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인피니언의 생산 공장에서 직원이 반도체 기판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해 2월 인피니언의 생산 공장에서 직원이 반도체 기판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인피니언 테크놀로지(Infineon Technologies·이하 인피니언)는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가 추산한 자료 기준으로 지난해 반도체 매출액 세계 12위를 기록한 기업이다. 1999년 지멘스의 반도체 부문이 독립하면서 설립됐다.

인피니언은 출범 당시 D램(DRAM) 등 메모리 반도체부터 차량용 반도체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갖고 있는 종합 반도체 기업이었다. 지금은 차량용 반도체, 파워(전력용) 반도체, 칩카드(신용카드 등에 들어가는 IC 칩)와 보안 등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선택과 집중으로 파산 위기 극복

인피니언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포기하고 비메모리 반도체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인피니언은 비메모리 반도체와 특성이 다른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2006년 분사해 키몬다(Qimonda)라는 자회사를 만들었다.

키몬다는 2009년 파산했다. 인피니언도 같은 해 매출액이 2006년의 4분의 1로 격감했고, 6억7000만유로(약 8500억원)의 순손실을 내며 위기에 몰렸다. 인피니언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고 다른 회사와 차별화하기도 어려운 무선 솔루션 사업을 인텔에 2011년 매각했다.

인피니언은 사업 분야를 차량용 반도체와 파워 반도체, 칩카드·보안에 집중했다. 2016회계연도(2015년 10월~2016년 9월) 기준으로 전체 매출액 중 차량용 반도체는 41%, 파워 반도체는 48%, 칩카드는 11%를 차지하고 있다. 인피니언은 2013년까지 실적이 위태로웠지만, 자동차에 더 많은 전자 부품이 투입되고 저전력 기기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2014년부터 회복됐다. 2016년 인피니언의 매출액은 64억7300만유로(약 8조2058억원)로 전년보다 12%, 당기순이익은 7억4300만유로(약 9419억원)로 전년보다 17% 증가했다.

인피니언은 독일의 국가적 프로젝트 ‘인더스트리 4.0’에 중요한 기업이다. 인더스트리 4.0의 핵심인 사물인터넷(IoT)이 확산되면 자동화가 진전되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기기의 보안이 중요해진다. 인피니언의 반도체가 더 많이 필요해지게 된다.


진입 장벽 높은 전력용 반도체 1위

파워 반도체는 교류를 직류로 전환하고, 전압을 낮추는 등 전기를 제어하고 공급하는 데 사용된다. 풍력·태양광 발전, 송전, 전력 소비(철도, 자동차, 항공기, 건설기기, 공장 기계, 가전, 개인용 컴퓨터 등)까지 전력이 생산되고 쓰이는 모든 분야에 들어가는 부품이다. 파워 반도체는 전력 소비량을 줄인 제품이 확산되면서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파워 반도체 시장에서 인피니언의 점유율은 18.7%로 1위다. 2위인 미쓰비시전기(6.3%)와 차이가 크다.

파워 반도체는 진입장벽이 높다. 메모리 반도체나 마이크로프로세서는 대량생산하지만, 파워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한다. 또 고객과 충분히 사전 조율을 가진 뒤 제품을 개발한다. 설계에선 차별화하기 어렵지만, 재료를 다루는 노하우나 생산 기술이 경쟁력을 결정한다. 인피니언은 웨이퍼(반도체 기판) 크기를 넓혀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도 전망이 좋다. 차량용 반도체는 자동차 업체, 부품 업체와 공동 개발이 중요하다. 또 안전성, 내구성, 성능 등 고객의 요구 수준이 매우 높아 신규 진입이 어렵다. 2015년 네덜란드의 NXP(옛 필립스 반도체 부문)가 미국의 프리스케일(옛 모토롤라 반도체 부문)을 118억달러(약 13조3000억원)에 인수하며 1위로 뛰어올랐다. 일본 르네사스가 구조조정을 하며 주춤한 틈을 타고 인피니언이 치고 올라왔다. IHS마르키트의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NXP(14.2%)가 1위, 인피니언(10.4%)이 2위, 르네사스(10.3%)가 3위를 기록했다.

인피니언은 작년 10월 자율주행차에서 눈 역할을 하는 ‘라이더(LiDAR) 센서’를 만드는 네덜란드 기업 이노루체BV를 인수해 경쟁력을 높였다.


Plus Point

거대 기업만 살아 남는 반도체 업계

2015년 이후 세계 반도체 업계에선 규모가 큰 인수·합병(M&A)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싱가포르 반도체 업체 아바고 테크놀로지는 미국 브로드컴을 370억달러에 인수했다.

인텔은 프로그래머블반도체(FPGA) 전문 기업 알텔라를 인수했다. 저비용으로 전력 소비량이 적은 반도체를 다품종 소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이다.

지난해 7월 소프트뱅크는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을 3조3000억엔에 인수한다고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앞으로 반도체 시장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보이는 차량용 반도체에도 여러 기업이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퀄컴은 470억달러에 NXP를 인수했다. 반도체 기업 M&A 중 역대 최고액이다. 올해는 인텔이 자율주행차 화상처리 기술을 가진 이스라엘 모빌아이를 150억달러에 인수했다. 반도체 시장은 상위 20개 기업이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30%를 2000개 반도체 기업이 나눠 갖고 있다. 반도체 시장은 각 분야별로 점유율 상위 업체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