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프랑스 대통령 선거의 해다. 프랑스가 내년에 새 대통령을 뽑고 경제에서도 다시 뛸 수 있을까.

프랑스 대선 주자로 선두를 달리는 인물은 여당의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과 야당의 여성 정치인 세골렌 루아얄. 두 사람 모두 당 노선에 충실한 인물이 아니라 당의 이단아로, 프랑스의 변화를 강력하게 주장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유로 경제(EU 25개국 가운데 유로화를 사용하는 12개국)의 투 톱 독일과 프랑스 중에 독일은 이미 지난해 새 총리가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경기 사이클상으로도 독일 경제는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독일은 올해 1.7~1.8%의 경제성장률이 전망되면서 지난 2000년 이후 분위기가 가장 호전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취임하면서 개혁의 수레바퀴도 계속 돌리고 있다. 전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시절 시작한 개혁 정책을 손질해 가면서도, 독일 경제의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경기 사이클상 분위기는 밝아지고 있다. 프랑스 경제는 지난 2002년부터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로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그 해는 1.2%, 2003년에는 0.6%의 저조한 성장률을 보였다. 2004년 2.5%로 회복됐다가 2005년에 다시 성장률이 1.4%로 가라앉았으나  올해는 2.0~2.5%의 성장률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경기 회복도 경제의 고질적 문제, 즉 10%에 육박하는 높은 실업률과 만성적인 재정 적자는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2003년과 2004년에 9.9%, 2005년에 9.5%를 기록했다. 올 들어 경기가 회복되면서 프랑스의 실업률도 다소 낮아지고 있지만 워낙 구조적 실업으로 굳어진 실업자수가 많아 절대 수치 자체는 높다. 따라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해 사람을 채용하기도, 해고하기도 쉬운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지속적으로 충고하고 있다.

재정 적자도 정부를 내리누르는 골칫거리다. 프랑스는 복지와 분배를 우선시하는 경제 정책 때문에 만성적인 재정 적자를 기록해왔다. 나라 빚은 계속 늘어나는데 씀씀이는 줄어들질 않아 1976년부터 적자로 돌아선 재정이 만성적인 상태로 굳어진 것이다. EU의 성장안정협약(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유지) 기준을 맞추기 위해 재정 적자를 끊임없이 줄이려고 애써왔지만 2002년 이후 경기가 둔화되면서 3% 기준을 지키지 못했다.

실업률과 막대한 재정 적자 등 안고 있는 문제는 프랑스나 독일 경제가 엇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독일은 미국을 앞질러 세계 최대의 수출 국가다.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내면서도 유독 투자 부진과 내수 위축 때문에 성장률이 1%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프랑스는 1997년 이후 가계의 소비지출이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성장률 자체는 독일보다 높지만, 국제수지 구조 등에 있어서 경제의 체질은 독일보다 약하다. 가령 세계 경제의 호황과 중국 특수, EU 확대 등으로 인해 프랑스도 수출이 계속 늘고 있지만 수입이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 10년간의 불황으로 기업들이 임금을 거의 올리지 않아 시간당 노동비용이 감소한 반면, 프랑스에서는 이 같은 구조조정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에 비해 개혁이 더 부진하다. 게다가 지금은 과감한 개혁이나 구조조정이 더더욱 힘들다. 집권 말기에 들어선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그의 오른팔인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바닥을 기는 지지율로 극심한 레임덕 현상에 빠져들었기 때문. 특히 올 들어 빌팽 총리가 시도한 노동시장 개혁안이 물거품이 되면서 ‘개혁이 힘 든 나라’라는 이미지가 더 굳어졌다. 빌팽 총리는 20%가 넘는 청년 실업률을 해결하고 경직된 프랑스 노동시장을 개혁하려고 CPE(최초고용계약, 만 26세 미만 청년을 고용하면 2년 이내에 자유롭게 해고를 허용하는 새 노동법)을 도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조와 학생들의 전국적 반발과 시위만 불러일으킨 채 철회하고 말았다.



