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들어 유럽의 최대 화두는 에너지다. 고(高)유가에 이어, 새해 벽두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 분쟁 때문에 불똥이 발등에 직접 떨어졌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나머지 국가들도 장기적 에너지 정책에서 해외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발단은 2005년 1월1일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전격 중단하면서부터이다. 가즈프롬이 내세운 이유는 가스가격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평균 240달러(1000㎥당 가격)에 가스를 사가는 데 우크라이나는 국제가격에 비해 턱없이 싼 값으로 러시아산 가스를 사갔으므로 이를 시장가격으로 인상해 달라는 것. 1000㎥당 종전 가격 50달러에서 새해부터는 230달러로 대폭 인상해 달라는 게 러시아의 요구였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거부했다. 종전보다 30달러 많은 80달러선까지는 수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러시아는 가스가격을 올리는 대신 36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방안도 냈지만, 우크라이나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말의 가스가격 협상은 결렬됐다. 새해 들어 러시아가 당장 가스 공급을 중단하는 ‘보복조치’에 들어가자,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탈(脫)러시아 친(親)서방 노선을 펴니까 러시아가 가스가격 인상을 무기로 정치적 탄압을 가하려는 것이다”라고 맞섰다.

 양국 간 분쟁의 불똥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폴란드·헝가리 등 전 유럽으로 확산됐다.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 수요량의 25%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러시아 수입 물량의 80%(연 1300억㎥)를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가스관에서 공급받는다. 일단 우크라이나를 거친 뒤 여러 지선(支線)으로 나눠져 유럽 각국에 공급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크라이나 가스관이 차질을 빚으면, 그 여파가 도미노현상으로 다음 가스 수입국으로 퍼지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중단했는데, 24시간 뒤인 2일에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에서 약 3분의 1 가량의 러시아산 가스 공급량이 줄었다.

 당장 유럽에 에너지 비상이 걸렸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에너지장관이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EU집행위는 의장국인 오스트리아와 협조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시종 조기 합의를 강하게 요구했다. 미 국무부도 러시아의 조치를 정치적 압력이라고 표현하면서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가스 중단 조치로 직접 타격을 입게 될 유럽 국가들과 사전 협의도 없이 조치를 단행하는 바람에 러시아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유럽 국가들의 반발로 러시아는 즉각 사태 수습과 해명에 나섰다. 러시아 가즈프롬은 사태 이틀째에 “3일 저녁까지 유럽 국가들에 대한 가스 공급을 완전히 원상 복구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니까, 우크라이나 측이 1일 하루 동안 9500만㎥의 천연가스를 무단으로 가져갔다”라고 해명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협상도 빠른 시간에 합의에 이르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가격 인상 요구를 받아들여 가즈프롬에 1000㎥당 230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심리적 불안감 여전

 사태는 며칠 만에 종식됐지만, 심리적 불안은 금방 사그라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러시아가 에너지를 언제든 무기화 할 수 있음을 인식시켰다’라고 지적했다. 가즈프롬은 단순한 에너지기업이 아니라 러시아 가스를 독점 수출하는 국영 기업인 데다가 러시아 재정의 40% 수준을 부담하는 거대 기업이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의 경계심도 높아졌다. 유럽 언론들의 반응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는 이번 사태를 ‘21세기의 첫 전쟁’이라고 보도했다. 친(親)서방 정책을 펴는 우크라이나의 총선을 수개월 앞두고 단행된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 각국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는 등 에너지 정책 재검토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유럽에서는 그동안 환경 문제 때문에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존도를 점점 줄여 왔다. 하지만 영국과 독일 등에서는 원자력발전을 새롭게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를 대신해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리비아 등에서 천연가스 공급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태양열과 풍력에너지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EU(유럽연합)가 공동의 에너지정책에도 적극 발 벗고 나설 조짐이다.  상반기에 EU 순회의장직을 맡은 오스트리아의 마틴 바텐스타인 경제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에너지 공급의 다변화는 유럽 공동의 프로젝트이다”라고 밝혔다.

 EU는 에너지의 대외의존도가 50%에 달한다. 지난 2004년 EU 회원국이 에너지 자급도가 낮은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10개국이나 더 늘면서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높아졌고, 2030년에 이르러서는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70%로 높아질 전망이다. 에너지 공급국인 러시아 영향력이 갈수록 커질 게 불 보듯 뻔하다.

 EU는 출범 당시부터 공동의 에너지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EU의 출발이 ECSC(유럽석탄철강공동체, 1951년)에서 시작됐다. 종합적인 에너지 정책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73년 오일 쇼크부터다.

 1974년 9월 EU(당시는 EC) 차원에서 에너지 대외의존도를 줄이자는 내용으로,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향하여(Towards a New Energy Policy Strategy)’라는 공동 에너지정책이 나왔다. 이는 1980년과 1986년 수정을 거쳐 종합적인 EU 에너지정책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1997년 4월에 발표된 EU집행위원회의 에너지 정책보고서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 EU 에너지시장의 통합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에도 불구, 에너지 주권이라는 현실 때문에 에너지 협력에 대한 EU집행위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가령 캘리포니아 전력 파동을 보면서 EU도 전략적인 에너지 비축 문제를 제기하고, 집행위 역할을 강화하려는 지침을 2002년 9월과 2003년 10월 이사회에 제출했는데, 이를 거부당했다.

 하지만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가스 분쟁을 경험하면서 더 이상 에너지 문제를 개별 국가 차원에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EU는 특히 러시아 가즈프롬의 수출 독점 체제를 바꾸는 데 관심을 보인다. EU와 러시아 정상회담 때도 가즈프롬의 독점을 종식하라고 요구했는데, 러시아가 이를 거부했다.

 EU가 가즈프롬의 독점해체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다. 러시아는 EU 수출용 가스요금에 비해 자국 내 기업에 특별히 할인된 요금을 적용한다. EU는 이를 사실상 정부보조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EU는 다자간 에너지 투자협정인 에너지헌장(ECT, Energy Charter Treaty)을 적극 주도하고 있다.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EU 에너지정책의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ECT는 총 47개국이 정규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고, 한국, 중국 등 17개국이 옵서버 자격으로 있다. ECT 사무국은 현재 러시아의 참여를 전제로 한 대륙 간 수송의정서를 추진 중인데, 러시아 가즈프롬이 독점적 지위가 무너질까봐 의정서 비준에 반대하고 있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EU집행위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범(凡) 유럽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에너지정책을 보완해 2006년 연말까지 확정하겠다고 했다. EU 통합이 에너지 문제를 계기로 한 단계 진전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강경희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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