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온라인 쇼핑몰… 불황 속 ‘승승장구’

일본의 국정 운영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몰아주기식의 압도적인 지지로 ‘자민당→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이로써 갈 길 바쁜 일본의 뒷덜미를 붙잡았던 정치적 불확실성은 일정 부분 해소됐다. 남은 건 경제다. 선거공약처럼 경기 회복에 성공하지 못하면 민심은 순식간에 돌아설 수 있어서다.

민주당의 압승 배경은 복합적이다. 다만 근본 원인은 하나로 압축된다. 경기 침체에 따른 민생불안이다. 비정규직 증가로 중산층이 몰락하는 가운데 내수는 얼어붙었고, 수출·제조업 강국 일본을 책임져왔던 기업은 금융위기, 엔고 압력에 휘청거렸다. 수출과 내수의 동반 경직은 기업 경영에도 적잖은 생채기를 남겼다. 일본이 자랑하던 세계 일류의 기술력 유지, 확대에 브레이크를 걸어서다. 보수·방어적 경영으로의 전환이다.

이런 와중에 주요 언론이 주목하는 기업가가 있다. 미키타니 히로시(三木谷浩史)란 인물로 올해 45세의 젊은 경영자다. 한국에서야 아는 이가 드물지만 일본에선 손꼽히는 유력인사다. 일본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 라쿠텐(樂天)그룹을 이끄는 오너다. 2000년 전후 IT붐이 한창일 때 일본 IT업계를 선도한 1세대 벤처 창업가다.

미키타니 히로시는 라이브도어로 일본열도를 뒤흔든 호리에 다카부미(堀江貴文)와 호각을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호리에가 일본방송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분식회계로 철창신세를 지는 등 많은 1세대 창업 CEO가 위법 사태로 중도하차한 것에 비해 그는 경쟁자 중 거의 유일하게 생존해 성공 스토리를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

최근 그가 다시 뜬 이유는 라쿠텐의 실적에서 단적으로 목격된다. 금융위기 이후 대마(大馬)들마저 장부에 빨간색이 수두룩할 때 라쿠텐은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 1분기 잠깐 주춤한 것을 빼면 2008년 전체와 2009년 2분기 경상이익은 뚜렷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라쿠텐의 2008년 매출액(연결)은 2498억엔을 기록했다. 올 2분기 실적도 734억엔으로 이미 전년 동기 실적(622억엔)을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올해는 사상 최고치의 실적이 확실시된다. 최근 <주주통신>이라는 보고서 제목이 ‘불황에 강한 라쿠텐’으로 붙여진 데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라쿠텐은 현재 30개 이상의 자회사를 갖고 있다. 일종의 지주·주력회사로 온라인 쇼핑몰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라쿠텐시장’을 필두로 여행 포털 증권 은행 신용카드 프로스포츠 전화 등 관련 업종을 총망라한다. 라쿠텐이란 이름으로 결제되는 유통 총액만 1조엔을 웃돈다. 이중 쇼핑몰과 여행 부문은 자타공인 업계 1위다.

라쿠텐시장은 계약점포 7만2695개(출점 점포 2만8969개)에 취급 상품 3967만 점(2009년 9월10일 현재)을 자랑하며 설립(1997년) 12년 만에 일본의 온라인 유통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지명·이용도 모두 ‘No.1’인데, 주문 건수의 경우 2008년 2분기 2078만 건에서 2009년 2분기 2711만 건으로 증가했다. 뒤늦게 진출해 적자가 불가피했던 은행 사업도 2009년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이로써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인터넷 원스톱으로 구현한다는 목표 달성에 한발 다가섰다. 요컨대 계열사의 유기적 연결을 꾀한 가상경제권역인 ‘라쿠텐경제권(Eco System)’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라쿠텐경제권에 적을 둔(DB 축적) 회원숫자(2009년 6월 말 현재)만 7137만 명에 달한다. 일본인 둘 중 한 명이 라쿠텐 회원이란 얘기다.  

