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이 백화점을 삼켰다.’ 지난해 12월26일. 일본 주요 일간지의 1면은 이런 제목으로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이날, 아시아 최대 소매유통그룹으로 떠오른 일본의 세븐&아이 홀딩스가 세이부(西武)백화점과 소고백화점의 지주회사인 밀레니엄리테일링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세븐&아이는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과 종합슈퍼마켓 체인인 이토요카도를 거느린 소매유통업계의 기린아. 다카시마야(高島屋)에 이어 백화점 업계 2위인 세이부와 소고 백화점을 산하에 두게 되면, 월마트와 카르푸, 로열 어홀드, 메트로에 이어 세계 5위의 거대 유통업체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또 일본 유통업계의 선두주자인 ‘이온그룹’을 제치고 편의점과 슈퍼, 백화점이라는 3대 유통점포를 거느린 일본 최대 종합 유통그룹으로 떠오른다.  세븐&아이와 밀레니엄리테일링의 지난해 매출액 합계는 4조5400억엔. 세븐&아이는 밀레니엄리테일링의 발행주식 65.35%를 1311억엔에 건네받기로 했다. 이토츄상사 등이 보유한 나머지 주식도 내년 6월까지 전량 사들이거나 자사 주식과 바꿀 예정이다.

 세븐&아이는 세븐일레븐 재팬과 이토요카도, 외식업체인 데니스 등 3사가 통합해 지난해 9월1일 발족한 지주회사이다. 편의점과 슈퍼마켓뿐 아니라 은행과 보험 등 소매금융 분야에서도 사업을 전개해 왔다. 지난해 매출액 3조7000억엔. 일본에 1만1000여 군데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3만개 점포를 두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종업원 68만명. 기업가치 면에서 모회사였던 이토요카도보다 세븐일레븐이 그룹의 주력을 담당하고 있다.

 밀레니엄리테일링은 지난 2003년 6월1일 경영회생 중이던 세이부백화점과 소고그룹이 경영 통합해 발족한 지주회사. 세이부와 소고, 두 백화점을 합치면 2004년 매출은 9200억엔, 점포 숫자는 30개. 사원은 5400명. 이르면 2~3년 후에 주식상장을 노리고 있다. 세븐&아이의 산하로 들어가기로 전격 결정한 것은 재무 기반을 획기적으로 확충하는 동시에 새로운 유통업태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복안에서다.

 반면 세븐&아이는 주력인 편의점 분야의 수익이 떨어지자 활로에 고심해 왔다. 일본 편의점 업계의 매출은 지난해 11월까지 16개월 연속 전년에 대비해 낮은 상황이었다. 세븐&아이도 예외일 수 없었다. 편의점이라는 업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오래된 가맹점 주인들이 24시간 영업에 불만을 쏟아내면서 일본 편의점 2위 업체인 로손이 내후년 말부터 24시간 영업을 일부 점포에서 포기하기로 하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이토요카도의 종합슈퍼사업 부진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토요카도는 주력 분야인 의류 판매에서도 최근 백화점의 판매고에 눌려 왔다. 백화점의 고급 의류제품 개발력과 조직력을 따라잡으려고 의욕을 보였지만 여전히 휘청거리기만 했다. 크게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백화점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세븐&아이는 백화점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슈퍼마켓의 의류 판촉활동에 활용하고, 세븐일레븐의 거대한 점포망을 통해 백화점 선물  주문을 받는 방법으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일본 유통업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백화점이 뒤늦게 등장한 슈퍼나 편의점에 넘어가는 시대가 왔다”면서, “이번 사건이 향후 유통업계 재편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특히 백화점이 유통업계 재편의 한복판에 설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경기의 회복 징후가 뚜렷한 만큼 부유층 고객의 백화점 나들이가 잦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유통업계에서는 과거부터 브랜드파워가 강한 백화점을 산하에 두는 것이 일종의 ‘비원’(悲願)과도 같았다. 1990년대 전반까지 다이에가 다카시마야 주식을 대량 취득하거나 요카도가 이세탄(伊勢丹) 주식의 대량 매입을 검토했었다. 하지만 장기적인 불황이 지속되면서 이른바 ‘백화점의 겨울’도 길어졌다. 그 여파로 백화점 사냥 열기는 한풀 꺾였다. 그 틈에 세븐&아이가 전격적으로 세이부와 소고 인수를 단행하자, 유통업계는 허를 찔렸다는 반응들이다. 세븐&아이의 공세가 일본의 ‘경기 회복’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경기회복으로 유통시장 활황

