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장 개방이 지금 EU(유럽연합)의 최대쟁점이 되고 있다. 지난 2004년 5월 동유럽 등 10개국이 새로 가입하면서 EU는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이 됐다. 사람과 돈과 물자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자유로운 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게 EU의 목표다.

 EU 25개 회원국 간에는 관세장벽이 사라져 한 나라처럼 자유롭게 물자가 옮겨 다닌다. 12개국이 단일통화 유로를 채택하면서 화폐통합도 상당부분 진전돼 왔다.

 하지만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만큼은 아직 어렵다. EU의 가장 큰 장벽이다. 물론 EU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여행가는 것은 전보다 한결 수월해졌다. 국경을 통과할 때도 제 집 드나들듯 한다.

 문제는 잠깐 여행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옮겨가 일을 하는 것이다.  지난 2004년 5월 10개국이 새로 가입한 이후 이들 신규회원국에게 노동시장의 문을 조건 없이 개방한 나라는 기존 15개 회원국 중에 3개국에 불과하다. 영국, 아일랜드, 스웨덴만이 폴란드 등 동구권 근로자들을 제약 없이 받아들였다. 나머지 12개국은 노동시장 개방에 제약을 두고 2년간의 유예조치를 취했다.

 오는 5월이 되면 2년간의 유예조치가 끝난다. 노동시장 개방을 다시 3년간 유예할 것인지를 놓고 서유럽 국가들은 오는 4월 말까지 최종결정을 내린다. 이 때문에 EU의 노동시장 개방이 새롭게 화두로 떠오르는 것이다.

 기존 서유럽 국가들이 동유럽 근로자를 받아들일까 말까를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은 이들 저임금 근로자들이 경제에 도움이 되는가 안 되는가이다.

 동유럽 근로자의 유입을 꺼리는 기존 서유럽 국가들의 평균 실업률은 8.5%나 된다. 이들 국가는 동유럽의 값싼 노동력이 과연 자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가뜩이나 일자리가 모자라는 판에 자국민들의 일자리만 더 빼앗기는 게 아닌가 우려하기 때문이다.

 실업률이 10% 가까이 되는 프랑스의 경우, 지난 5월 유럽헌법 국민투표 당시 극우파 정치인들이 “유럽헌법이 통과되고 유럽통합이 진전되면 폴란드 배관공들이 쏟아져 들어와 우리 일자리를 모두 뺏어갈 것”이라고 선동했다.

 하지만 영국이나 아일랜드, 스웨덴 등 동유럽 인력이 대거 유입된 나라에서 실업률이 뚜렷하게 높아지는 현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영국에는 당초 EU 집행위원회나 영국정부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많은 숫자의 폴란드 이민자들이 왔다. 지난해 11월 현재 29만 명 이상이 취업하러 온 것으로 집계됐다. 영국정부는 이들 폴란드 근로자들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한다. 연간 5억 파운드(약 8700억 원) 상당의 경제적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런던에 있는 공공정책연구소도 동유럽 근로자들이 영국의 노동력 부족을 상당부분 해소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동유럽 이민자의 4분의 1 정도만이 런던으로 유입되고 나머지는 동부 지역이나 북아일랜드 등 영국 사람들이 가기를 꺼리는 농촌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소개된 31세의 폴란드 여성 마다 즈단스카는 1년 전 영국에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그는 폴란드에서 버는 돈의 5배쯤 되는 돈을 벌고 있다. 두 아이를 폴란드의 친척에게 맡겨두고 온 그는 “아이들 미래를 위해 가족이 떨어져 사는 고통도 감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영국에 유입된 수십만 명의 동구 근로자 중에 대부분이 폴란드 사람이다. 이들은 건설현장이나 농촌에서 일하거나, 그리고 식당에서 서빙을 하거나 가게점원 등 서비스 업종에 종사한다.

 동유럽 근로자들에게 개방적 태도를 취하느냐 아니냐는 해당 국가의 실업률이나 경제상태가 큰 지렛대가 되고 있다. 폴란드 근로자의 유입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실업률은 4.7%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아일랜드에는 지난 2년간 16만 명의 동구 근로자가 유입됐다. 아일랜드 실업률은 4.3%로 변하지 않았으며 2006년 성장률도 4.5~5%의 견조한 상승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부문별로 동유럽 근로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서유럽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불만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영국과 프랑스까지 운행하는 아이리쉬 페리의 인력 채용이 쟁점이 됐다. 아이리쉬 페리는 임금이 저렴한 라트비아 사람들을 선원으로 채용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경우, 폴란드 근로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아일랜드의 석간신문 가운데 하나인 이브닝 헤럴드는 폴란드어로 된 별도 섹션까지 만들 정도다.

 

 동유럽은 노동력 부족

 동유럽 인력이 서유럽으로 옮겨가는 현상은 서유럽 국가 뿐 아니라 인력이 빠져나가는 동유럽 국가에도 새로운 쟁점을 던져주고 있다.

 폴란드의 경우, 건설 등 특정부문에서 노동력부족현상이 나타난다. 폴란드 통계청에 따르면 2004년 1분기에 8%에 불과하던 노동력 부족현상이 최근 14%로 늘었다. 특히 건설, 엔지니어 분야에서 인력부족현상이 두드러진다.  폴란드의 인력부족은 주로 국내요인이 크지만 최근 들어선 이민이 겹치면서 가속화하고 있다.

 동유럽 근로자의 이민은 비단 건설, 농업 등 저임금 비숙련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재 폴란드 의사 및 치과의사의 3%가 해외취업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어떤 전공분야에서는 10% 가량 된다.

 신규회원국 10개국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폴란드의 경우는, ‘해외로 빠져나가는 인력을 막을 게 아니라 교육에 더 투자해 필요한 인력을 길러내야’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인구가  적은 라트비아는 상황이 심각하다. 인구 200만 명 가운데 약5만 명이 서유럽 국가로 이민을 갔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이민이 본격적인 정치쟁점이 될 정도이다.

 동유럽 근로자들이 서유럽에 유입되는 인력의 서진(西進)현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동유럽 인력을 받아들여야 하는 2011년까지는 유예조치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파장만으로도 유럽 각국에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최근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사운드 오브 유럽’ 토론회에서 “일자리를 둘러싼 두려움이 가장 현실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일각에선 세계화가 많은 문제의 해법이라고 간주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더 많은 곤경의 원천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수 위원장은 EU 확장이 경제성장의 새 동력으로 작용하는 등 경제적 측면에서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는 “EU가 확장논쟁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확장을 어디서 멈출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재 25개국 외에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EU에 가입할 예정이며, 터키의 EU 가입협상도 시작되는 등 EU 확장으로 인한 지속적인 노동 인구 유입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를 앞두고 일부 서유럽 국가에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거부감과 보호주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것.

 하지만 유럽의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노동력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EU 노동력은 오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30년이면 EU 전체에 약2000만 명의 인력이 부족하게 된다.

 현재는 EU 내에서 동유럽 근로자를 받아들일까를 놓고 논란을 벌이지만 그때 가면 터키 등 다른 문화권의 노동력을 더 많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 때 되면 지금 EU가 맞고 있는 인력의 서진(西進) 현상보다 훨씬 더 큰 관용과 도전이 유럽 국가들에게 요구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경희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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