라쿠텐경제권의 실현엔 오너의 무모하지만 정력적인 도전정신이 주효했다. 그는 샐러리맨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은행에 다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MBA를 취득했다. 귀국 후 M&A컨설팅을 위해 회사를 차렸다가 온라인 쇼핑몰에 눈을 떴다. 미국 생활에서 배운 모험심과 도전의식이 발휘된 결과다.

‘무한도전 정신’이 성공 최대 비결

인터넷 정보 수집 능력의 중요성을 절감하면서 넷 비즈니스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당시 미키타니의 메모에는 해보고 싶은 사업 아이디어만 100여 개가 넘었다. 그중 온라인 쇼핑몰이 가장 그럴싸했고, 결국 낙점을 받았다. 당시 쇼핑몰은 대부분 카탈로그를 웹으로 바꿔놓은 정도에 불과했기에 쉽고 저렴하게 웹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만 개발하면 도전해봄직했다. 마침내 1997년 그는 도전장을 던졌다. 처음엔 그를 포함해 직원은 2명뿐이었고, 큰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서버 1대가 전부였다.

이후 멤버들이 붙으면서 무모한 풋내기의 도전은 점차 신화적인 성공 스토리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쇼핑몰 구축은 논의의 반복과정이었다. 다만 포인트만큼은 판매자든 구매자든 손쉽게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맞춰졌다. 새벽시장에서 구입한 참치를 개점시간에 소개하고 낮에 팔며, 저녁에 배송할 수 있는 시스템 구현을 목표로 했다. 그 결과물이 ‘RMS(Rakuten Merchant Server)’다.

RMS는 메일 혹은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만 있어도 바로 운영할 수 있을 만큼 쉽고 간단한 시스템이다. 출점 점포는 화면 제작, 화면 갱신, 수주관리, 고객관리 등 모든 운영과정을 RMS 시스템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 지금이야 당연한 기능이지만 당시 이 발상은 업계 상식을 뒤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1990년대 중반 일본의 온라인 쇼핑몰 사업은 혼란기였다. 대기업과 종합상사 등이 거대 자금력을 내세워 투자에 나섰지만, 궤도에 오른 것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어디를 봐도 붐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불확실한 영역이었다. 안착했어도 엄청난 유지비용에 적자 천지였다. 회사와 입점점포의 공생관계는 아슬아슬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운영과정에서의 비용 절감과 점포의 운영 자유도 확보는 중차대한 과제였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다. RMS는 이를 단번에 풀어냈다. “RMS가 없었다면 라쿠텐의 흥미진진한 성공 스토리는 없었을 것”이란 회사 측의 설명이 과장은 아니다. RMS는 지금도 기능 보완과 강화를 통해 일상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라쿠텐의 진화는 계속된다. 일례로 애초 5만엔 정액으로 출발한 과금체제를 팔린 만큼만 비용을 청구하는 종량제로 바꿨다. 회사가 돈을 벌어도 출점 점포가 힘들면 안 된다는 철학에서다. 라쿠텐이 단순한 장소 대여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심동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수익구조까지 변경했다는 의미다.

출점 점포가 참가하는 오프라인 파티나 컨퍼런스도 주기적으로 개최한다. 2005년에는 결제 시스템의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카드결제 안심서비스도 도입했다. 사고는 싶은데 안정성 탓에 주저하던 잠재고객까지 출점 점포의 매출로 이어주기 위해서다. 시스템보다는 상품 판매력이 강한 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쇼핑몰이란 평가를 받는 이유다. 문어발식 경영 확장이라는 비난에도 불구, 수많은 자회사를 보유한 것도 상호 시너지를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최근에는 익일배달 시스템을 강화해 세계 최대 경쟁자인 아마존닷컴까지 위협하고 있다. 대만과 한국을 비롯해 향후 3~4년 안에 27개국에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배당 성향도 양호한 편이다. 주당 배당금(주식분할 반영)이 2003년 25엔에서 2005년 50엔, 2008년엔 100엔으로 증가했다.