 2006년 초부터 일본경제가 연내 디플레이션을 탈피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경우 소비자들의 선호는 유력 브랜드로 쏠릴 것이다. 백화점 사업이 그간의 부진을 떨치고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조짐은 이미 지난해 9~10월 매출이 연속으로 2004년 같은 기간을 웃돈 것에서 확인됐다. 슈퍼마켓이 20개월 연속 전년을 밑돌아 죽을 쑨 것과 판이한 결과이다. 지난해 8월 중간결산에서 대형 백화점 5사 가운데 명품으로 승부를 거는 미쓰코시(三越)백화점을 제외한 4사가 영업이익을 늘렸다. 이런 순풍을 타고 다카시마야는 올해부터 7년간 점포 개장 등 설비투자에 3000억엔을 쏟아붓기로 했다. 미쓰코시도 긴자(銀座) 점포의 매장 면적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세븐&아이의 백화점 인수를 계기로 유통 대재편의 바람이 휘몰아칠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이미 그 싹이 보이고 있다. 미국의 월마트가 최근 경영난에 빠진 대형 슈퍼업체인 세이유(西友)를 인수, 일본 유통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월마트가 향후 일본 유통업계 사냥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븐&아이의 라이벌로 유통업계 최강자인 이온은 도시 외곽 교외에 디스카운트스토어를 주축으로 한 대규모 쇼핑몰을 짓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술 전문점이나 가죽 전문점 등 유력 소매체인들을 쇼핑몰에 끌어들이고 있다. 경영회생에 나선 다이에는 식품 부문의 경쟁력으로 활로를 뚫는다는 구상을 세웠다.

 특히 이온의 경우처럼 교외에 대규모 쇼핑몰을 개발할 때 주력점포로 백화점의 존재가 필수라는 게 유통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 손님을 모으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고급화장품 전문점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는 슈퍼마켓으로는 불가능하다. 백화점을 끼고 있어야 유력 브랜드의 유치가 가능하며, 부유층이 몰리는 건 상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일본의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 이뤄지면 백화점을 거느리고 있는지 여부가 ‘유통 대회전’의 승부를 가를 공산이 크다.

 편의점으로 시작한 세븐&아이는 슈퍼마켓과 백화점을 차례로 삼키면서 일본 유통업계 대재편의 서막을 알린 셈이다. 불황기 때는 ‘선택과 집중’에 의한 생존이 당면 과제였다. 하지만 이른바 ‘소비의 시대’가 도래하면 ‘규모의 경제’가 발휘될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즈키 도사후미(鈴木敏文) 세븐&아이 회장은 통합 기자회견에서 “일본 소비사회는 포화했다. 가격뿐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요구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밀레니엄리테일링의 와다 시게아키(和田繁明) 사장은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천차만별로 전문성이 높은 상품을 요구하고 있다”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경기 회복에 맞물려 상품 구비의 ‘고급화 또는 전문화’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인식인 셈이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이번 통합으로 유통업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백화점과 편의점, 백화점과 슈퍼마켓이 손을 잡는 공동 마케팅이 늘어날 것”이라며, 유통업계의 대형화를 점쳤다.

 일본에서는 올해 <하류사회>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풍미했다. 마케팅 전문가인 저자 미우라 아쓰시(三浦展)는 이 책에서 “‘총 중류’ 사회가 붕괴하고 계층 격차가 커지면서 소비는 고가품 대 저가품으로 양극화 하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하층소비자’는 그들 나름의 개성을 연출할 수 있는 상품을, 부유층은 계층을 드러낼 수 있는 고급품을 각각 요구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이런 사회에서는 더욱 특색 있는 상품으로 소비자의 구미를 당겨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잘 나가던 유통업태도 하루아침에 몰락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온이 보여주듯이, 어쩌면 디스카운트스토어를 주축으로 한 교외형 대형 쇼핑몰의 새로운 유통이 해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답은 최신 유통업태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봄 직하다.

신지홍 연합뉴스 일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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