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런던을 대신할 유력한 금융중심지 후보다. 마차가 달리는 암스테르담의 거리 풍경. <사진 : 블룸버그>

“스타트업은 조용히 베를린으로 이사 오세요.”

이달 초 영국 런던 시내에 등장한 광고 트럭에 쓰인 문구다. 중도 우파 성향의 독일 자민당(FDP)이 비용을 댄 이 광고 트럭은 런던 시내 곳곳을 누비며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로 흔들리는 런던 내 글로벌 기업 관계자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

브렉시트가 영국과 유럽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400만명이 넘는 영국 국민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재투표 청원 운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후임으로 확정된 테리사 메이 내무장관이 11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통해 “재투표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으면서 영국의 EU 탈퇴는 기정사실이 됐다. 프랑크푸르트와 파리, 암스테르담, 더블린 등 유럽 주요 도시들은 브렉시트의 불똥이 튀지 않을까 경계하면서도 저마다의 매력을 알리는 데 여념이 없다. 금융과 정보기술(IT) 등 여러 산업 분야에서 EU의 대표주자를 자임해온 런던의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페터 펠트만 프랑크푸르트 시장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프랑크푸르트는 울면서 동시에 웃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업들 탈(脫)런던 움직임

런던의 금융 중심 특별행정구역인 ‘시티오브런던(The City)’에는 5300개 금융회사에 36만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하루 거래되는 외환이 2조달러(2283조원)로, EU 전체 거래의 78%에 이른다. 최근에는 금융과 정보기술(IT)이 결합된 핀테크 산업의 중심지로도 주목받으면서 관련 분야의 창업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영국이 EU를 떠나면 ‘패스포팅(passporting)’ 권리를 상실해 금융기관들이 영국에 남아야 할 이유가 없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패스포팅이란 금융기관이 EU 국가 중 한 곳에서 설립 인가를 받으면 다른 모든 EU 국가에서 별도 인가 없이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탈퇴 이후 관계 설정을 두고 진행될 영국과 EU 국가들과의 무역 협상 타결에 4~9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협상 결과에 따라 영국이 패스포팅 권리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 해도 브렉시트 결정으로 인한 불확실성 확산은 런던에 유럽 지역본부를 둔 기업에 적잖은 부담을 줄 것이 틀림없다. 이 때문에 대형 투자은행을 비롯한 상당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벌써 런던에 있는 인력과 시설을 유럽의 다른 도시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을 제외한 주요 EU 국가들이 브렉시트의 불똥 확산을 경계하면서도 자국 주요 도시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코노미조선>은 브렉시트 이후 런던을 대신할 EU의 글로벌 비즈니스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는 도시 6곳의 장단점을 소개한다.


장점

프랑크푸르트의 인구는 약 70만명으로 런던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유럽중앙은행(ECB)과 독일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 유럽보험 당국이 자리 잡고 있는 등 금융 중심지로서 안정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다. 독일증권거래소와 독일계 투자은행 도이체방크(DB)의 본사도 이곳에 있다. 또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외국 국적일 만큼 국제적인 도시다. 프랑크푸르트는 세계 3대 모터쇼 가운데 하나인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로도 유명한 ̒전시회의 천국̓이기도 하다. 전시장 대관으로만 벌어들이는 매출이 연간 5억4500만유로(약 6000억원)에 달하며 관련 고용 규모도 2만명에 이른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 독일의 금융 중심지면서도 런던과 파리 등 다른 유럽 주요 도시보다 임대료가 저렴해 사무 공간 확보가 쉽다는 것과 유럽의 관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이 있는 교통 요지라는 점도 큰 장점이다. 국내 기업 중에는 LG전자가 얼마 전 영국 런던에 있는 유럽지역대표본부를 프랑크푸르트로 옮기기로 확정하고 이전 작업에 들어갔다. 프랑크푸르트가 LG그룹이 최근 신성장 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자동차부품(VC) 사업의 핵심 지역이라는 점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단점

EU 평균(23%)보다 높은 독일의 법인세율(30%)과 까다로운 노동 관련 규제가 투자자들을 망설이게 한다.

프랑크푸르트는 한때 유럽 외환 거래의 중심지였다.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가 프랑크푸르트가 단일통화 출범의 최대 수혜 도시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런던에 자리를 내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베를린과 뮌헨 등 독일의 다른 주요 도시에 비해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것도 단점이다.


장점

뉴욕타임스(NYT)는 얼마 전 브렉시트 이후 런던을 대신할 가장 유력한 유럽 금융 중심지 후보로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을 꼽았다. 암스테르담이 제공하는 풍부한 문화 혜택과 수준 높은 교육, 영어 사용 환경, 임대 조건, 외국인에게 관대한 분위기 등이 이유였다. 2위는 프랑크푸르트였고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프랑스 파리가 각각 3~5위를 차지했다. 주목할 점은 영어 관련 평가다.

NYT는 이와 관련해 “네덜란드 사람 중에는 영국인보다 영어를 잘하는 이들이 많다”고 평가했다. 네덜란드는 국가별 토플 성적에서 늘 선두를 지킬 정도로 영어에는 도가 텄다. 암스테르담의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분위기는 향신료 무역을 중심으로 한때 북미와 남아프리카, 서인도, 인도네시아에서 식민지를 개척했던 과거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네덜란드가 유럽의 물류허브라는 점도 암스테르담의 큰 매력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과 더불어 유럽의 대표적인 허브공항인 스키폴 공항과 유럽 최대 항만인 로테르담이 모두 네덜란드에 있다. 전기차업체 테슬라와 차량공유업체 우버, 동영상 제공업체 넷플릭스 등 최근 가장 주목받는 업체들의 유럽 본부가 암스테르담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점

네덜란드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 성과급을 연 급여의 20%로 제한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에 대해서 특히 금융업계의 반발이 심하다. 이 때문에 일부 투자은행은 암스테르담 이전을 원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점

프랑스는 매년 8000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전 세계 1위 관광 대국이고, 수도 파리는 그 중심에 있다. 금융산업 경쟁력도 상당하다. 자산 규모 기준 유럽 10대 은행 중 4개가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고, 금융 관련 종사자도 80만명에 달한다. 런던보다 저렴한 임대료와 유럽 전역으로 이어지는 교통망, 우수한 교육 시스템도 장점으로 꼽힌다.

