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기업들을 왕처럼 모시겠다’는 중국 정부의 태도가 표변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본격 시동을 건 경제개혁·개방정책으로 세계 외국인 직접투자(FDI)시장의 ‘블랙 홀’로 떠오른 중국이 그동안 외국 기업들에게 베풀어온 혜택은 상상 이상이었다.

세금 감면은 기본이고, 50년 동안 공장을 무료로 임대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특구 내에 골프장, 자녀 교육을 위한 국제학교를 건설하는 등 중앙정부의 허용 범위를 넘는 ‘특혜’를 제공했다. 심지어 투자를 유치한 직원이나 외부 중개인에게 커미션을 주기도 했고, 입주 후 애프터서비스(A/S)까지 완벽하게 제공하기도 했다. 덕분에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섰고 올해 들어 영국을 제치고 세계 4위 수준의 경제 대국(GDP 기준)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외국 기업들에게 주어져온 인센티브는 지방 성 정부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점점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증표들도 뚜렷해지고 있다.

우선 외자기업들에 대한 최대 특혜 가운데 하나인 세금 감면 혜택이 이르면 내년부터 사라진다. 중국 정부는 내·외자기업 단일 기업소득세(법인세)안의 입법 절차를 올해 말까지 완료하고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통과시킨다는 일정표를 이미 내놓았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기존 외자기업들은 일정 과도기간 동안 종전 세율(15%)대로 세금을 내면 되지만, 신설법인들의 세율은 중국 국내 기업과 같은 33%로 올라 지금의 2배에 가까운 세금 부담을 안게 된다.

외자기업에 대한 토지  사용권 우대 조치도 대폭 줄어들었다. 그동안 각 지역의 개발구가 외국 기업에 제공하던 토지사용권 부여 혜택을 없애고 현(우리나라의 군 단위)급 이상 관청과 계약한 외국 기업에 한해서만 토지 사용을 인정키로 했다. 외자기업들이 예전처럼 좋은 조건으로 토지를 매입하거나 임대하는 길이 대폭 좁아진 것이다. 

기업 인수·합병(M&A) 분야에서 외국자본의 유입도 강력 규제된다. 중국 상무부가 지난 8월 초 공개한 ‘외국 투자자의 중국 기업 M&A에 관한 규정’ 초안을 보면, 외국 투자자가 중국 기업을 M&A 하는 경우, M&A된 기업의 등록 자본 중 외국 투자자의 비율이 25%를 넘어야 한다.

25%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은 외국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빌릴 때, 중국 기업과 똑같은 규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외환 사용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또 중국 기업이 해외에 설립한 법인을 이용해 다시 중국 내 기업을 M&A 하는 방식을 차단했다.

중국 기업의 해외 법인이 자국 내 기업을 M&A한 다음 외자기업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M&A된 기업 등록 자본의 최소 25%에 해당하는 증자(增資)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이와 함께 초안은 국가 주요산업이 외국 투자자의 손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제한했고 국가경제 안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산업 분야에서 중국 기업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상무부 보고를 의무화했다. 중국의 유명 상표나 전통 산업을 인수하는 경우도 상무부에 보고하도록 규정됐다.

한 마디로 중국이 민족 산업에 대한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양(量)보다는 질(質)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외자 도입 기본정책과 이용전략에 대한 전면 수정에 나선 것이다. KOTRA 중국본부의 한 관계자는 “그나마 외자기업 혜택을 보려면 낙후된 중국 중서부 지역이나 동북3성 지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동부 해안 지역이나 광둥성 등은 물 건너간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외국 기업 중국 투자 하락세

그러다 보니 올 들어 외국 기업의 대(對) 중국 직접투자(FDI) 규모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지난 7월의 경우, 42억8000만달러(약 4조1310억원)로 작년 대비 5.49% 감소해 3개월째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중국 정부가 승인한 외국 기업의 대 중국 투자 건수도 작년 대비 12.15% 감소한 3022건을 기록, 중국 정부의 정책이 ‘약발’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은 들판의 불길처럼 번져가는 노동조합 조직 열기다. 중화전국총공회(총공회)가 현재 25%에 머물고 있는 외자기업들의 노동조합(공회) 조직률을 올해 안에 60%까지 끌어올리겠다며 개별 기업의 근로자들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무노조 경영’을 경영 철학으로 삼고 있는 월마트(WalMart)이다. 지난 7월29일 중국 남동부 푸젠(福建)성 취안저우시에 있는 월마트 진장점에서 첫 노조가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불과 10여 일 만에 모두 5개 매장에서 노조가 생겨난 것이다. 

이는 월마트가 중국 측에 사실상 ‘백기 투항’을 선언하고 중국 내 사업장에 노조 결성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월마트는 지난 8월9일 성명을 통해 “총공회와 협력할 계획이며 중국 내 모든 월마트 매장에서 노조 설립이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중국, 그리고 동료 조합원들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년간 총공회 측의 노조 설립 압력을 단호하게 거부해왔던 월마트로선 ‘무조건 항복’이나 다름없는 굴욕이었다. 그 만큼 외국 기업의 무(無)노조 관행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궈원차이(郭穩才) 총공회 기층조직 건설부장은 “월마트가 노조 설립과 관련해 노동자들에게 보복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외자기업에 의한 노조 탄압 가능성도 원천봉쇄했다. 

중국의 ‘노조 결성 붐’은 노사정책 방향이 외자 유치 촉진에서 근로자들의 권익 보호로 중심이 옮겨가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 변화는 중국 진출 한국 기업에도 그대로 영향이 가해질 전망이다.

총공회는 2~3년 전부터 삼성, 월마트 등 무노조 외국 기업 명단을 언론에 공개하며 노조 설립을 의무화하도록 압박을 가해왔다. 무노조와 값싼 임금 같은 기업 친화적인 노동 환경의 매력에 끌려왔던 일부 중소업체들은 사업 철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에 몰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자국민과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면서 한국 기업이 대표적인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대접받으며 구미에 맞게 향유하던 ‘꿀맛’ 같은 시대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산업계의 맹추격에 이어 변화하는 기업 환경으로 한국 기업들의 ‘차이나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을 넘어선 또 다른 기회의 땅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