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남아시아 이어 대만과도 자유무역 추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정확히 말하면 ‘미 제국에 의한 평화(Peace by American Empire)’란 뜻이다. 그러나 미 제국에 의한 평화는 미 제국의 존재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어느새 ‘미 제국’과 같은 의미로 잘못 쓰이고 있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제국에 의한 평화)’를 흉내 내어 만든 말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이전에는 ‘팍스 브리태니커(Pax Britanica; 영 제국에 의한 평화)’가 있었다.

어쨌든, 팍스 아메리카나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반세기 이상 계속됐다. 그런 팍스 아메리카나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고 있는 것이 ‘팍스 시니카(Pax Sinica)’이다. ‘차이나(China)’란 말이나, ‘사이노(Sino)’라는 말이나 모두 ‘진(秦ㆍ친ㆍQin)’이라는 국명 또는 진나라에서 생산된 비단을 뜻하는 ‘진(錦ㆍJin)’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서양언어들이다. 실제로 서양이 팍스 로마나일 때 동아시아에는 팍스 시니카가 오랫동안 계속됐지만, 서양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중국은 1978년 12월 경제 개혁을 시작한 이래 30여 년 만인 지난 8월15일 동남아시아 10개국과 시장을 통합하는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경제 영토를 1.5배로 늘였다. 인구 13억의 중국이 인구 6억의 동남아시아 10개국과 2010년 1월 FTA(Free Trade Area: 자유무역지대) 발효를 전제로 한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이 협정 체결로 2010년 1월1일부터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상품 7000가지가 무관세로 이른바 ‘차세안(ChAsean: China+Asean)’ 내에서 유통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무부장과 론티바 나카사이 태국 상무장관 사이에 체결된 27개항의 협정에 따르면 새해부터 동남아시아의 두리안, 망고스틴, 화룡과, 홍모단 등 과일들이 관세 없이 중국 시장에서 팔리게 될 전망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산 옷감이나 레노보(Lenovo), 하이얼(Haier) 등 중국산 전자제품들이 역시 무관세로 동남아시아 시장을 누빌 예정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체결한 사실상의 FTA 협정은 중국으로서는 외국과 체결한 최초의 FTA 협정인 셈이다. 천더밍 상무부장은 론티바 나카사이와 협정을 체결한 후 중국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제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의 풍부한 과일들을 아주 싼 가격으로 사먹을 수 있게 됐다. 마찬가지로 의료 서비스, 교육과 관광 분야에서도 이제 중국인들은 보다 싼 가격으로 동남아시아의 물미가렴(物美價廉; 물건은 좋고 값은 싼)한 생산품들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중국은 대만과는 ECFA(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의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ECFA는 FTA와 같은 구조로 돼있지만, 중국과 대만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용어를 바꾸어서 만든 말일 뿐이다. 중국과 대만 사이의 ECFA도 연내에는 체결될 전망이다. 대만의 야당인 민진당은 시대의 조류도 모르고 자신들의 대만 독립 노선이 설 땅을 잃을까봐 반대하고 있지만, 거센 물거품을 일으키며 온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중국 경제의 흐름에 대만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리고 있다.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10+1 FTA 체결에 이어, 10+1에 한국과 일본이 포함된 10+3 FTA 체결이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대만 일각의 반대를 휩쓸어 밀어붙이고 ECFA를 체결한다는 자세로 대만을 압박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중국은 얼마 전부터 남부 광시(廣西)장족자치주의 주도 난닝(南寧)에서 ‘범 북부만 경제협력기구’라는 걸 만들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활발한 접촉을 해왔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경제장관들을 난닝으로 불러 이번에 체결된 10+1 FTA를 위한 사전공작을 진행해왔다. 중국은 앞으로 이 난닝과 광시장족 자치주를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협력 중심지역으로 만든다는 프로젝트를 착착 추진하고 있다. 그런 작업의 일환으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라오스와 캄보디아, 미얀마에게도 활발한 경제교류를 제의하고 있다.

광시장족자치주 최남단에 베이하이(北海)라는 항구도시가 있다. 중국의 최남단 항구라고 봐도 좋을 항구도시의 이름이 왜 ‘난하이(南海)’가 아니고 ‘베이하이’일까. 비밀은 과거의 팍스 시니카를 되돌아보면 풀린다. 인도나 남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비단이나 도자기를 사려면 베트남 옆의 북부만을 항해해서 일로 북상해서 가닿는 중국 땅, 그곳이 바로 지금의 베이하이인 것이다. 그러니 북쪽으로 북쪽으로 항해하면 가닿는 항구도시라는 뜻에서 베이하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뿐만 아니라 호주, 칠레, 뉴질랜드, 파키스탄 등 모두 14개 국가들과 현재 FTA 체결 협상을 진행 중이다. 우리는 지금 중국과 FTA 체결을 위한 관ㆍ산ㆍ학(官ㆍ産ㆍ學)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는 단계에 있다.

1990년대 초 황병태 전 주중 한국대사는 재임시절 많은 중국 고위층 인사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유럽의 철강 공동체와 같은 경제 공동체를 한국과 중국이 만들어야 한다, 무관세 공동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항공기ㆍ전자 전화교환기(TDX)ㆍHDTVㆍ원자로 등의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이 산업협력을 해야 한다는 등의 제의를 해서 중국 관리들이 놀라 메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시절은 이미 지나가고 요즘은 우리가 중국의 움직임에 깜짝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함이 움직이면서 생겨나는 파도에 한반도호(號)가 어떤 생존전략을 가져야 전복되거나 침몰하지 않을까.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경제 전략을 짜야 할 때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