파리시(市) 관계자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부터 런던에 집중된 금융기관들을 파리로 이전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밝혀왔다. 장 루이 미시카 파리부시장은 6월 8일 “레드카펫을 깔고 런던서 오는 금융기관 이전을 환영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도 7월 6일 프랑스의 금융산업 진흥단체인 유로플레이스가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파리를 미래 금융 도시로 만들겠다”며 힘을 실어줬다. 프랑스 정부는 파리에 둥지를 트는 기업 경영진의 소득세를 50% 감면해주고, 고액 재산세 대상에서 해외 자산을 공제하는 기간을 현행 5년에서 8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단점

프랑스는 최근 법인세율을 33%에서 28%로 인하하기로 확정 지었지만 여전히 높아 글로벌 기업 유치에 장애 요인이다.

7월 14일 니스 테러를 포함해 지난 18개월간 3건의 대형 테러 사건이 발생하는 등 테러 공격이 빈번한 것도 프랑스 이전을 고민하는 기업에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유럽의 다른 경쟁도시에 비해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것도 약점이다.


장점

아일랜드의 법인세는 12.5%로 유럽에서 가장 낮다. 연구개발비 및 지적재산권 등에 대한 세제 혜택을 포함하면 아일랜드에 적을 둔 외국 기업은 최대 40%까지 세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아일랜드는 이를 기반으로 페이스북과 구글, 애플, 인텔, 델, 마이크로소프트(MS), 트위터,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IT 기업의 유럽 법인을 유치했다. 이들 기업의 대부분은 아일랜드의 실리콘밸리라고 할 수 있는 더블린 시내 중심가 ‘실리콘 독스(Silicon Docks)’에 자리 잡고 있다.

아일랜드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IT 기업은 1000여개가 넘으며, 고용 인원은 8만명에 이른다. 더블린의 국제금융서비스센터가 발간한 자료를 보면 전 세계 주요 금융기업들의 50% 이상이 이미 더블린에 지사를 두고 있다.

영어가 모국어이면서 영국과 법체계가 같다는 점도 ‘차세대 런던’을 꿈꾸는 더블린의 큰 장점이다.


단점

언어와 법체계뿐 아니라 만성적인 주택 부족과 비싼 임대료도 런던과 비슷하다. 대중교통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장점

베를린은 독일에 투자되는 자금의 3분의 2가 거쳐 가며, 20분마다 스타트업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젊은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독일 최대 도시인 베를린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약 2323달러(CNN 산정)로 서유럽 도시 가운데 비교적 안정된 물가도 장점이다.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영(EY)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베를린은 지난해 21억5000만유로의 벤처자금을 유치해 17억7000만유로를 기록한 런던을 앞질렀다.


단점

같은 독일에 있는 프랑크푸르트와 마찬가지로 높은 법인세율과 까다로운 노동 관련 규제가 두드러진 단점이다.


장점

143개 은행이 본사를 두고 있는 금융 중심지다. 이들 은행의 전체 자산을 합치면 8000억유로(약 1033조6000억원)에 달한다. 또한 전체 인구의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로 국제적이다. 룩셈부르크는 또한 페이팔과 스카이프, 델파이 등 세계 유수 기업들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이들 기업이 룩셈부르크로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보다 세제 혜택 때문이다.


단점

룩셈부르크의 조세회피처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다. 룩셈부르크의 공식적인 법인세율은 20%가 넘는다. 하지만 룩셈부르크 정부는 감세나 공제받을 수 있는 각종 수법에 대해 눈감아주는 방식으로 세 부담을 대폭 낮춰준다. 지난해 이탈리아 자동차업체 피아트가 룩셈부르크로부터 불법 조세 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세제 투명성을 높이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EU 차원에서 탈세에 관한 조사는 EU 집행위원회가 할 수 있다.

그런데 EU 집행위원장은 룩셈부르크 총리 출신 장 클로드 융커다. 그는 “룩셈부르크의 조세체계가 유럽연합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전체 인구가 54만명에 불과할 정도로 시장 규모가 작은 것도 룩셈부르크의 단점이다.


“런던 위상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관측도

런던은 런던대로 금융허브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3대 은행 중 하나인 웰스파고는 7월 18일 런던 금융가에 있는 11층짜리 신축 건물을 유럽 본사로 사용하기 위해 3억파운드(약 4500억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7월 7일에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 JP모건, 스탠다드차타드 등 5개 대형 금융회사가 영국 재무부와 공동으로 “런던이 국제 금융허브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제프리 마운트 에번스 런던금융특구 시장은 7월 9일 영국 핀테크 육성기관 엑센트리(XNTree)의 한국 지사 개소식에 참석해 “런던금융시장은 오랫동안 국제 거래에 특화해 왔다”며 “선박금융이나 보험, 외환 등에서 다른 나라가 따라갈 수 없는 전문성이 있어 앞으로도 관련 분야를 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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