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의 수도 도하의 전통 아라비안 스타일 쇼핑거리. <사진 : 블룸버그>
카타르의 수도 도하의 전통 아라비안 스타일 쇼핑거리. <사진 : 블룸버그>

국제유가 하락으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중동의 큰손’ 카타르가 다시 자산 불리기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 한때 배럴당 30달러 선까지 떨어졌던 국제유가가 50달러 선을 회복하면서 재정 여건이 나아졌다. 카타르는 저유가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에너지 수출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카타르 국부펀드 운용자인 카타르투자청(QIA)은 지난 1월 10일 스위스 광산업체 글렌코어와 합작으로 러시아 최대 에너지기업 로즈네프 지분 19.5%를 인수하기로 합의를 마쳤다. 인수 당시 지분 가치는 7100억루블(약 14조83억원)이었다. 국영 에너지기업인 로즈네프는 러시아 원유 생산량의 40%, 전 세계 원유 산유량의 5%를 담당한다.

지난해 12월 8일에는 중국계 국부 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호주 투자은행 맥쿼리 등과 함께 영국의 전력·가스 공급사인 내셔널그리드 지분 61%를 138억파운드(약 19조9000억원)에 공동 인수하기도 했다. 내셔널그리드는 총연장 13만2000㎞의 가스관을 운영하면서 1100만가구에 가스를 공급한다.

이달 초에는 브라질의 육류가공업체인 BRF글로벌과 합작투자 방식으로 터키 최대 가금류 가공업체 반비트를 약 4억7000만달러(약 55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카타르 국부 펀드 규모는 3350억달러(약 394조원)로 세계 14위 수준이다. 하지만 중국의 500분의 1에 불과한 카타르 인구를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다.

카타르는 면적이 1만1500㎢로 경기도 크기만한 아라비아반도의 소국이다. 인구는 약 264만명으로 대구(250만명)와 비슷한데다 그나마 대부분이 외국인 기술자와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량이 각각 세계 3위, 13위인 자원부국이다.

인구는 적은데 자원이 넘치다 보니 카타르는 별다른 산업 기반 없이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카타르의 지난해 1인당 실질국내총생산(GDP)은 약 13만달러(1억5300만원)로 세계 1위다. 그러나 에너지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높다 보니 장기간 이어진 저유가 기조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카타르의 실질 GDP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한다.

카타르는 지난해 5월 90억달러 규모의 유로본드를 발행했다. 유로본드란 미국 달러나 일본 엔 또는 유로 등 기축통화로 외국에서 발행되는 채권을 말한다. 2014년 이후 시작된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재정난이 심해진데다 2022년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 준비를 위한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사업을 위해 외국 자본이 절실해졌기 때문이었다.

카타르 정부는 수년 전부터 2022년까지 2조달러(약 2242조원)가 투입되는 인프라 사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유가 하락과 주요 석유 수입국인 중국의 경기 하락이 겹치면서 재정이 부족해졌다.

한때 자랑이던 완벽한 복지제도도 재정에 짐이 되기 시작했다. 카타르 국민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주택과 교육, 의료 혜택을 무료로 받는 것은 물론 공무원 등 안정된 직장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힘들고 고된 일은 외국인 노동자의 몫이다.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은 2015년 11월 연설에서 “유가 하락 이후 국민의 책임은 더 커졌다”며 낭비와 사치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이어 긴축의 일환으로 전기와 가스, 수도 등의 요금을 올렸고 지난해 초에는 연료 보조금을 삭감했다.

여기에 더해 일부 정부부처를 합병하면서 신규 공무원 채용을 한때 중단했고, 공무원의 재직 중 유학을 제한하기도 했다. 월드컵 준비와 무관한 건축 사업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런던 히스로공항 지분도 인수

이런 노력에 더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선을 회복하면서 카타르 경제는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맞고 있다. QIA가 최근 몇년간 수집한 다채로운 자산 포트폴리오도 에너지 중심의 단순한 경제구조에서 탈피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QIA는 2011년 프랑스의 명문 프로축구팀 파리 생제르맹을 인수했다. 이듬해에는 런던 히스로공항 지분 20%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12억5000만달러 가치의 중국농업은행 지분 12.99%와 영국 4대 유통기업 중 하나인 세인즈베리 지분 22%(약15억1000만 달러), 미국의 명품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 지분 12.99%(약12억5000만달러)도 보유 중이다.

카타르 경제와 관련해 향후 몇년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키워드는 미국과 월드컵이다. 카타르는 향후 5년간 미국의 각종 인프라 사업 등에 총 350억달러(약 41조1700억원)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카타르와 미국의 교역 규모는 2015년까지 5년간 50% 증가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10월에는 186억달러(약 21조9000억원) 상당의 보잉사 항공기 100대를 주문하면서 두 나라 사이는 더욱 가까워졌다. 이 같은 투자가 트럼프 정권에서 카타르에 어떤 결실로 돌아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2년 11월 21일부터 12월 18일까지 개최될 예정인 카타르 월드컵은 최초의 ‘겨울 월드컵’이다. 카타르 정부는 월드컵 개최가 국가브랜드 제고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다. 이는 국가 이미지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국제노동조합연맹(ITUC)은 2014년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2022년까지 카타르에서 약 4000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월드컵 관련 시설 공사와 관련해 목숨을 잃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수치는 최근 3년간 카타르에서 사망한 네팔과 인도 노동자 사망자 수 추이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

카타르의 외국인 노동자의 상당수는 ‘카팔라 제도’라는 중동 지역 고유의 노동계약 시스템으로 인해 점심시간도 없이 하루 12시간을 일하면서 월 최대 466달러(약 55만원)의 수입으로 생활하는 등 최악의 근무 여건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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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팔라 제도(Kafala system)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 걸프지역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되는 이주노동자 관리제도. 외국인 노동자의 근로비자 발급을 고용주가 보증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자들이 고용주 동의 없이 그만둘 수 없고, 임금체불에 제대로 항의할 수 없어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