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중국 저장성 이우(義烏)를 출발한 영국 런던행 화물열차의 출정식 모습. <사진 : 트위터 캡쳐>
1월 1일 중국 저장성 이우(義烏)를 출발한 영국 런던행 화물열차의 출정식 모습. <사진 : 트위터 캡쳐>

‘고속철도 세일즈 외교’로 신흥국 시장에서 재미를 본 중국이 이번에는 ‘화물열차 외교’로 서유럽과 관계 다지기에 나섰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월 1일, 컨테이너 88개에 의류와 생활용품 등을 가득 실은 열차 한 대가 중국 남부 저장성(浙江省)의 작은(중국 기준으로) 도시 이우(義烏)를 출발했다. 이우는 중국 최대 경제도시 상하이(上海)에서 약 300㎞ 떨어진 인구 120만명의 도시다. 전 세계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의 절반 이상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열차는 18일 동안 1만2000㎞를 달리며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와 프랑스를 거친 후 유로터널(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해저터널)을 지나 영국의 수도 런던에 도착할 예정이다. 중국과 영국 간의 직통 화물열차 운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과 유럽을 잇는 화물열차는 이미 2010년 운행을 시작했다. 중국 서부 대개발의 핵심 도시 충칭(重慶)과 독일의 서부 도시 뒤스부르크를 연결하는 총연장 1만1179㎞의 ‘위신어우 국제철로’가 그 시작이었다.

이후 허난성(河南省) 정저우(鄭州)에서 독일 함부르크까지 이어지는 1만214㎞ 노선과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에서 폴란드 우치까지 가는 노선 등이 차례로 개통되면서 본격적인 유라시아 철도 운송 시대를 열었다. 런던을 포함해 현재 중국 내 16개 도시와 유럽 15개 도시가 철도로 연결된다.


항공 운송보다 비용 50% 저렴

열차를 이용해 중국에서 유럽으로 화물을 수송할 경우 항공을 이용할 때보다 비용이 50% 정도 저렴하다. 선박을 이용할 때와 비교하면 소요 시간이 절반 정도 단축된다. 하지만 항공 운송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선박을 이용할 때보다 최대 운송량이 100분의 1 정도로 줄어들기 때문에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패션 아이템, 최상급 육류나 농산품 등 이른 시일 안에 주인을 찾아가야 하는 상품이 아니라면 경제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경제성으로만 보자면 중국이 그동안 공을 들여온 고속철 세일즈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국은 2008년 1월 베이징올림픽 직전에야 베이징(北京)~톈진(天津) 구간에서 고속철을 개통한 고속철 후발주자다. 하지만 이후 중국 전역에 고속철을 건설하면서 현재 전 세계 고속철의 60%에 해당하는 1만8000㎞의 고속철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 산하의 언론매체 국제상보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148억8000만위안(약 2조5000억원)의 고속철을 수주했다. 1년 사이에 26%가량 증가한 액수다. 2015년 9월에는 일본을 따돌리고 인도네시아 고속철 사업권을 따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요 2개국(G2)의 한 축인 중국과 세계 5위 경제 대국 영국 간의 화물열차 개통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여파로 두 나라 모두 경제적인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상호 경제 협력의 필요성과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양국 관계는 2015년 3월 영국이 미국의 만류에도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조지 오스본 당시 영국 재무장관은 “설립 단계에서 AIIB에 가입하는 것이 영국과 아시아가 함께 투자하고 커나가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이어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같은 해 10월 중국 국가주석으로서는 10년 만에 영국을 방문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의 표현대로 ‘황금시대’에 접어든 것처럼 보였다. 오스본은 “영국은 서방에서 중국의 최고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지난해 6월 예상을 뒤엎은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로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이 그간 관계 개선을 위해 막대한 공을 들인 ‘유럽 진출의 교두보’ 영국의 EU 탈퇴를 반길 리는 없었다. 중국 최대 부호인 왕젠린(王健林) 완다(萬達)그룹 회장은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국을 방문해 “브렉시트 땐 중국 기업들이 유럽 헤드쿼터를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브렉시트가 영국과 유럽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난해 수백만명의 영국 국민이 브렉시트 국민투표 재투표 청원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지난해 취임 직전 기자회견을 통해 “재투표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으면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기정사실이 됐다.

여기에 더해 메이 총리의 취임으로 영국 내의 대(對)중국 외교 기조에도 변화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경제 이익을 앞세운 캐머런 정부가 중국에 유화적이었던 반면, 안보를 강조하는 메이 총리는 중국 자본의 영국 내 투자를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베이징 남부역에서 출발 준비 중인 고속철의 모습. <사진 : 블룸버그>
중국 베이징 남부역에서 출발 준비 중인 고속철의 모습. <사진 : 블룸버그>

브렉시트 경착륙하면 英 GDP 9.5% 감소

지난해 8월 중국이 참여할 예정이던 영국의 ‘힝클리 포인트 C(HPC)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보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영국 정부 관계자는 “중국 컨소시엄에 군수 관련 업체인 중국핵공업진단공사(CNNC) 개입 정황이 포착됐다”는 이유로 계약을 연기했다. 이에 대해 류샤오밍(劉曉明) 영국주재 중국대사는 “원전 건설사업 연기로 신뢰를 해쳐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고, 결국 영국 정부는 같은 해 9월 뒤늦게 사업 승인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상황 변화 속에서도 두 나라가 서로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적인 이해관계 때문이다. 영국 입장에서는 브렉시트 여파로 예상되는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인구 13억의 소비시장을 보유한 세계 경제의 ‘큰손’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영국의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인 케리 브라운 킹스칼리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최근 기고에서 “(브렉시트 결정으로) 영국의 유럽 내 교역과 경제 협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중국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새로운 시장과 협력을 늘려야 한다”고 썼다.