궁극적 지향점은 ‘인간성’

라쿠텐은 ‘기업 초월(More than Company)’을 추구한다. 지향점은 인간성이다. 출범 초기부터 인간적인 서비스야말로 인터넷 비즈니스의 열쇠라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쇼핑몰 디자인이 다른 사이트와 달리 어수선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즉, 정보량이 많고 사람이 복작거려 길게 볼수록 재미를 더할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기능성만 강조하면 쇼핑은 즐거울 수 없다는 것이다. 성공하는 식당엔 맛과 함께 살가운 커뮤니케이션이 있듯 말이다.

이런 점에서 직원 만족 경영도 합격이다. 본사 식당엔 정규직뿐 아니라 파견사원과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도 언제든 공짜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애초 70%가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추후 집계해보니 무려 140%의 이용률을 기록했다. 즐거운 식사가 실현된 덕분이다.

미키타니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목표를 정해 실천하고, 성공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게 없다는 지론이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5가지 성공 콘셉트를 강조한다. △항상적인 개선과 진전 △철저한 프로정신 △가설→실행→검증의 구조화 △고객 만족의 최대화 △스피드, 스피드, 스피드 등이다. 중요도는 순서대로다. 역시 철학적인 면에 가중치를 뒀다.

CEO의 말

“온리 원(Only One)이면서 넘버 원(Number One)이고 싶다.

세계 1위가 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태반을 차지하는 일은 역시 즐거워야 한다.

나는 즐겁다. 앞으로도 즐기고 싶다.”

“인생의 리스크는 성취감을 맛보지 못하는 것이다.

또 최대 위험은 인생을 후회하는 것이다.”

“돌파구를 찾으려면 100%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120% 발휘해야 한다. 이 차이가 정말 크다.”

“사원을 파트너로 사로잡아야 좋은 인재를 모을 수 있다.

한솥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회사를 가족처럼 느낄 수 있다”

tip  미키타니 히로시는 누구?

‘일본의 e커머스 왕’… 손정의의 최대 맞수

미키타니 히로시는 명문대학인 히토츠바시(一橋)를 나온 뒤 코교(興業)은행에 입사했다. 이후 하버드 MBA를 취득하고 귀국한 뒤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초등학생 시절엔 고베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인 아버지(三木谷良一)의 하버드와 스탠퍼드 대학 유학길에 동반, 미국 생활을 경험했다.

MBA 시절 흥미를 가진 M&A 컨설팅에 특화한 크림슨그룹이 그의 첫 작품이다. 그 후 웹페이지의 편집권을 점포에게 넘겨주고 쉽고 간단하게 운영할 수 있는 RMS 시스템을 개발해 히트를 쳤다. 덕분에 일찌감치 젊은 경영자로 주목을 받았다. 쇼핑몰 사업으로 지금은 프로야구단까지 운영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디지털 강국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최근 “경기가 나빠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다”는 자평에서처럼 유수의 제조업 CEO들을 제치고 단연 언론의 관심인물로 급부상했다. ‘일본의 e커머스 왕’이란 평가답게 손정의의 맞수이자 가장 유력한 차기 패권자로 불린다.

재산도 상당하다. 2003년 <포천>이 선정한 세계의 젊은 부호 20위(5억7600만달러)에 랭크된 데 이어 올 초엔 <포브스>가 그를 순자산 36억달러의 일본 7위 부자로 분석했다. 회사 지분은 16.6%(217만 주)로 크림슨그룹(17.3%)과 부인(晴子, 11.2%) 등 우호지분을 합치면 안정적이다.

그의 경영 스타일은 한마디로 도전이다. 스스로 도전정신을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는다고 밝힌다. “꿈과 희망으로 늘 가슴이 뛰는 걸 좋아하며, 한 번 결정하면 저돌적으로 추진한다”고 말한다. 대신 어정쩡한 대응과 우물쭈물하는 말투는 싫어한다. 다만 “예상하지 못한 장벽 앞에서는 약하다”고 고백한다. 도전적인 M&A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총 20%를 보유한 TBS의 M&A 프로젝트가 그렇다. 통신과 방송은 결국 같다는 판단에 TBS 주식을 취득했는데, 결과적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국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제주간지 <한경비즈니스>, <이코노믹리뷰>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현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