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기 싫다는 사람이 있을까? 지난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주택담보대출은 세상이 얼마나 ‘부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문제는 소비에 대한 분명한 철학 없이 돈을 벌기에만 급급한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런 경우 설령 부자가 되더라도 시류에 휩쓸려 애써 번 돈을 낭비하기 십상이다. 벌기는 어려워도 잃는 건 순간이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세계적인 거부 중에는 의외로 검소하고 소탈한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좋은 투자 기회가 있거나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할 경우 한 번에 수백억~수천억원의 지출도 마다하지 않지만, 필요하지 않은 곳에는 한 푼도 쓰지 않는 식이다. 10조원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도 매일 샌드위치 도시락을 직접 싸 들고 출근하는 사람도 있고, 수십조원 규모의 자산가인데도 몇십 년째 같은 집에 사는 이도 있다.
2018년 새해에 부자가 되기를 소망하는 독자들을 위해 억만장자 5인의 ‘짠내 나는’ 재산 유지 비법을 모아봤다. 재산은 블룸버그(12월 28일 기준) 추정 금액이다.
워런 버핏(재산: 855억달러)
90조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60년 전 3만1500달러(약 3400만원)에 구매한 자택에서 한 해의 절반 이상을 머문다.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있는 그의 집은 평범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 면적이 약 541.6m²(약 164평)로 주변 집들보다 크다는 점을 제외하면 특별할 것이 없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주택이다. 담도 없다(대신 경비원 두 명이 지키고 있다). 더구나 미국인들이 선호하지 않는 도로 옆에 위치해 비슷한 조건의 주변 집들보다 가격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택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까지는 그의 ‘애마’인 2014년형 포드 캐딜락 XTS로 이동한다. 출고 당시 신차(표준형) 가격이 약 4만5000달러(약 4900만원)였다. 그는 2014년 7월 해당 차량을 구매하면서 앞서 몰던 2006년형 캐딜락 DTS를 중고로 처분했다. 둘 다 ‘억만장자’ 하면 떠오르는 한 대에 수억원짜리 ‘수퍼카’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차를 바꾼 이유도 “차가 오래돼서 창피하다”는 딸 수지의 불평 때문이었다.
아침 식사는 출근길에 맥도널드에 들러 해결한다. 기분에 따라 세 가지 ‘모닝 세트’ 중 하나를 고르는데, 베이컨과 달걀·비스킷이 포함된 가장 비싼 메뉴도 3달러17센트(약 3400원)에 불과하다. 그는 지난해 미국 케이블 채널 HBO와의 인터뷰에서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는 소시지 패티 두 장이 들어간 2달러61센트짜리 아침 메뉴를 시킨다”고 말했다.
버핏 회장은 2014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삶의 질과 재산의 관계에 대한 그의 소신을 피력했다. 당시 그는 “내가 집을 여섯 채, 여덟 채나 가지고 있다면 지금처럼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뭔가 더 소유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잉바르 캄프라드(재산: 524억달러)
스웨덴의 ‘가구 공룡’ 이케아 창업자인 잉바르 캄프라드는 패스트 패션(SPA) 브랜드 ‘자라’로 유명한 스페인 인디텍스그룹의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에 이은 유럽 2위의 부자다. 하지만 마른 수건도 짜고 또 짜는 ‘자린고비’ 정신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다. 적어도 억만장자 중에는 적수가 없다. 스웨덴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난 캄프라드는 풍족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다 보니 근검절약이 몸에 뱄고, 생활력도 강해졌다.
그는 2008년 언론 인터뷰에서 “네덜란드에서 22유로(약 2만8000원)를 내고 머리를 깎았다가 비싸서 후회했다”면서 “보통 개발도상국에 출장 갔을 때 머리를 자른다”고 말했다. 지난해 스웨덴 TV4 채널 인터뷰에서는 “입고 다니는 옷은 모두 벼룩시장에서 산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올해 91세인 캄프라드는 1986년 그룹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현직에 있을 당시에도 돈 쓰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경영자로 악명을 떨쳤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근했고, 주말에도 스웨덴산 낡은 볼보 승용차를 몰았다. 해외 출장도 이코노미석만 이용했고, 호텔 객실에 비치된 유료 생수가 비싸다며 주변 편의점에서 물을 사다 마셨다. 티백은 여러 번 우려 마시고, 일회용 접시도 씻어서 다시 사용한다.
