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복과 위생모를 착용한 직원들이 스카사 공장에서 참치 가공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조귀동 기자
위생복과 위생모를 착용한 직원들이 스카사 공장에서 참치 가공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조귀동 기자

아프리카 서북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는 항구도시다. 분주히 오가는 어선들 사이로 드러난 다카르항(港) 10번 부두. ‘ㄷ’ 자 형태로 꺾인 부두의 한 면을 통째로 차지한 주황색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동원그룹이 2011년 인수한 세네갈 참치 가공 회사 ‘스카사(S.C.A SA)’다.

스카사 공장 안에선 흰색 작업복을 입고 위생모를 쓴 여성들이 4명씩 한 조를 이뤄 참치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그들은 칼을 쥐고 손을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낯선 동양인을 보고 활짝 웃었다. 이종오 스카사 대표가 스무 살 전후 직원 한 명을 소개하면서 “작년에 시골에서 상경해 입사한 직원”이라며 “삶은 참치에서 살을 발라내는 스키닝(skinning) 공정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직원”이라고 말했다. 공장 출입구에는 각 직원의 일별, 주별 실적이 0.1㎏ 단위로 적혀 있었다.

여기서 발라낸 참치살은 그다음 공정으로 보내져 해바라기씨유나 허브·마늘 소스 등과 함께 비닐팩(파우치)에 담긴다. 녹색 작업복을 입고 위생모를 쓰거나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직원들이 파우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테두리에 불순물이 묻지 않게 참치와 소스를 깔끔하게 집어넣는 공정은 기계화하기 어려워 사람 손에 의존해야 한다”며 “실수가 없으면서도 정확하고 빠르게 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인수 후 첫 흑자 기록

스카사의 주력 분야는 동원의 미국 자회사 스타키스트의 참치 파우치 제품을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원래 참치캔을 주로 생산했으나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으로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자 부가가치가 높은 참치 파우치 위주로 공정을 바꿨다. 참치 파우치는 캔 형태 제품과 달리 소스를 넣는다든지 다양한 형태로 추가 가공할 수 있다. 소비시장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이다. 스카사의 파우치 제품은 75g 정도로 작게 포장된 것으로 미국 시장용이다.

스카사는 지난 1분기에 매출 860만유로(110억원), 영업이익 80만유로(10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2011년 11월 인수 이후 첫 흑자 전환이다. 올해 예상 매출은 4360만유로(560억원)로 지난해(1180만유로)의 네 배 수준이다. 주문이 밀리면서 현재 600명인 직원을 연말까지 1000명 수준으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세네갈 기업으로는 드물게 2교대 방식으로, 야간 작업도 도입했다.

스카사는 2016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동원그룹 내에서 골칫거리였다. 동원은 유럽 시장 판매를 염두에 두고 코트디부아르, 가나 등 아프리카 지역 참치 가공 공장 인수를 검토하다가 세네갈 정부의 적극적인 구애에 2011년 스카사를 인수했다. 2013년 10월에는 2600만유로(340억원)를 투자해 대규모 공장도 지었다. 이에 앞서 동원은 2008년 미국 참치 회사 스타키스트를 인수하면서 미국령 사모아와 에콰도르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신흥국 공장 운영에는 나름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세네갈 공장은 에콰도르 공장과 달리 부진을 면치 못했다.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세네갈의 강성 노조는 급여 인상 등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렇다고 생산성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스카사의 생산성은 한국의 24%, 에콰도르의 44%에 불과했다. 이렇다 보니 참치 가공 품질이 낮아 바이어들이 떠나갔고, 매출이 줄면서 공장 운영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정시 출근이 지켜지지 않고 무단결근도 빈번한 상황에서 품질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급기야 동원그룹은 2016년 여름, 세네갈 철수를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동원그룹은 고심 끝에 세네갈 사업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16년 스카사 공장의 문을 6개월 정도 닫고 공정, 품질 관리, 노사 관계 등을 원점에서 다시 구축했다. 동원 창원 공장뿐 아니라 미국 스타키스트의 전문가들을 파견해 공정 및 품질 관리 개선에 나섰다. 그해 8월에는 이종오 전 삼성전자 동아프리카 지사장을 대표로 영입했다. 이 대표는 1996년 지역 전문가 연수를 통해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은 뒤 12년가량 이 지역에서 근무한 아프리카 전문가다.


현지 최선임 직원이 현안 논의하고 해결

동원은 스카사 직원들의 실적을 계량화하고 우수 직원을 ‘상급 노동자’로 지정해 별도 인센티브(수당)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경영 방침을 바꿨다. 실적이 뛰어난 근로자의 급여는 평균의 두 배를 넘어섰다.

관건은 업무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진다는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느냐였다. 이 대표는 “예전에는 최선임 관리자인 한국인 주재원 밑에 현지인 총괄 관리자가 있고, 그 아래 관리자와 감독자가 있는 4단계 구조였다”며 “부문별로 실무 관리자와 감독자만 남기고 윗선을 없애 현지인 실무자들이 곧바로 대표에게 보고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국인 주재원은 2선으로 물러나 코치 역할에 집중했다.

또 주요 부문 최선임 직원들로 ‘시니어 위원회’를 구성해 자체적으로 공장 내 현안을 논의하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게 했다. 구조조정을 포함해 노사 간 이견이 큰 현안도 시니어위원회에서 직접 해결하도록 했다. 노조위원장이면서 전기·설비 담당 선임 직원으로 이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카베 가예는 “가령 이슬람과 기독교 휴일 중 어느 날 출근해야 할지를 정하는 문제같이 근로자들에게 민감한 이슈를 직원들이 직접 논의 안건으로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네갈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원 주재원들도 발로 뛰었다. 동원은 하나의 가족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원(ONE) 스카사’ 활동을 전개했다. 주재원들은 2인 1조로 현지 직원들의 경조사를 챙겼다. 사내 축구 동아리를 만들고 토너먼트 대회를 열어 현지 직원들과 함께 뛰면서 스킨십도 나눴다. 여직원들을 위해 구내식당에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파티도 열었다.

직원 복지도 개선했다. 100세파프랑(195원)이란 상징적인 가격만 받고 조식과 중식을 제공하고 출퇴근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두 가지 모두 세네갈에서 최초로 도입된 직원 복지다. 이제 스카사는 세네갈에서 손꼽힐 정도로 직원 처우가 좋은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생산성이 대폭 개선됐다. 1인당 순살(로인·Loin) 처리량이 시간당 24㎏에서 40㎏으로 늘었다. 이직률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그만두는 사람을 제외하면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 직원들이 고향에서 친구나 친척들을 데려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 생산 분야에서 일하는 모다 라이는 “몇 해 전 김재철 회장이 공장을 방문했을 때 각 공정을 하나하나 살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이후에도 현지 직원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신경을 써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세네갈 정부 입장에서도 스카사는 ‘동원 프로젝트’로 불리는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다. 대형 제조 업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 어업에서 한발 나아가 수산물 가공 분야를 발전시키는 주요한 모델로 보고 있다. 2015년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재철 회장을 따로 만나기도 했다. 우마르 가예 세네갈 해양수산부 장관은 “어업은 세네갈에서 60만 명이 일하는 주력 산업”이라며 “스카사는 어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선도하는 회사라 정부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