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에서 불법이민자들이 큰 사회문제가 되면서 시민권부여에 관한 속지주의(屬地主義) 원칙의 폐지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고치자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이른바 원정출산으로 아이가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되는 것도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미국 영토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무조건 시민권이 부여되는 것을 법률적으로는 ‘태생적 시민권자격(birthright citizenship)’이라고 부른다. 1868년에 비준된 수정헌법에 따른 것으로,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귀화해 미 사법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는 규정에 의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동적으로 시민권이 부여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불법이민자나 불법체류자라고 하더라도 그 자녀가 미국에서 태어나면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되며, 원정출산처럼 일시적으로 아이를 낳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다고 하더라도 태어난 장소가 미국 땅이기만 하면 ‘독수리 여권’을 갖게 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조항에 대한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드높아지고 있다. 네이선 딜(Deal) 하원의원 등 70여 명의 의원들은 작년 말 시민권 부여조건으로 ‘부모 중 최소한 한 명 또는 미혼인 엄마가 미국 시민권·영주권자인 경우와, 체류를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외국인의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합법적 체류자(예컨대 관광객)라고 해도 임시 체류자일 경우엔 계속 체류 의사 등을 확인하는 등 시민권부여 조건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조건을 붙이려면 기본적으로 헌법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의회에서 이런 시민권 부여제한 법을 제정하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즉 이 법은 당연히 헌법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법원으로 가 심사를 받아야 하고, 대법원에서 만일 ‘합헌’으로 판단한다면 직접적으로 헌법을 수정하지 않더라도 제약을 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9명으로 이뤄진 연방대법원의 인적구성이 보수우위로 바뀜에 따라 보수적 사회분위기를 반영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속지주의 원칙의 폐기여부는 기본적으로 이민국가인 미국의 건국정신과 역사적 토대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원래 속지주의 시민권원칙이 수정헌법으로 반영된 것도 흑인 노예해방에서 비롯됐다. 즉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해 속지주의 원칙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작년 말 미 의회에 제출된 시민권부여 제한법률에는 현재까지 의원 83명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할 만큼 지지를 얻고 있다.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이 이제 무분별한 이민자 유입에 담을 쌓으려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모순이지만 그만큼 넘쳐나는 불법이민자들이 사회의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허용범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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