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페스케리아에 지어진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현지 근로자가 차량 문을 조립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멕시코 대신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멕시코 페스케리아에 지어진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현지 근로자가 차량 문을 조립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멕시코 대신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오는 20일(현지시각)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멕시코 경제에 허리케인이 다가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유세 때부터 멕시코 출신 이민자를 ‘강간범, 범죄자’로 비하했다.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장벽을 세워 불법이민자를 막고, 건설 비용은 멕시코가 부담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이런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지난 11일(현지시각) 그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고 다시 확인했다.

그의 발언으로 멕시코 경제는 충격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멕시코에 공장을 지으려는 글로벌 기업을 위협해 미국에 투자하게 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멕시코산 제품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에 대한 입장을 그대로 유지했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트럼프가 당선된 후 이달 11일까지 약 두 달간 19% 떨어졌고, 멕시코 주가지수는 6% 하락했다. 알베르토 라모스 골드만삭스 라틴아메리카 리서치 책임자는 멕시코 페소화 환율이 현재의 달러당 21달러에서 25달러로 상승(가치 19% 하락)하면 자금이 멕시코에서 이탈할 것이라면서 “멕시코 경제가 매우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멕시코 페소 가치 급락

트럼프에 대해 멕시코는 대통령과 외무장관이 나뉘어 대응하고 있다.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강경하게 발언하고, 친(親)트럼프 인사인 외무장관은 트럼프를 띄워주는 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11일 미국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열린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멕시코와 협상을 끝낼 때까지 1년 반을 기다릴 수도 있지만, (취임 후) 곧바로 국경장벽 설치를 시작하겠다”라며 “멕시코가 우리에게 비용을 갚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같은 날 열린 외교관 총회에서 “더 안전한 국경을 만들기 위해 투자하겠지만 국경장벽 건설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트럼프의 고집보다 멕시코에 더 위험한 것은 트럼프의 리쇼어링 정책(re-shoring·해외로 나간 기업을 다시 불러들이는 정책)이다. 특히 그의 정책은 미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시장에 제품을 판매하는 외국 기업까지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멕시코에 위협적이다.

포드는 당초 멕시코에 총 16억달러 규모의 소형차 생산 공장을 세우려 했지만 최근 포기했다. 트럼프가 대선 유세 중 포드가 소형차 생산 공장을 모두 멕시코로 옮기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놔둘 수는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포드는 대신 7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미시간주에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차를 생산할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또 트럼프는 취임 후 멕시코에 대해 35%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크라이슬러 최고경영자(CEO)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관세가 도입되면, 멕시코에서 무엇을 생산해도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철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피아트크라이슬러는 미시간주와 오하이오주에 있는 공장을 현대화하는 데 10억달러를 투자하고, 신형 SUV와 픽업트럭을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해온 대형 트럭을 미국에서 생산하겠다고도 했다. 구체적으로 ‘20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트럼프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를 압박하는 데 ‘트위터 정치’를 활용한다. 그는 지난 5일 자신의 트위터에 “도요타가 미국 수출용 코롤라 자동차를 생산하는 새 공장을 멕시코 바하에 건설할 것이라고 했다”며 “어림없는 얘기다. 미국에 공장을 짓거나 많은 국경세를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 회장은 “앞으로 5년간 미국에 100억달러(약 11조8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앞서 3일 트럼프는 “GM이 멕시코에서 만든 ‘쉐보레 크루즈’를 미국 판매점에 보낼 때 세금을 내지 않는다. 미국에서 차를 만들든지 아니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그러자 채 2시간도 지나지 않아 GM은 “쉐보레 크루즈에 대한 소비자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오하이오주 로즈타운 공장과 더불어 멕시코 라모스아리즈페 지역에 있는 생산 시설을 활용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멕시코는 NAFTA 체결 후 미국 시장 수출 시 무관세와 저임금을 앞세워 GM과 포드·크라이슬러(피아트크라이슬러오토모빌스)·폴크스바겐·도요타·닛산·혼다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유치했다. 멕시코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은 340만대 수준으로 세계 7위다. 2015년엔 328억달러(약 38조7000억원) 규모의 차량을 수출했다. 지난해 멕시코 자동차 수출에서 GM·포드·크라이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49%다. 자동차 업체가 멕시코에 공장도 짓지 못하고, 관세를 올려 수출도 어렵게 하면 멕시코 경제엔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니에토 대통령은 “두려움이나 협박으로 멕시코에 대한 투자에 영향을 미치려는 어떠한 시도도 거부한다”며 반발했다.


트럼프 사위와 가까운 인물 외무장관 기용

니에토 대통령의 다른 대응책은 트럼프와 가까운 인사를 중용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4일 루이스 비데가라이 전 재무장관을 외무장관으로 임명하고, 비데가라이가 멕시코와 미국 간 현안인 이민과 무역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니에토 대통령은 “트럼프 정권과 건설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한 대화 촉진을 염두에 둔 인선”이라고 설명했다. 비데가라이는 트럼프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가까운 사이다.

비데가라이는 재무장관이던 지난해 8월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의 멕시코 방문을 주선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멕시코 이민자 비하 발언을 사과하지 않았고, 멕시코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 입장을 유지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를 초청한 것에 대한 여론이 크게 악화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가 4개월 만에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임무를 갖고 다시 복귀했다.

트럼프는 비데가라이가 지난해 재무장관직에서 물러나자 “대단한 사람”이라며 “그가 정부에서 자리를 맡고 있다면 멕시코와 미국은 함께 훌륭한 거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데가라이는 트럼프에 대해 “특별하게 훌륭한 협상가”라고 띄워줬다. 그러나 “멕시코와 미국 간 국경장벽은 멕시코가 비용을 대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트럼프는 미국 내 멕시코 출신 이민자에 대한 송금 규제 공약도 내걸었다. 그는 유세 기간 멕시코 이민자들의 송금을 막겠다고 위협해 멕시코 정부가 국경장벽 설치 비용을 내게 하겠다고 했다.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본국으로 보내는 달러화는 멕시코 경제의 버팀목이다. 송금액은 멕시코의 석유 수출 금액보다 더 많다. 빈곤층이 많은 멕시코에서 가정의 핵심 소득원이 되기도 한다. 멕시코 국민들은 트럼프 당선 후 송금액을 늘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멕시코 중앙은행인 방시코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미국 내 멕시코 이민자의 본국 송금액은 24억달러를 기록해 1년 전보다 25%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