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이타마현의 수퍼마켓에서 한 고령의 남성이 맥주를 집어 들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일본에선 청년들이 맥주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겹쳐 맥주 출하량이 12년 연속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사진 : 블룸버그>
일본 사이타마현의 수퍼마켓에서 한 고령의 남성이 맥주를 집어 들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일본에선 청년들이 맥주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겹쳐 맥주 출하량이 12년 연속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사진 : 블룸버그>

“먼저 맥주부터 주세요(토리아에즈 비루).”

일본인들이 술을 마시러 갔을 때 자리에 앉자마자 외치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어떤 메뉴를 주문할지 그때부터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토리아에즈 비루’라는 말이 식당에서 사용하는 관용구가 됐다.

이런 일본인의 맥주 사랑은 옛말이 돼 가고 있다. 맥주 출하량이 해를 거듭해 줄고 있다. 술을 많이 마시는 청년층이 기존 맥주보다 다른 술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맥주 회사는 새로운 술을 개발해 맥주 판매 감소에 대응하고 있다.


12년 연속 맥주 출하량 최저치 경신

지난달 일본 대형 맥주 업체 5개사(기린맥주·아사히맥주·삿포로맥주·산토리·오리온맥주)는 맥주, 발포주, 제3맥주 등을 합친 ‘맥주류’의 2016년 국내 출하량이 전년보다 2.4% 감소한 4억1476만케이스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5개사의 맥주 출하량은 12년 연속으로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맥주 출하량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맥주류’ 3종류 모두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했다. 맥주는 2.0%, 발포주는 6.8%, 제3맥주는 1.2% 줄었다.

일본에서 맥주 소비가 감소하는 한 원인은 인구 감소다. 일본은 2005년부터 인구가 감소했고, 주류를 많이 소비하는 청년층 인구는 더 빠르게 줄고 있다. 일본에서 맥주 출하량은 2000년대 들어 감소하기 시작했다. 맥주류 출하량이 가장 많았던 1994년엔 총 5억7300만케이스를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1994년의 4분의 3 수준으로 위축됐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소비자 취향 변화다. 한 맥주 업체 관계자는 “하이볼이나 츄하이 등의 인기가 높아졌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맥주 기피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이 때문에 해마다 줄어드는 맥주 판매량과 달리 하이볼과 츄하이 등을 캔 용기에 포장한 ‘RTD(레디 투 드링크·Ready To Drink)’ 주류 판매량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산토리가 조사한 RTD 출하량은 2008년부터 매년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2007년 출하량은 1억케이스(250㎖ 캔 24개를 1케이스로 환산)를 밑돌았지만, 2015년엔 약 1억4960만케이스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9% 늘어난 수치다. 산토리 관계자는 RTD가 인기를 끄는 것에 대해 “단맛이 적당해 식사에 어울리는 알코올 음료로 소비자에게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최대 크래프트 맥주 회사 요호브루잉이 생산하는 맥주들(사진 위). 기린맥주는 2014년 요호브루잉의 지분을 30% 이상 인수하고 제휴 관계를 맺었다. 또 기린맥주는 소비자의 맥주 취향 변화에 맞춰 2014년 크래프트 맥주 회사 스프링밸리브루어리를 설립했다. 스프링밸리브루어리의 맥주가 종류별로 잔에 담겨 있다.(사진 아래) <사진 : 블룸버그>
일본 최대 크래프트 맥주 회사 요호브루잉이 생산하는 맥주들(사진 위). 기린맥주는 2014년 요호브루잉의 지분을 30% 이상 인수하고 제휴 관계를 맺었다. 또 기린맥주는 소비자의 맥주 취향 변화에 맞춰 2014년 크래프트 맥주 회사 스프링밸리브루어리를 설립했다. 스프링밸리브루어리의 맥주가 종류별로 잔에 담겨 있다.(사진 아래) <사진 : 블룸버그>

크래프트 맥주도 젊은 층에서 인기

거대 맥주 기업은 맥주 출하량이 구조적으로 감소하자 하이볼·츄하이라는 새로운 주류 판매를 강화하고 있다. 기린맥주는 2001년부터 츄하이 제품 ‘효케쓰(氷結)’를 발매했다. 젊은 층과 여성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츄하이 시장 성장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알코올 도수가 8% 이상인 ‘스트롱계’ 츄하이가 판매 증가를 주도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호로요이’는 산토리 제품이고, 아사히맥주는 ‘가라구치소주하이볼’ 등을 판매 중이다.