영국 정부는 이른바 ‘브렉시트 경착륙’ 상황이 발생하면 국내총생산(GDP)이 15년간 9.5% 감소하고 정부의 재정 수입도 연간 660억파운드(약 95조4300억원)씩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브렉시트 경착륙’은 영국이 EU 회원국들과 무역협정을 맺는 대신 일반적인 세계무역기구(WTO) 무역 규정들을 적용해 EU 단일시장과 교역하는 상황을 뜻한다.

무엇보다 본격적인 브렉시트 협상에 돌입하기도 전에 대형 투자은행을 비롯한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런던에 있는 인력과 시설을 유럽 다른 도시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면서 영국 정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런던의 금융 중심 특별행정구역인 ‘시티오브런던(The City)’에는 5300개 금융회사에 36만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하루 거래되는 외환이 2조달러(약 2283조원)로, EU 전체 거래의 78%에 이른다. 최근에는 금융과 정보기술(IT)이 결합된 핀테크 산업의 중심지로도 주목받으면서 관련 분야의 창업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영국이 EU를 떠나면 ‘패스포팅(pa-ssporting)’ 권리를 상실해 금융기관들이 영국에 남아야 할 이유가 없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패스포팅이란 금융기관이 EU 국가 중 한 곳에서 설립 인가를 받으면 다른 모든 EU 국가에서 별도 인가 없이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탈퇴 이후 관계 설정을 두고 진행될 영국과 EU 국가들과의 무역 협상 타결에 4~9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다른 EU 회원국에 사는 영국인이 보건, 교육, 고용 관련 정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권리를 새로 정립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협상 결과에 따라 영국이 패스포팅 권리를 유지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 해도 브렉시트 결정으로 인한 불확실성 확산은 런던에 유럽 지역본부를 둔 기업에 적잖은 부담을 줄 것이 틀림없다.

프랑스와 독일, 아일랜드 등 주요 EU 국가들이 브렉시트의 불똥 확산을 경계하면서도 자국 주요 도시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도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특히 프랑스 파리의 시 정부 관계자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부터 런던에 집중된 금융기관들의 파리 이전·유치 의사를 밝혀왔다. 장 루이 미시카 파리 부시장은 투표를 앞두고 “런던에서 (파리로) 금융기관 이전을 레드카펫을 깔고 환영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어가 모국어이면서 영국과 법체계가 같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12.5%의 법인세율을 앞세워 ‘차세대 런던’을 꿈꾸고 있다. 벤처자금 유치 실적에서 런던에 앞선 독일 베를린과 유럽중앙은행(ECB)과 독일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 유럽보험 당국이 자리잡고 있는 프랑크푸르트도 다크호스다.

기업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영국 정부는 2020년까지 법인세를 현재 20%에서 17%로 낮추기로 했다. 17%의 법인세율은 주요 20개국(G20)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대일로 계획에 영국 끌어들이는 효과

중국 입장에서는 트럼프 취임으로 더욱 강력해질 미국의 견제 속에서 ‘G2’ 위상에 걸맞은 경제·외교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미국의 우방이자 ‘소프트파워 강국’인 영국과 우호 관계 유지가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런던행 화물열차 개통은 시 주석 취임 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온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 계획에 영국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동유럽에 집중됐던 일대일로의 사업 영역을 서유럽으로 본격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2015년 10월 영국 런던 방문 중 강연에서 “중국과 영국은 산업구조가 상호 보완적이고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지대 추진, 상호 투자 확대에 대한 생각이 같다”며 “두 나라가 일대일로의 틀 안에서 협력하면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일대일로는 시 주석이 2013년 9월과 10월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순방 중 처음 언급했다. ‘일대(一帶)’는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 ‘일로(一路)’는 중국에서 동남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뜻한다. 일대일로 선상에 있는 60여개 연선국가의 인구는 약 44억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63%, 경제 규모는 21조달러(약 2경4717조원)로 전 세계의 29%를 차지한다.

트럼프의 취임이 일대일로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트럼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 선언으로 생긴 미국의 영향력 공백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 메우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미국 로펌 인스앤드코의 홍콩 지사장인 국제통상전문가 데이비드 비브스는 “트럼프의 공약들이 실현될 경우 중국이 전략적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라며 “일대일로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우를 떠난 화물열차가 도착하는 곳은 런던 동부의 자치구 바킹 지역이다. 런던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 중 하나이면서 영국 전역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가 유입된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난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탈퇴’ 표가 우세했다. 중국에서 오는 화물열차 운행 횟수가 누적될수록 이 지역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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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사회기반시설 확충을 돕겠다는 취지로 2013년 설립을 제안했다. 최대 지분을 보유한 중국을 비롯해 한국·영국·독일·프랑스 등 총 57개국이 가입했다. 자본금은 1000억달러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 미국과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 간 지역 자유무역협정(FTA)으로 2015년 10월 협상이 타결됐다. 상품 거래, 원산지 규정, 무역 구제조치, 위생검역, 무역 부문의 기술 장벽, 서비스 부문 무역,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및 경쟁정책 등 자유무역협정의 거의 모든 주요 사안이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