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반짝 마케팅’에 안성맞춤
세계의 유명 도시에 잠깐 동안 가게를 열어 유행을 만들곤 사라지는 ‘팝업(pop-up) 스토어’가 유행이다.

팝업 스토어의 대표적인 도시는 단연 미국 뉴욕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위치한 브라이언트 공원. 지난해 여름 공원 남서쪽 입구에 ‘사우스웨스트 포치’라고 부르는 간이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조촐하지만 이곳에서 파는 샌드위치와 치즈, 돼지고기 요리 등은 미국의 유명 요리사 톰 콜리치오가 만든 것이다.

문을 연 이 팝업 스토어는 미국의 대표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세웠다. 뉴욕 러과디어아 공항 취항을 계기로 항공사의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주로 입소문을 통해 알리고 있다. 여기서 파는 음식들은 마치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도시별 공항 라운지를 옮겨온 듯 한 느낌을 주도록 기획됐다. 뉴욕의 미트볼, 시카고의 프라이용 돼지고기 소시지, 볼티모어의 게살 등을 연상토록 하는 샌드위치가 메뉴다. 지난 6월19일 문을 연 이 레스토랑은 오는 9월 중순 사라진다. 금새 떴다가 사라지는 유행처럼 가게도 짧은 사이클을 반복하는 것이다.

팝업 스토어는 음료수부터 럭셔리한 다양한 제품까지 소매점들에 의해 시도된다. 지난 봄 시즌인 4월 초. 역시 유행에 민감한 비타민음료를 만드는 글라소는 새로 출시한 ‘비타민워터10’을 알리기 위해 뉴욕 소호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한 병에 10칼로리만 들어있다고 자랑하는 음료수를 홍보하기 위해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병으로 벽에 ‘10’이라는 숫자를 만들어 인테리어를 한 이 스토어는 딱 10일간 열렸다. 냉장고에서 네 가지 종류의 신제품 음료수를 맛볼 수 있도록 하고, 노트북도 한 대 둬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인터넷 검색도 가능하도록 했다. 닌텐도 위 게임과 클래식 풋볼 테이블 뒤로는 DJ가 교대로 음악을 틀어댄다.

배타적인 경험, 한시적인 존재감 등이 재미라는 양념과 버물려 독특한 유행을 만들어 낸다는 팝업 스토어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마치 온라인상의 플래시 광고처럼 오프라인에서 입소문으로만 돌아 잠깐 등장했다 사라지는 팝업 스토어는 런던, 파리, 밀라노 등 유럽의 대표 도시들 곳곳에서 시도된다.

나이키는 올해 봄 런던 동쪽 쇼어디치에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 4일간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오래된 철도 아치 밑 숨겨진 장소에 세웠지만 전날 밤 10시부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열성 고객들이 줄지어 섰다. 고가의 제품을 한정된 수량만 파는 일종의 ‘신비주의 마케팅’이 먹힌 것이다. 스포츠마케팅 회사에서 일하는 마크 해리스는 “마치 폭격을 맞듯이 대량생산된 물건에 둘러싸이거나 쇼핑 나온 많은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회사인 니베아는 지난 3월 독일 뮌헨의 막시밀리안 스트라세에 팝업 스토어를 열어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사진사를 고용해 지나가는 행인들을 꾸며주는 행사를 가졌고, 신발 디자이너인 루퍼트 샌더슨은 지난 5월 파리에 최근 컬렉션을 선보이는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브레라 거리. 이곳의 상점 한 곳을 소유하고 있는 파올라 코미니는 아예 일련의 팝업 스토어용으로 자신의 가게를 빌려주는 계약을 체결했다. 치약 회사인 콜게이트, 콘돔 회사인 듀렉스, 패리스 힐튼 디자인 시계 판매 회사 등이 이곳에서 돌아가며 팝업 스토어를 열 예정이다. 코미니는 “이번 가을과 겨울 시즌 임대가 사실상 다 끝났고, 이미 내년도 임대 요청을 받고 있다”고 전한다.

팝업 스토어는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더 활성화되고 있다. 곳곳에서 부도가 나 사무실이 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회사인 익스피리언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일곱 개에 한 개 꼴인 약 13만5000개의 아울렛이 연말까지 비어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존 라이트 시장 분석가는 “상점 소유자의 입장에서는 가게를 놀리는 것보다 아무리 짧더라도 유명 브랜드나 판매업자가 유행을 일으키는 팝업 스토어로 이용하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팝업 스토어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유행을 만들어 내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선호한다. ‘MBS 이그제큐티브 서치 에이전시’의 모이라 베닉슨 애널리스트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정말 재미있고, 혁신적인 것을 빨리 시도해 볼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분석한다.

‘팝업 스토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낸 트렌드워칭(trendwatching.com)의 라이니어 에버스 설립자는 본격적인 팝업 스토어 트렌드가 시작된 것을 2003년으로 보고 있다. 델타 항공사의 계열사인 송(Song)은 지난 2003년 11월 뉴욕 소호에 9주간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송의 기내식 메뉴, 여행용품 등을 팔며 마치 송 비행기 내에 있는 듯 한 경험을 제공하며, 비행기 표를 팔았다.

이후 글로벌 도시 곳곳에서 송의 마케팅을 흉내 낸 팝업 스토어가 등장했다. 일본의 뱅가드 의류 브랜드인 꼼드가르숑은 베를린에서 1년간만 스토어를 연 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로스앤젤레스, 싱가포르, 베이루트, 글래스고우 등에서 잠시 열었다가 문을 닫는 팝업 스토어를 세웠다.

인터넷 회사인 이베이는 뉴욕 펜트하우스를 얻어 디자이너들에게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가구와 인테리어로 꾸민 선전공간을 운영하고, 소매 판매체인인 타깃은 허드슨 강에 배를 띄워 임시 스토어를 만들었다가 없앴다.

팝업 스토어 트렌드엔 미국 농부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미국 감자 조합은 지난해 추수감사절에 뉴욕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어 “감자에는 바나나보다 많은 칼륨과 엽산, 비타민이 들어있다”고 선전하기도 했다.

팝업 스토어는 온라인과 경쟁하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저항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에게 컴퓨터 앞을 떠나 실제 가게를 들러보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라이니어 에버스 CEO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팝업 스토어는 배타성을 발하는 다수, 계획된 우연성이라는 모순적 개념이 결합된 것”이라며 “점점 더 자기만의 경험을 가지려고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와 경제 침체라는 외부 환경이 결합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