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전자상거래 업체 토코피디아 본사에서 직원들이 회사 마스코트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전자상거래 업체 토코피디아 본사에서 직원들이 회사 마스코트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푸른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편의점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반갑게 부른다. 그는 녹색 헬멧을 걸어둔 오토바이를 앞에 세워놓고 관광객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에는 배달·운송 서비스 기업 고젝(Go-Jek) 애플리케이션 화면이 떠 있다. 남자는 “인도네시아의 우버(Uber) 택시죠”라고 웃으며 오토바이를 바라봤다.

그는 고젝 운전사다. 고젝은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호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버와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점은 자동차가 아닌 오토바이로 서비스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한 곳인 자카르타 등 인도네시아 현지 상황을 고려한 서비스다. 고젝을 이용하면 차가 막혀도 이리저리 빠져나가 고객이 원하는 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2010년 20대의 오토바이로 시작한 이 기업은 지금 인도네시아 50개 도시에서 40만 명의 운전자와 계약해 고객을 맞는다. 구글(12억달러·1조3500억원), 중국 텐센트‧징둥닷컴(공동 투자 12억달러), 미국 사모펀드 워버그, 벤처캐피털 세콰이어(공동 투자 5억5000만달러·6160억원) 등 전 세계에서 투자를 받았다.

지금은 사업을 다각화해서 오토바이택시뿐 아니라 음식 배달, 쇼핑, 집 청소 대행 등 10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젝의 기업 가치는 약 1조4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20대의 오토바이로 시작해 수십억달러의 자금을 끌어모은 고젝처럼 인도네시아의 신생 기업들은 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체 동남아시아 국가에 기업 가치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 이상으로 평가받는 기업인 ‘유니콘’은 7개가 있는데, 그중 4개사가 인도네시아 기업이다. 동남아시아 유니콘 중 절반 이상이 인도네시아에 몰려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 유니콘은 △스마트폰으로 택시 등 배달 서비스를 하는 고젝 △온라인 쇼핑몰 토코피디아(Tokopedia)와 부까라빡(Bukalapak) △온라인 티켓 판매 사이트 트래블로카(Traveloka) 등 모두 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한 기업들이다.

이렇게 큰 성공을 이룬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교통 체증이나 1만700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지형적 특성 등 사회의 비효율을 온라인 시스템을 이용해 해결하려는 도전으로 시작했다.

정부의 규제 폐지와 적극적 지원으로 이제는 수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인도네시아의 대표 기업으로 커가고 있다.

트래블로카가 대표적인 경우다. 트래블로카는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의 항공편 이용에 불편을 겪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시작된 기업이다.

인도네시아가 수많은 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이동을 위해 비행기를 자주 타는데 항공사는 많고 항공사 간의 경쟁 체계가 복잡해 어떤 항공편을 이용해야 하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또 대부분 항공사가 PC에서 신용카드 결제를 요구하고 있었는데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고(보급률 3%), PC 보급률도 떨어져 항공편 예약이 상당히 어려웠다.

트래블로카는 이런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신용카드가 없어도 스마트폰 은행 계좌 이체로 결제할 수 있는 지불결제 시스템을 만들어 서비스했다.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동남아시아 6개국의 항공권과 호텔을 한 개의 애플리케이션에서 예약할 수 있도록 했다.

2012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설립 후 5년 만인 지난해 기업 가치 10억달러를 넘어섰다. 세계적인 여행 사이트 익스피디아도 지난해 8월 트래블로카에 3억5000만달러(약 4000억원)를 투자했다.


전자상거래 물품에 파격적인 면세 혜택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기업 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적극적 규제 완화와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자상거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8월 ‘2017~2019, 3개년 전자상거래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에는 △세제 지원 △소비자 보호 △전문인력 육성 및 교육 △물류 및 보안 대책 등 산업 지원 방안이 포함됐다. 또 전자상거래를 위한 전용 보세물류창고를 지정해 운영하기로 하고, 이 창고를 이용하는 전자상거래 물품에 대해 부가가치세와 특별소비세를 면제했다.

이와 함께 1000억루피아(약 75억2000만원) 이상 투자하는 해외 기업에 자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지분을 100% 인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적극적인 해외 자본 유치로 전자상거래 산업을 키워나가려는 의도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전자상거래를 통해 인도네시아를 아시아의 디지털 에너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 의지를 밝혔다. 로드맵 발표 후, 알리바바와 소프트뱅크가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기업 토코피디아에 투자를 결정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기업의 도전으로 전자상거래 산업은 인도네시아 경제의 활력을 끌어올리는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시장은 2013년 7억5000만달러(약 8400억원)였지만 2016년에는 18억5000만달러(약 2조740억원)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인도네시아의 온라인 쇼핑객 수도 지난해 3500만명에 달해 전년보다 46%가 늘었다.

구글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2025년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460억달러(약 51조5600억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전자상거래 관련 기업의 창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전자상거래 관련 스타트업은 1750개사(2018년 4월 기준)로 미국, 인도, 영국에 이어 세계 4위다.

전자상거래 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맥킨지는 2022년까지 전자상거래 산업이 26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줄 것으로 분석했다. 인도네시아 노동자의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전자상거래가 확대되면서 거래 물품 등을 배달하거나 생산, 제조하는 관련 기업들이 함께 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맥킨지는 “전자상거래가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인도네시아 경제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허유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자카르타무역관 차장은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으로 전자상거래 산업이 현지 중산층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고 연간 5%대의 높은 경제성장률(GDP)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며 현지 온라인 플랫폼들이 지속적으로 활성화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