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이타마현의 한 수퍼마켓에 캔맥주가 골판지 상자에 담겨 진열돼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의 한 수퍼마켓에 캔맥주가 골판지 상자에 담겨 진열돼 있다.

소비자가 마트에서 구입하는 상품은 대부분 한 번쯤은 골판지 상자를 거친다. 겨울을 상징하는 과일인 귤은 제주도에서 수확돼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공장으로 이동한 뒤, 골판지 상자에 담겨 배송된다. 소비자들은 전국 각지 시장과 수퍼마켓에서 때로는 박스 그대로, 또는 비닐봉지에 담아 귤을 사 간다.

일본에서 상품 포장이 아닌 다른 용도로 쓰이는 골판지는 전체 생산량의 약 1%에 불과하다. 대부분 상품 포장 용도로 쓰이는 골판지 생산량을 보면 경기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골판지 생산량은 일본은행이 발표하는 실질 소비활동지수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실질 소비활동지수는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2014년 4월 소비세 인상 시기를 제외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난 2009년부터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골판지 생산량, 소비 심리와 비슷한 추세 보여

2017년 일본 골판지 생산량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기 전인 2007년을 웃돌아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가공식품 부문이 골판지 생산 증가를 주도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일본 전국골판지공업조합연합회(全国段ボール工業組合連合會·이하 젠단렌)는 2016년 골판지 생산량이 139억5700만㎡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15년보다 1.6%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2007년의 139억6600만㎡에 육박한 수치다. 젠단렌은 “일본 경제는 3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했고 완만한 회복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민간조사기관의 최근 예측에 따르면 2016년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 정도 성장할 것”이라며 “2016년 골판지 수요는 견조한 증가세를 보였다”라고 했다.

젠단렌에 따르면 골판지 생산량은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증가하다가 2007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2009년 생산량은 126억2600만㎡로 크게 감소했다. 2007년보다 1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이후 매년 생산량이 1% 안팎 다시 늘어나고 있다.

2017년 골판지 생산량에 대해선 2016년보다 1.0% 늘어난 141억㎡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역대 최대였던 2007년의 기록을 뛰어넘는 것이다. 젠단렌은 “2017년 일본 경제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른 영향으로 불투명하지만 완만한 회복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본 경제 동향을 감안해 이같이 예상했다. 2016년 연말 생산량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소비 심리가 호조를 보여 2007년의 역대 최고 기록을 뛰어넘었을 수도 있다. 2016년 10월 생산량은 2015년 10월보다 적었지만, 11월부터 경기 회복세가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오쓰보 기요시(大坪清) 젠단렌 이사장은 “이 기세가 계속된다면 2016년 생산량이 역대 최고치를 웃돌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고 공업신문이 전했다.

골판지 생산량으로 볼 때 일본 경기는 회복되고 있지만, 업종별로는 10년 전과 비교해 다른 점이 나타난다. 과일과 채소를 포장하는 청과물용 골판지 상자 생산량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과일·채소 대신 가공식품 포장 수요 증가

2015년 청과물 포장용 골판지는 11억㎡ 생산돼 2007년(12억㎡)보다 8.4% 줄었다. 생산량 감소는 수요 감소가 아닌 고령화에 따른 공급 감소가 원인이다. 채소를 재배할 농민이 고령화돼 적어지자 공급이 줄었고, 그러자 가격이 올라 판매가 더욱 줄어드는 것이다.

2015년 도쿄 중앙도매시장에서 토란의 도매가격은 전년보다 6% 상승했다. 과거 10년간 가격은 80%나 올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농가에서 토란 수확 작업을 꺼려 공급이 부족해진 데 따른 가격 상승 추세가 현저하다”고 설명했다. 규슈(九州) 농정국 담당자는 “비싼 가격이 계속되면 소비자가 (토란) 구입을 줄일 것으로 우려된다. (농가에) 증산을 요청하고 있지만 고령화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했다. 토란은 나이 든 농부가 재배하기에 힘든 작물이어서 기피하게 되면서 경작 면적이 10년간 20% 줄었다.

토란뿐 아니라 일본 농업 전체에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2015년 주요 채소 경작 면적은 4778㎢로 과거 10년간 10% 줄었다. 도쿄 중앙도매시장의 ‘도쿄청과’ 관계자는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작물을) 증산하는 농가는 얼마 없다”고 했다.

반면 전체 골판지 생산량의 40%쯤을 차지하는 가공식품용 골판지 상자는 매년 생산이 늘어나고 있다. 2015년 생산량은 2007년보다 9.0% 늘었다. 2016년 1월부터 10월까지 누계 생산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했다. 젠단렌은 “소비자들이 절약 생활을 지향하면서 외식을 줄이고 대신 도시락이나 조리된 식품(간편조리식)을 사서 집에서 먹는 경우가 늘었다”라고 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외식산업 시장 규모는 1997년 29조1000억엔에서 2013년 23조9000억엔으로 17.9% 줄었다. 반면 간편조리식 시장 규모는 같은 기간 3조6000억엔에서 6조엔으로 66.7% 증가했다.

통신판매·택배·이사 포장용 골판지 생산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7년 2억4000만㎡에서 2015년 4억5000만㎡로 증가했고, 2016년 1월부터 10월까지 생산량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2.7% 늘었다. 젠단렌은 “인터넷 쇼핑을 중심으로 골판지 상자 생산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가 2015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내 B2C(기업 대 소비자)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2013년 11조7000억엔에서 1년 후인 2014년엔 12조6000억엔으로 7.7% 커졌다. 이후에도 매년 1조~2조엔씩 시장 규모가 커져 2021년엔 25조6000억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