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위치한 브로드컴 본사.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위치한 브로드컴 본사. <사진 : 블룸버그>

브로드컴은 2016년 기준으로 세계 반도체 기업 중 매출액 기준으로 인텔, 삼성전자, 퀄컴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2003년보다 약 10배 늘었다.

브로드컴이 만드는 제품은 애플의 아이폰, 휴렛팩커드(HP)의 서버 등 광범위한 분야의 통신·네트워크 기기에 탑재되고 있다. 브로드컴은 특정 용도 반도체(ASSP·특정 분야를 대상으로 기능을 특화한 범용 고밀도 집적회로)에서 세계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다. 유·무선 LAN에 필요한 칩 등에서도 점유율이 높다. 제품은 일부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나머지는 TSMC 등에 위탁해 생산한다.

브로드컴은 50여개 회사를 인수·합병(M&A)하며 규모를 키웠다. 통신·네트워크 분야에서 기술이 뛰어나거나 전망이 우수한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을 인수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인수 후 브로드컴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중복 사업은 신속히 매각했다. 자체적인 기술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브로드컴의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인텔, 퀄컴에 이어 세계 3위다.


싱가포르 아바고가 지난해 370억달러에 인수

브로드컴은 1991년 UCLA 교수로 재직 중이던 헨리 사무엘리와 제자 헨리 니콜라스가 각자 5000달러씩 1만달러를 투자해 공동 창립했다. 이 브로드컴을 지난해 5월 싱가포르의 반도체 기업 아바고 테크놀로지스(이하 아바고)가 370억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반도체 기업 M&A 중 역대 최고액이었다. 매출액은 브로드컴이 아바고보다 더 많았다. 아바고는 인수 후 새로운 사명을 인수한 기업의 이름인 ‘브로드컴’으로 변경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브로드컴을 포함해 최근 몇 년간 대형 M&A가 계속되고 있다. M&A 이유 중 하나는 반도체 공정 미세화 주기가 계속 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를 더 가늘게 그리는 능력이 예전보다 쉽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회로 선폭이 가늘수록 소모하는 전력량이 적고 반도체 칩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결국 공정 미세화 속도가 떨어지면 반도체가 탑재되는 완성품의 성능 향상 속도가 과거보다 천천히 진행된다. 이 때문에 반도체 업체의 경쟁력은 점점 회로 미세화에서 회로 설계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아바고가 브로드컴을 인수한 것은 회로 설계를 위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

새롭게 탄생한 브로드컴의 2016년도(2015년 11월~2016년 10월) 매출액을 보면 유선 인프라(셋톱박스, 케이블 모뎀, 스위치 등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50%, 무선통신(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반도체, 와이파이 칩셋 등)이 28%, 기업 대상 스토리지(서버 접속용 반도체 등)가 17%, 기타(LED 등)가 5%를 차지한다. 지난해엔 인수 후 구조조정 비용을 감안해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상반기(2016년 11월~2017년 4월)에는 흑자로 전환했다. 인수 관련 비용이 아직 남아 있어 영업이익률이 12% 수준이지만, 장기적으로는 4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브로드컴은 진입 장벽이 높은 틈새 시장에서 지배력이 높다. 또 여러 기업을 인수해 시장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가격 경쟁이 치열하고 부침이 심하다. 그러나 브로드컴은 아날로그 반도체(빛이나 소리 등을 1과 0으로 구성된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반도체)나 믹스드 시그널(Mixed-Signal·고성능 혼합신호) 반도체(디지털 회로와 아날로그 회로를 모두 탑재한 집적회로)에서 경쟁력이 뛰어나다.


수요 일정하고 가격 안정적인 반도체 생산

메모리 반도체보다 설계 난이도가 높고, 독자적인 원료나 생산 방법을 갖고 있다. 또 용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수요 증감이 비교적 적다. 소비자들이 다른 제품으로 교체할 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제품 수명이 길고, 이에 따라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통신·네트워크용 반도체는 진입 장벽이 높다. 설계 구조 설정 주도권은 반도체 기업이 아닌 고객사에 있다. 오랜 기간 제휴를 통해 공동 개발하고 폭넓은 제품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HP·애플·화웨이·삼성전자·IBM·지멘스 등 전 세계 주요 전자업체가 브로드컴고객이다.

브로드컴의 장기적 목표는 매출액 연평균 5% 증가, 영업이익률 45%다. 지난해 기준으로 인텔의 영업이익률은 22%, 퀄컴은 28%다. 브로드컴의 목표가 매우 높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력이 뛰어난 여러 제품을 보유하고 있고 고객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M&A로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있어 지나치게 높은 목표는 아니다.


Plus Point

말레이시아 출신 CEO 호크 탄

브로드컴을 인수한 아바고는 원래 HP에서 출발했다. HP는 1999년 컴퓨터 이외의 부문을 분리해서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를 설립했고, 다시 2005년 반도체 부문을 분리해 아바고가 탄생했다. 아바고에 투자하고 있는 사모펀드 실버레이크파트너스는 호크 탄 CEO를 영입했다.

탄 CEO는 말레이시아 출생으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나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GM과 펩시코를 거쳐 반도체 회사 ICS의 CEO를 지냈다. 그는 실버레이크와 손잡고 대형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브로드컴을 인수한 후인 지금까지 CEO를 맡고 있다. 스스로를 “반도체 전문가는 아니지만, 돈을 버는 능력은 뛰어나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