴페인을 만들어 판매하는 생산·유통 업체도 이 지역에 290개나 몰려있다.

지난해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판매된 샴페인은 총 3억750만 병. 58%가 프랑스 내에서 소비됐고, 나머지 42%가 영국, 미국,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일본 등 전 세계로 수출됐다.

샴페인의 프랑스 내수 소비만 1억8000만 병쯤 된다. 프랑스 국민 6000만 명이 1년에 1인당 3병씩 샴페인을 터뜨린 꼴이다. 결혼식, 생일, 결혼기념일,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을 위한 축제의 술이다.

샴페인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영국과 미국의 경기가 좋아 샴페인 경기는 샴페인 거품처럼 계속 보글보글 끓고 있다. 경제성장으로 샴페인 터뜨릴 일이 많아진 중국, 인도 등에서도 샴페인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샴페인의 최대 소비국은 일본. 수입량이 지난 5년 새 1.9배(2000년 317만 병 쭭 2005년 594만 병) 늘었다. 특히 샴페인은 일본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한국도 수입량이 2배(10만8000병 쭭 21만7000병) 증가했다. 아직 전체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중국이  10배(2만1600병 쭭 21만6900병), 인도가 3.8배(2만9860병 쭭 11만5983병) 수입이 급증할 정도로 샴페인 시장은 호황세다.

프랑스의 와인 수출에서 샴페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물량으로는 7%밖에 안 된다. 하지만 금액으로는 33.8%나 된다. 그만큼 값비싼 술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프랑스의 전체 와인 수출은 1.9%(물량 기준) 감소했지만 샴페인 수출은 물량으로는 1.2%, 금액으로는 6.3% 늘었다. 그래서 샹파뉴 일대는 프랑스 와인 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여론조사기관 BVA가 405명의 와인생산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프랑스 와인생산업자들의 약 90%가 “프랑스 와인 산업이 위기”라고 대답했다. 특히 보르도, 랑그독-루시용 지역의 와인생산업자들이 비관적이었다. 미국, 호주, 칠레 등 ‘신세계 와인’들과의 치열한 경쟁, 프랑스 국내의 와인 소비 감소, 엄격한 법적 규제 때문이다.

하지만 와인 산업에 대한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도 지역 따라 편차가 컸다. 전 세계 샴페인 시장이 계속 성장세를 보여 온 덕분에 상퍄뉴 지역의 와인생산업자들은 74%가 미래를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자녀가 대를 이어 와인 업계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보르도와 루아르 지방은 50% 미만만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상파뉴 지역에서는 88%가 자녀가 가업을 이어주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정부 “샴페인 이름 쓰지 마라”

최고급 샴페인회사 루이 로드레의 프레데릭 에직 수출담당 이사는 “샴페인은 명품 핸드백이나 향수 같은 이미지 제품이지만, 핸드백처럼 마구 생산량을 늘릴 수가 없어 늘 공급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황실에 납품하던 최고급 샴페인 크리스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전 세계 수입처에 나라별 쿼터를 정해놓고 한정된 물량만 공급한다.

프랑스 와인 중에서도 유독 샴페인이 세계 시장에서 대접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샴페인이 가진 즐겁고 고급스러운 이미지 때문이다. ‘축제의 술’이라는 명품 이미지 덕분에 영국 왕실에서도, 이탈리아 부호들도 특별한 축하의 자리에 샴페인을 애용한다.

게다가 샴페인이라는 이름은 말하자면 ‘독점 브랜드’다. 샴페인 같은 발포성 와인은 전 세계 어디서든 만들어질 수 있지만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는 못한다. 프랑스 정부가 명칭을 법으로 엄격히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와인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샴페인을 위해 프랑스 정부와 프랑스샴페인협회(CIVC)는 각별한 보호 전략을 펴고 있다.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프랑스 담배, 영국의 음료수, 스웨덴의 야쿠르트 등을 찾아내 사용을 금지한 적도 있다. 일본의 사케 명칭을 보호하는 대신 프랑스의 샴페인을 보호하도록 프랑스와 일본이 양국 간 협약을 맺기도 했다.

프랑스샴페인협회의 브리지트 바도네씨는 “샴페인은 전 세계가 호황이거나 행복한 일이 많으면 절로 잘 팔리는 술”이라면서 “우리는 전 세계에 행복한 일이 많아지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실제로 샴페인의 최대 시장인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9·11뉴욕테러, 7·7런던테러가 발생했을 때는 프랑스의 샴페인 수출도 급감했다.

이 때문에 정확한 시장 예측은 힘들다. 하지만 현재의 성장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하다. 따라서 프랑스 샴페인 업계나 협회는 샴페인을 많이 팔려고 애쓰기보다, 샴페인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계속 지켜나가기 위한 이미지 전략에 더 주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샴페인 시장과 프랑스 와인 중에서도 불황을 모르는 최고급 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와인 업계는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가 팽배하다. 프랑스뿐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다른 유럽 와인들도 비슷한 처지.

20~30년 전에 비해 국내 소비자들이 술을 덜 마시는 분위기인데다, 균일한 품질에 합리적 가격을 무기로 내세운 미국, 호주, 칠레 등 ‘신세계 와인’이 세계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연합(EU)에서 생산된 와인은 전 세계 와인 생산 및 소비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EU의 와인 수출은 지난 10년간 15.8%(1996년 12억ℓ 쭭 2004년 13억9000만ℓ) 늘어났는데 같은 기간 경쟁자인 미국 와인은 수출이 4배나 증가했다. 칠레와 호주 와인은 수출이 9배 급증했다.

이 때문에 EU 집행위원회 차원에서 유럽 와인 업계 개혁에 나설 조짐이다. ‘신세계 와인’에 맞서 유럽 와인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수술이다.

지난해 EU는 프랑스 와인 1억5000만ℓ와 스페인 와인 4억ℓ 등 유럽에서 과잉생산된 와인을 공업용 알코올로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 5억유로를 지원했다. EU는 이 보조금을 아예 중단하는 등 극약 처방도 불사할 태세다. 보조금을 중단해야만 와인 업계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질적인 과잉생산을 멈추면서 품질을 높이는 데 더욱 주력할 것이라는 게 EU의 시각이다.

EU는 조만간 13억유로 규모의 와인 산업 지원 예산을 개혁하는 방안을 포함, 와인 산업 개혁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와인 업계와의 협의를 거쳐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개혁안을 확정지을 방침이다.

마리안 피셔 뵐 EU 농업담당 집행위원은 “EU의 와인 산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개혁 없이는 ‘신세계 와인’의 수출만 계속 급증할 것”이라면서 “현상 유지는 선택이 될 수 없다”고 유럽 와인 업계에 경고장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