그의 검소한 생활은 이케아 경영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직원들이 출장 시 400㎞ 이내 거리는 비행기를 이용할 수 없도록 했고, 이면지 활용을 일상화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절약 정신이 지나쳐 세금 역시 한 푼이라도 줄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스웨덴의 높은 세율을 피해 한때 덴마크로 이주했다가 다시 스위스로 거처를 옮겼고, 2014년 스웨덴으로 돌아왔다. 또 유럽의 조세 회피처로 악명 높은 리히텐슈타인에 재단을 세워 탈세 의혹을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캄프라드의 ‘자린고비 정신’이 오늘날의 이케아를 키운 원동력이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저서 ‘어느 가구 상인의 유언장’에서 “값비싼 가구를 설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디자이너로서 정말 뛰어난 능력은 기능성과 세련미를 갖추고 있으면서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가구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 저커버그(재산: 732억달러)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면 과시형 소비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월간 이용자가 20억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왕국’의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는 예외다. 30대 초반에 78조원의 엄청난 재산을 거머쥐었지만 청바지와 회색 티셔츠, 진회색 후드 티로 대표되는 그의 ‘싼 티 나는’ 일상 패션에는 큰 변화가 없다.
그는 2016년 1월 큰딸 맥스를 위한 두 달간의 육아휴직에서 복귀하면서 연회색 반소매 티셔츠 9벌과 진회색 후드 티 6벌이 걸려 있는 옷장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복귀 첫날인데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농담 섞인 멘트도 함께 올렸다.
그는 2014년에 진행된 페이스북 사용자들과의 온라인 질의응답 행사에서 ‘매일 똑같은 셔츠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에 최고의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보유 차량도 폴크스바겐 골프GTI, 아큐라 TSX 등 실용적인 중·소형차가 주를 이룬다. 특히 일본 혼다 아큐라의 검은색 TSX를 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 바 있다. 아큐라 TSX는 판매 부진으로 2014년 미국 내 판매가 중단됐다. 차량 가격은 약 3만달러다. 폴크스바겐의 소형 해치백인 골프GTI의 가격도 비슷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아큐라 TSX를 타는 이유에 대해 “안전하고 편안하다. 결정적으로 호사스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14년에는 기본 찻값만 14억원에 달하는 이탈리아의 수제 수퍼카 제조 업체 파가니의 ‘와이라(Huayra)’ 모델을 주문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집에는 적잖이 돈을 쓰는 편이지만, 재산 규모와 실리콘밸리의 살인적인 물가 그리고 어린 자녀들과 과거 스토킹에 시달렸던 트라우마 등을 고려하면 지나치지 않다는 평가다.
저커버그는 2011년 실리콘밸리 팰러앨토의 고급 주택가인 크레슨트파크 소재 저택을 700만달러(약 75억원)에 사들이며 ‘월세살이’에서 탈출했다. 그는 이전 7년 동안 2002년 지어진 방 4개에 화장실 3개 딸린 243.4㎡ 면적의 집을 임대해 생활해 왔다.
2013년 초에는 ‘출퇴근용’으로 샌프란시스코 시내 돌로리스 하이츠의 4층짜리 주택을 1000만달러에 추가로 사들였다. 같은 해 9월에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팰러앨토 집 주위의 주택 세 채를 사들이기도 했다.
아짐 프렘지(재산: 175억달러)
아짐 프렘지 인도 위프로 테크놀로지스 회장은 ‘인도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물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의장과 마찬가지로 프렘지도 소프트웨어 산업을 기반으로 기업을 일으켰다. 게이츠는 하버드대를 중퇴했고, 프렘지는 스탠퍼드대를 중퇴했다. 스탠퍼드대 유학 중이던 1966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급거 귀국해 부친이 운영하던 식용유 회사인 위프로를 넘겨받은 것. 매출 150만달러의 작은 식용유 회사였던 위프로는 매출 77억달러(2015년 기준), 순익 14억달러, 직원 수 17만여 명의 세계적인 IT 대기업으로 변모했다.