새로운 리더십 등장 기대

이 사태 이후 프랑스는 극심한 레임덕 현상으로 빠져들면서, 정치 시계가 내년의 대선 정국으로 빠르게 접근해가고 있다. 경제계도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프랑스 국민들이 내년 대선을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실질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나라  분위기가 일신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 이념에서 실리로 빠르게 바뀌어가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프랑스는 이런 리더십의 등장이 늦었다. 가령 영국은 90년대 후반 노동당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가 등장, 우파보다 더 우파 같은 정책도 구사하는 실용주의 노선을 걸으면서 오늘의 경제 호황을 이뤘다. 독일에서도 중도 좌파인 사민당 출신의 전임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독일의 토니 블레어’를 자처하며 등장했고, 중도 우파인 기민당 출신의 현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더더욱 기업과 경제를 중시하는 정책을 택한다.

프랑스는 이런 정치적 세대교체가 늦었다. 내년 대선을 달굴 인물들이 명실 공히 50대로, 변화하는 유권자의 성향을 읽고 시대 분위기를 파악해 보다 실용주의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치솟는 인기 속에 프랑스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노리는 야당인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의원은 사회당 제1서기(당수)인 프랑수아 올랑드와는 인생의 동반자 사이다. 둘 사이에 아이 넷을 뒀지만 법적 결혼은 하지 않고 동거해왔다. 루아얄은 올랑드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회당 노선에서 벗어난 독자적인 정책 아이디어도 서슴없이 내놓는다.

루아얄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주 35시간 근무제로 인해, 가변 시간제로 일하는 저임금 근로자들의 비율이 10%에서 40%로 치솟았다”고 비판했다. 주 35시간 근무제는 사회당 정부 시절 도입했고, 지금도 사회당이 계속 지지하는 정책이다. 이처럼 루아얄은 사회당 전통과의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100년 전통의 프랑스 사회당에서 대통령 후보 1순위가 된 ‘정치적 신데렐라’로 불리는 루아얄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에서 태어났다. 낭시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엘리트 양성소인 ENA(국립행정학교)를 나왔다. 그는 미테랑 시절 1988년 지역구 두세브르에서 의원으로 당선됐고, 환경부장관(1992~1993년), 가족부장관(2000~2002년)을 지냈다. 2004년 지방선거 때는 푸아트 샤랑트 지방에서 현직 총리였던 라파 랭 총리를 누르고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루아얄을 오늘의 스타로 만든 것은 역설적으로 야당인 사회당 내 기득권을 쥔 정치인들이다. 작년 9월 루아얄이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자, 사회당 내 남성 정치인들은 “그럼 애는 누가 돌보느냐”고 이죽거렸다. 하지만 유권자는 루아얄 편을 들어줬다. 사회당의 기존 모습을 과감히 내던지는 이 이방인을 적극 지지했다. 참신한 인물이나 정책도 내놓지 못하는 사회당에 식상했기 때문이다.

여당의 선두 주자, 박력 넘치는 ‘철의 사나이’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도 여당의 ‘이방인’이기는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엘리트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헝가리 이민자의 아들이며 변호사 출신으로, 28세에 파리 인근의 부자 동네 뇌이쉬르센시의 시장을, 38세에 예산장관을 지내는 등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었다.

사르코지가 올 여름 내놓은 <증언>이라는 저서는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에서 사르코지는 “프랑스는 과거의 영광에 매달릴 게 아니라,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이 더 잘 사는 이유는 영국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으며 주 35시간 근무제로 인해 느슨해진 프랑스의 근로문화를 비판하고, “국제 무대에서도 프랑스어를 고집할 게 아니라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프랑스 경제도 이처럼 거침없이 변화와 개혁을 외치고 또 이를 실현해줄 리더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