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스식 경제·사회 모델은 용도 폐기됐는가.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프랑스는 미국과 영국의 앵글로색슨 모델에 맞서 프랑스식, 그리고 유럽 고유의 경제·사회 모델을 고수하는 옹호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 10월 말부터 2주 넘게 지속된 프랑스의 이슬람 및 아프리카 청년들의 소요사태로 인해 프랑스 모델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강하게 제기됐다. 이번 사태로 성장과 고용 없는 평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이 역력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초 소요사태는 파리 교외 북동부에 있는 센-생-드니 지역의 클리쉬-수-부아에서 시작됐다.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두 10대 소년이 송전소 담을 넘어 변압기 뒤에 숨어 있다가 감전사를 당한 게 발단이 되었다. 이 도시의 이슬람 및 아프리카계 청년들이 “경찰의 과잉 검문이 두 소년의 죽음을 몰고 왔다”면서 공정한 수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처음 며칠 만에 진압되는 듯한 시위는 갑자기 옆 마을로 옮겨가고, 또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밤마다 차량을 불태우고 경찰서와 우체국, 학교를 습격하는 10~20대들의 소요사태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이 강력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 지역 젊은이들을 ‘쓰레기’로 표현한 것이 소외계층 젊은이들의 분노에 더욱 불을 지폈다. 소요기간 중에 공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15~24세 젊은이의 50% 이상이 사르코지 장관이 이번 소요사태에 관련된 파리 교외 우범지역의 비행 청소년들을 ‘폭도’나 ‘쓰레기’로 부른 것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했다.

 소요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2주 넘게 지속되면서 프랑스 정부는 비상사태법을 발동,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이에 일부 지자체는  미성년자에 대한 통금령까지 내렸다.

 1968년 학생시위 이후로 최대의 재산상 피해를 기록한 이번 소요사태를 계기로 평등을 앞세운 프랑스 모델이 결코 평등한 사회를 구축하진 못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영ㆍ미식 모델과 대비되는 프랑스식 통합 모델도 전 세계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특히 영ㆍ미권 언론이 프랑스식 경제ㆍ사회 모델을 강하게 비판했다. 프랑스식 경제ㆍ사회 모델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프랑스 내에서도 더 높아지고 있다. 절대적 평등과 복지에 치중하다 보니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경쟁력이 떨어져 고(高)실업을 초래했고, 이 파장이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저소득층 이민자에게 미쳤다는 지적이다.

 현재 프랑스 실업률은 10%에 달한다. ‘민감한 지대’라고 부르는 저소득층 이민자 거주 지역의 실업률은 프랑스 평균 실업률의 두 배에 달해 20.7%나 된다. 또 이민자 중에도 유럽계가 아닌 다른 대륙 출신의 이민자 실업률은 더 높아 26.4%이다. 이 중 남자 실업률은 36.2%, 여자 실업률은 40.8%다.

 성장을 멈춘 사회, 대량실업 사회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와 분배만으로는 이들의 갈증을 풀어주기에 너무나 큰 한계가 따른다. 프랑스의 전경련 메데프(MEDEF)는 “이번 도시 폭력 사태가 성장 약화를 나타내는 하나의 증세”라면서, 정부에 새로운 사회·경제 모델을 개발하라고 촉구했다. 로랑스 파리조 MEDEF 회장은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공공기관과 노조를 포함한 사회 파트너들이 힘을 합쳐 새로운 프랑스 모델을 만들어 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또 “교외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태는 가치의 파괴 현상”이라면서, “경제적  성과를 논의하지 않고는 사회적 발전을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충분한 일자리 없는 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문제 제기를 했다.

 고용 창출과 함께 제기된 또 다른 문제가 고용 기회의 평등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프랑스 소요사태가 이민자 주택단지에서 자라난 이민 2세대들이 사회에 진출하는 기회의 부족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되면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한 지역에서 수십 년간 거주하면서 이민 2세들은 프랑스 주류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게 됐고, 여기에 고압적인 경찰의 태도, 무슬림에 대한 외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번 소요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소요가 시작된 이민자 주택단지는 1960년대에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건설됐다. 프랑스 여러 지역의 낡은 주택에 살던 이민자들은 잔디밭과 운동장 등으로 둘러싸인 현대식 아파트로 이주했다. 당시 이민자들은 다른 근로자 계층 프랑스인들과 이웃해 살게 됐고, 자녀교육도 무료로 받았다. 30년 전 모로코에서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온 하산 마로우니(38)는 “주민등록증에도 프랑스인이고, 세금도 내고, 군대도 갈 수 있으며, 다른 점은 아랍인이란 것뿐”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들어 정부의 지원으로 주택을 구입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시행되면서 대부분의 프랑스인 근로자들은 주택단지를 떠났으나, 이민자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 그대로 눌러앉아 살았다. 이민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주택단지가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기회 박탈에 따른 이민 2세들의 불만은 청소년 범죄로 이어졌다. 경찰은 이 지역을 ‘민감한 지역’이라고 부르며, 고압적이고 강력한 단속에 나서면서 10대들의 불만도 고조되는 등 악순환이 계속돼 왔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파리 교외의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을 시인하고, 동등한 권리와 기회 보장을 강조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혜택받지 못하고 배제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정부 프로그램을 2002년부터 시행했지만, 신속하고 충분하게 시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라크 대통령은 “출신지가 어디든 우리는 공화국의 자식들이다. 우리 모두는 똑같은 권리를 기대할 수 있다. 존중받으며 동등한 기회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등한 기회를 위한 조치를 가속하고, 강화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반차별 기구를 설치하고, 교외 지역 저소득층을 위해 일자리 2만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갖가지 저소득층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이번 소요사태를 계기로 프랑스에서는 논쟁이 불붙었다. 공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탄력적인 근로시간 운영을 위주로 한 경제개혁 추진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또한 프랑스 소요사태는 유럽 전역에 저소득층 이민자 문제를 진지하게 되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고용창출과 사회통합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가난과 차별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저소득층을 방치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된다는 교훈도 새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