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이중공업의 포크레인. <사진 : 싼이중공업>
싼이중공업의 포크레인. <사진 : 싼이중공업>

중국 최대 굴삭기업체 싼이(三一)중공업이 불황 속에서 최근 5년 새 시장 지배력을 2배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공정기계공업협회가 최근 내놓은 2월 굴삭기업체 동향에 따르면 중국 굴삭기 시장에서 2011년 토종기업으론 처음 1위에 오른 싼이중공업의 점유율은 5년 사이에 2배 수준인 23%로 높아졌다. 중국 굴삭기업체 수가 110여개에서 20여개로 줄어든 건설장비 시장의 혹한기에 낸 성적표다. 싼이중공업도 매출이 감소세에 있다. 하지만 콘크리트 펌프카 부문에서 세계 시장 1위를 고수하는 등 120여개국에서 영업을 하는 글로벌 건설장비업체로서의 위상은 변함이 없다. 특히 올 2월 중국에서 전년 동기 대비 360% 늘어난 3600대의 굴삭기를 팔아 2011년 2월의 사상 최고치 판매기록을 깼다.

창업자 량원건(梁稳根·61) 회장은 후난성 중난(中南)대에서 재료학으로 고급엔지니어(박사급) 과정을 마친 기술자 출신이다. 국영 기계공장에서 간부 자리까지 오른 그는 개혁·개방 초기 사업의 기회를 보고 1986년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양(羊)·술·유리섬유 등 닥치는 대로 팔았지만 큰돈을 만지지는 못했다. 전공을 살리기로 하고 1989년 6만위안(약 1000만원)을 모아 동료 3명과 함께 용접재료 공장을 세운 게 싼이중공업의 출발이다. 기업·인재·공헌활동 등 3가지에서 일류가 되겠다는 의미에서 회사 이름을 싼이(三一)로 지었다. 2014년엔 미국에서 풍력발전 사업을 추진하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거부당하자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겨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싼이중공업의 성공스토리는 2013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케이스스터디로 소개됐다. 성공요인으로 선진기술 확보, 든든한 꽌시,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와 공격적인 영업 등이 꼽힌다.


량원건 싼이중공업 회장. <사진 : 싼이 중공업>
량원건 싼이중공업 회장. <사진 : 싼이 중공업>

세계 최대 크레인 제작 등 각종 기록 보유

싼이중공업은 세계 기록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2002년 홍콩 국제금융센터 건설 때 406m 높이로 콘크리트를 올려보내 세계 기록을 세운 데 이어 2007년과 2014년엔 각각 492m와 620m 높이로 세계 기록을 잇따라 경신했다. 2011년 전체 팔 길이가 86m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긴 펌프카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3600t급 크롤러 크레인도 만들었다. 2009년엔 중국에서 처음으로 하이브리드 굴삭기를 개발했다.

매출의 5~7%를 연구·개발(R&D) 비용으로 투자하는 기술혁신 중시 전략 덕분이다. ‘100대 글로벌 혁신기업(포브스)’ ‘중국 최고 혁신기업(포천)’이란 평가를 받는다. 2006년 인도를 시작으로 미국·독일·브라질에 R&D 생산기지를 세워 현지에 적합한 건설장비 개발로 승부를 걸었다. 2012년엔 독일 유명 콘크리트 펌프카 업체인 푸츠마이스터를 인수했다. 싼이중공업은 일본 고마쓰 퇴임 임원을 영입하는 등 해외 인재 확보에도 열심이다. 특허만 7000여건에 이른다.

2012년 제18차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중국 재계에선 량 회장이 당 중앙위원에 오를 것이라는 설이 돌았다. 200여명에 이르는 당 중앙위원은 중국을 이끄는 지도부다. 2011년 중국 최고 부자(후룬리포트 기준)에 올랐던 그가 1호 민영기업인 중앙위원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올 가을 제19차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또다시 그의 발탁설이 나온다. 2004년에 공산당에 가입한 늦깎이 공산당원이지만 전인대(국회) 대표에 이어 당 대표를 겸하기도 했다. 간부들을 아침마다 국기 게양식에 참가시키고, 사내 혁명가요 경연대회까지 여는 그가 내건 구호는 ‘자강불식 산업보국(自彊不息産業報國∙스스로 쉬지 않고 힘써 산업으로 나라에 보답한다)’이다. 싼이중공업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 지도부의 단골 시찰기업이 된 배경이다. 중국 국유 건설업체들이 싼이중공업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 간부들과의 꽌시가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량 회장의 외아들 량예중(梁冶中) 부총재는 시 주석의 외동딸 시밍쩌(習明澤)와 사귀고 있다는 설도 있다.


선수금 안 받는 공격적 영업으로 고객 확보

싼이중공업은 굴삭기 영업 초기 선수금도 받지 않는 공격영업으로 일본과 한국 기업의 고객을 빼앗아왔다. 2003년 상하이증시에서 조달한 자금이 실탄이 됐다. 2011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글로벌 시가총액 500대 기업에 중국 기계장비업체로는 유일하게 꼽혔다. 지난해 12월 26일엔 싼이중공업이 계열사 등을 통해 30% 지분을 확보한 민영은행 싼샹(三湘)은행이 문을 열었다. 또 다른 실탄 창구를 확보한 것이다. 고객사들로선 저렴하게 장비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시장에나 있던 AS센터를 2006년 처음 도입해 14개 성급 건설장비 AS센터를 운영한 것도 고객만족도를 높였다.


Plus Point

두산인프라코어·현대重 동반 추락 뒤 엇갈린 운명

2000년대 초 중국 굴삭기 시장에서 1·2위는 늘 한국 기업 차지였다.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중공업이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중국공정기계공업협회가 최근 발표한 2월 실적동향을 보면 두산과 현대의 순위는 5위와 7위로 밀렸다. 토종기업의 약진 탓이 크다. 1위 싼이중공업에 이어 3위에 오른 쉬공(徐工)은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에 기반을 둔 중국 국유기업이다. 100m 높이로 올라갈 수 있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소방차를 제작하는 등 기술력 제고로 외자 주도 건설장비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왔다.

미국의 캐터필러(2위)나 일본의 고마쓰(4위)는 베이징올림픽이 열린 2008년 전후까지만 해도 중국 굴삭기 시장에서 두산과 현대 아래에 있던 기업들이었지만 지금은 상위에 있다. 캐터필러의 경우 고급형만 고집하다가 2010년부터 중국형 소형 장비까지 개발하는 등 점유율 제고 전략로 돌아선 게 주효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15%에 이르던 점유율이 반토막 날 만큼 위축됐지만, 최근 8%대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 잘나갈 때는 산둥성(山東省) 옌타이(煙臺)의 중국법인을 상장시킨다는 설도 돌긴 했지만 지금은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굴삭기가 단순한 굴착용이 아니고 땅을 다지는 등 다용도로 쓰이는 현실을 감안해 중국형 개발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중국 굴삭기 시장에서 점유율 3%대에 머무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 굴삭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주력이 아닌 탓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에서는 작년 하반기 인프라 투자 확대에다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실크로드) 전략 가속화로 5년간의 혹한기가 끝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실제 올들어 2월까지 중국에서 팔린 굴삭기는 1만9078대로 전년 동기 대비 188.9% 증가했다. 증가율은 2002년 이후 최고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