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에게 세계 자동차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경영난에 처한 최대 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그에게 경영을 도와달라며 강력한 ‘러브 콜’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발단은 GM의 대주주이자 저명 투자가인 커크 커코리안이 GM의 릭 왜고너 회장 겸 CEO에게 보낸 서한. 그는 서한에서 “큰 상승효과와 비용절감이 기대된다”며 르노·닛산과의 자본제휴를 제안했다.

커코리안은 GM의 지분 9.9%를 가진 대주주다. 왜고너 회장으로서는 커코리안의 주문을 무시할 수 없다. 예상대로 GM 이사회는 7월7일(현지 시간) 르노·닛산과의 제휴 협상을 승인했다. 르노·닛산 역시 곤에게 교섭권을 일임했다. 르노·닛산이 30억달러를 투자해 GM의 지분 20%를 확보할 것이라는 설이 흘러나오며 양측의 협상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GM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업체이며 미국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르노·닛산은 4위 업체에 불과하다. GM이 자존심을 접고 곤에게 경영 지도를 읍소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경영 위기가 급박했기 때문이다.

2005년 GM은 1926억달러의 매출을 올렸지만 영업수지는 12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반면 닛산과 르노는 각각 815억달러, 526억달러 매출에 영업이익 75억달러, 17억달러를 기록했다. GM의 주식 시가총액은 165억달러에 불과했지만 닛산은 486억달러에 이르렀다.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GM은 인력 3분의 1 감축, 생산규모 20% 축소라는 구조조정 요구에 직면해있다.

곤 사장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구조조정의 달인인 곤 사장에게 다운사이징을 일임하겠다는 것이 GM의 속셈이다. 곤 사장은 1999년 경영난에 허덕이던 일본 닛산을 맡아 3년에 걸쳐 2만1000명을 해고하고 공장 폐쇄를 단행, 비용을 35%가량 줄이는 등 획기적인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다.

그 결과 지난해의 경우 9월까지 닛산의 판매는 3년 전에 비해 100만 대나 많은 360만 대에 달했고 오는 2008년에는 420만 대의 목표를 세웠다. 순부채 122억달러에 찌들어 있었던 적자기업이 그야말로 알짜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의 달인 곤 사장이 GM에서도 구원투수로서 ‘성공 신화’를 창출할 수 있을까. 논란이 있지만 애널리스트들은 다소 회의적인 반응이다. 도쿄 닛코씨티그룹의 마쓰시마 노리유키 애널리스트는 “GM과 어떤 연대도 닛산에 득이 될 수 없다”면서 “닛산의 성공요인이 GM에 작용할지 여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비관론은 20% 정도의 지분으로는 경영 전반을 장악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다. 크레딧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의 엔도 코지 애널리스트는 “20%의 지분을 인수할 경우 닛산은 주요 주주가 될 수 있다”며 “그러나 가장 강력한 주주는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넉넉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심 요직에 르노·닛산의 간부들을 앉힐 수 없게 된다. 분석가들은 30~50%의 지분은 확보해야 이사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구조조정을 밀어붙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칫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에 불과하다면 GM은 꿈쩍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GM 이사들은 르노·닛산과의 연대를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것이 커코리안으로 하여금 구조조정의 달인인 곤 사장을 끌어들인 배경이기도 하다. GM 이사들은 과거 실패로 끝났던 피아트와의 제휴를 들어 체질적으로 어울리기 힘든 자동차업체간 연대에 회의적인 소견을 내고 있다. 생산방식이나 기업문화 등에서 조화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삼각연대 성사 쉽지 않을 듯

르노의 지배구조를 보면 이것이 완전한 과장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르노는 원래 가족 소유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소유주가 나치에 부역한 죄로 국유화된 뒤 1996년 정부 지분이 47%로 낮아지면서 형식상으로는 민영화됐다. 지금은 정부 지분이 15.7%로 더욱 낮아졌지만 아직도 최대주주는 정부다. 반(反) 국영기업인 셈이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GM 이사들의 반발을 저항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프랑스와 독일 노조 지도부가 삼각연대에 공식 반대 입장을 표명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의 막강한 자동차 노조(UAW)도 앞서 르노·닛산·GM의 ‘삼각연대’에 반대한다고 직접 제동을 걸지는 않았으나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 바 있어 향후 제휴 협상에 대한 노조의 견제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 같은 유럽 노조의 견제가 삼각연대를 무산시킬 가능성은 희박하나 르노 지분을 갖고 있는 프랑스 정부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르노 지분 15% 가량을 가진 프랑스 정부는 앞서 GM의 경영 상황이 나쁘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르노·닛산이 ‘신중하게’ 대응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협력업체들이 보유한 부동산과 유가증권 등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닛산과 달리 GM은 현금 조성 능력이 바닥나있는 점, 닛산이 노조의 강한 지원을 받았던 것과 달리 GM 노조는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을 보이고 있는 점, 르노·닛산의 주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현재로선 불투명한 점 등도 곤 사장의 능력 발휘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그렇더라도 가장 큰 관심은 르노·닛산·GM의 이른바 삼각연대가 성사될 경우 세계 자동차 시장에 미칠 파장이다. 우선 지분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르노는 닛산 지분 44.4%를 갖고 있으며, 닛산도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상호출자로 얽혀있는 셈이다. 여기에 GM 지분까지 섞이면 3개 회사는 복잡한 출자구조로 엮이게 된다.

세계 자동차업계 사상 유례가 없는 유럽-아시아-북미 3대륙을 잇는 연대가 탄생한다. 특히 곤 사장이 GM의 최고경영자가 될 경우 레바논계 브라질 출신의 프랑스인이 미국의 최대, 프랑스의 2위(1위는 푸조), 일본의 2위 자동차기업을 동시에 지휘하는 전무후무한 일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삼각연대의 생산규모는 1450만 대로 세계시장의 21%를 웃돌 전망이다. GM을 제치고 세계 1위 등극을 노려온 도요타자동차의 1.8배 수준이다. 3대륙이라는 지리적 분포 면에서도 파괴력은 배가될 전망이다. GM은 르노의 판매망을 통해 유럽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고 르노 역시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새로운 삼각연대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주요 업체 간 합종연횡의 필요성을 높일 것”이라고 전망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 자동차업계의 긴장은 상상 이상이다.

다만 문제는 느슨한 자본 결합으로는 이러한 시너지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점이다. GM이 당면한 위기가 너무 심각한 데다 르노와 닛산 또는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 등 최근 성사된 거대 자동차기업 간 연대와 비교할 때 서로 주고받을 것이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르노·닛산의 경우 르노는 자금을, 닛산은 기술을 지원했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도 고급차와 대중차의 강점을 교환했다. 하지만 GM과 르노·닛산의 경우 덩치를 키우는 것 외에 뾰족한 시너지 가능성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능성과 시나리오가 엇갈리는 가운데 세계 자동차업계는 곤 사장의 발걸음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