프렘지는 인도인으로는 최초로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2010년 만든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가입했다. 기빙 플레지는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취지의 억만장자 상대 기부 캠페인이다.
프렘지 회장은 소문난 구두쇠이기도 하다. 그가 지금껏 몰고 다닌 차들은 포드 에스코트, 도요타 코롤라, 폴크스바겐 스코다 로라 등 소형차 일색이다. 해외 출장 갈 때 비행기는 이코노미석을, 숙소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한다. 아들 결혼식 피로연에 일회용 종이 접시를 사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인도의 많은 대기업과 달리 정부에 뇌물이나 정치 자금을 일절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렘지 회장은 “성공은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기에 성공할수록 사회에 대해 고마움과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찰리 어건(재산: 157억달러)
미국 위성방송 사업자 디시 네트워크(DISH Network)의 공동 창업자인 찰리 어건은 디시의 본사와 가까운 콜로라도주 덴버의 주택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다섯 자녀를 키웠다. 그는 거의 언제나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게토레이’와 함께 챙겨 출근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출장을 함께 떠난 직원들이 가급적 숙소 방을 함께 쓰도록 한 회사 규칙을 앞장서 지키는가 하면, 사무실의 가구도 중고품을 선호한다.
그는 재택 근무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 번은 회의 중에 눈이 많이 와서 직원들이 다음 날 출근 못 할 것을 걱정하면서 회사 근처 호텔에 묵을 것을 권하기도 했다. 그런데 숙박비는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근검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밴 이유에 대해 “대공황 시기에 성장한 어머니 덕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빡빡하게 회사를 운영하는 데다 불같은 성격 때문에 직원들의 평판은 그리 좋지 않다. 직원들 식비 지출에 일일이 관여하기도 했고, 출퇴근 시간 체크를 위한 지문 등록 시스템을 도입했다가 직원들의 반대로 철회한 적도 있다.
디시 네트워크는 2014년 출범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슬링TV’를 통해 ESPN, CNN, 디즈니 등 다양한 채널을 제공하고 있다. 어건은 2013년 30년 넘게 유지해온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 회장 직함만 유지하고 있다.
검소함으로 일군 현대 왕국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자 중 검소함으로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2001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청운동 자택의 방은 33㎡(10평) 남짓한 규모에 바닥엔 흰 광목이 깔려 있었고 침대와 마사지 등의 치료받을 수 있는 간이침대, TV, 책장, 책상, 가습기 두 대와 온·냉풍기 두 대가 전부였다.
TV는 오래된 금성사(현 LG전자) 제품이었고, 책장도 모서리가 닳을 정도로 수십 년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당시 비서실 관계자는 “명예회장이 평소 백화점 등에서는 팔지 않는 두꺼운 양말만 신었기 때문에 항상 남대문에 가서 양말을 사와야 했다”고 전했다.
정 명예회장이 생전 울산을 방문할 때마다 숙소로 사용했던 현대중공업 영빈관 3층 그의 방에는 양말과 장갑 2켤레, 손수건 3장, 겨울용 속옷 3벌, 트레이닝복 1벌, 오래된 운동화와 세 번 이상 밑창을 바꾼 구두 1켤레가 침대 위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이와 함께 사용한 지 10여 년이 넘은 17인치 소형 TV와 소형 냉장고, 팔걸이가 해진 1인용 소파 4개가 정 명예회장의 검소했던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재무부 장관과 무역협회 회장을 지낸 고(故) 남덕우 전 국무총리는 생전 인터뷰에서 “정 명예회장이 골프를 칠 때 뒷부분을 재봉틀로 누빈 바지를 입은 것을 보고 놀랐다”며 “오른손 장갑을 왼손에 끼고 있어 물어보니 왼손 장갑이 없어졌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고(故) 조경희 전 정무2장관도 “유명 연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음식이 없어지지 않자 맛있고 비싼 생선인데 다 드시라며 청소하듯 드셨다”며 “근검절약하는 정 명예회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