‘크래프트 맥주’라는 분야로 진출하기도 한다. 일본 젊은 층 사이에선 대형 맥주 회사 제품이 아닌 소규모 양조장에서 빚은 크래프트 맥주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아직 전체 맥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이지만, 전국 200여곳의 양조장에서 다양한 맥주를 생산 중이다. 기린맥주는 2014년 일본 최대 크래프트 맥주 회사인 요호브루잉 지분을 30% 이상 인수하고 제휴를 맺었고, 또 같은 해 크래프트 맥주 회사 ‘스프링밸리브루어리’를 설립했다. 스프링밸리브루어리는 도쿄와 요코하마, 교토에 전문점을 열었다.

제3맥주 판매를 강화하는 것도 판매 부진 속에서 이익을 내는 방법이다. 제3맥주는 쓴맛이 덜해 소비자 선호도가 높으면서도 세율이 낮아 이익을 내기 쉽다. 아사히맥주의 지난해 맥주 시장점유율은 39.0%로 전년보다 0.8%포인트 상승했다. 제3맥주 ‘클리어아사히’ 판매가 호조를 보인 덕분이다.

다만 최근 일본에서 주세법이 개정돼 상황이 바뀌고 있다. 서로 다른 맥주와 발포주·제3맥주의 세율이 2020년부터 2026년에 걸쳐 단일화된다. 이에 따라 맥아 함량이 높은 ‘맥주’는 가격이 내려 소비가 늘고, 발포주·제3맥주는 가격이 올라 판매가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올해 대형 맥주 업체는 정통 맥주 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아사히맥주는 ‘슈퍼드라이’ 발매 30주년에 맞춰 한정판을 만들었고, 기린맥주는 지역별로 맛이 다른 ‘이치방시보리’를 핵심 상품으로 판매한다. 산토리는 ‘더 프리미엄 몰츠’를 개선하고 판매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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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발포주·제3맥주 한국에서 ‘맥주’라고 부르는 술은 일본에선 주세법상 맥주·발포주·제3맥주로 나뉘고, 이것을 합쳐 ‘맥주류’라고 한다. 세 가지를 나누는 기준은 맥아(겉보리의 싹을 틔운 것) 사용률, 사용 원료다. ‘맥주’는 맥아를 원료 중 3분의 2 이상 사용하고, 부원료는 보리·홉·쌀 등 법령에 정해진 것만 쓴 술이다. 발포주는 맥아 사용률이 3분의 2 미만이고, 제3맥주는 맥아·보리가 아닌 다른 재료를 주원료로 해 빚은 술이다. 주세는 350㎖ 캔맥주 기준으로 ‘맥주’는 77엔, 발포주는 47엔, 제3맥주는 28엔이다. 2026년 10월부터는 전부 54.25엔으로 통일된다.
하이볼·츄하이 하이볼은 위스키에 소다수를 탄 칵테일의 일종이다. 위스키의 향과 맛을 살리면서 알코올 도수를 낮췄고 소다수의 풍미를 더했다. 산토리는 2008년부터 위스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프로모션을 시작했고, 일반 식당에서도 하이볼을 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마케팅을 펼쳤다. 한국에서는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에서 판매하는 주류이지만, 일본에서는 집에서도 캔 형태로 쉽게 마실 수 있다. 츄하이는 ‘소주’와 ‘하이볼’을 합친 단어로, 소주를 베이스로 탄산과 과즙을 섞은 술을 말한다. 10여년 전부터 호로요이 등이 인기를 끌며 츄하이 열풍을 일으켰다. 이슬톡톡, 부라더소다 등 국내 과일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