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헬프대 회계학과, 런던대 경영관리학과, 고려대 국제대학원 수료 / 사진 박준형 인턴기자
양정철
헬프대 회계학과, 런던대 경영관리학과, 고려대 국제대학원 수료 / 사진 박준형 인턴기자

지난해 12월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제54회 무역의날 기념식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수출 성과를 드높인 국내 대기업, 중견·중소기업 대표들을 격려하고 앞으로 중소기업 중심의 수출 산업 지원정책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기념식 행사장 제일 앞줄에 삼성전자, SK, CJ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대표들이 자리한 가운데 중소기업 대표로 첫 줄에 앉은 주인공은 화장품 업체 ‘메종’의 양정철(35) 대표였다. 양 대표는 창업 1년 만에 동남아시아 화장품 수출 1억5000만원을 기록한 공로를 인정받아 행사 며칠 전인 11월 30일 첫 수출 성과를 낸 기업들에 주어지는 ‘수출 첫걸음상’을 받았다. 이듬해인 올해에는 수출 20억원을 달성했다. 양 대표는 청년 창업 기업인 대표 자격으로 기념식에 참석했고, 양 대표와 문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은 문 대통령의 기념사와 함께 청와대 SNS를 장식했다.

메종은 2016년 10월 문을 연 화장품 스타트업이다. 창업 약 2년 만에 동남아시아 시장에 화학 성분을 첨가하지 않은 천연 화장품(미백크림, 마스크팩 등) 14만 개를 팔아 매출 20억원을 기록했다. 직원은 1명에서 올해 20여 명으로 늘었다. 프로젝트 개념으로 일하는 연구진이 총 5명이다. 올해 1월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에도 법인을 세웠다.

총성 없는 전쟁터 같은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서 이 작은 스타트업이 빠르게 자리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양 대표는 “마치 창업을 하자마자 ‘벼락 성공’을 거둔 것 같지만 창업하기 전 시장조사만 10년, 기술진 섭외만 2년을 했을 정도로 사업을 철저히 준비했다”며 “내년부터 미국·유럽 시장에 화장품 수출을 시작하면 매출 100억원 달성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대표는 말레이시아 헬프대에서 회계학을, 영국 런던대에서 경영관리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사모펀드사와 함께 3년간 주식·펀드 투자업무를 했다. 창업 전 양 대표의 경력에선 화장품의 ‘화’ 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대기업도 고전하는 글로벌 화장품 시장에 ‘화장품 무경력’의 양 대표가 뛰어든 배경이 무엇일까. 이 질문으로 양 대표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양정철(오른쪽에서 네 번째) 메종 대표가 제54회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양정철(오른쪽에서 네 번째) 메종 대표가 제54회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화장품 회사를 만든 이유가 뭔가.
“졸업 후 3년간 주식·펀드 등 투자업무를 하면서 자본금을 모았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움직이는 세계 경제 흐름을 보고 남의 돈을 굴리는 일이 아니라,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3년간 일하면서 유망하면서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사업 분야가 무엇인지 항상 고민했다. 평소에 관심 있었던 화장품과 발전 가능성이 큰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를 접목시켜 보자고 생각했다.”

화장품 시장은 진입장벽이 낮고 경쟁이 치열한데.
“화장품 시장에서 메이크업이나 색조화장품 분야는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고 진입장벽이 낮다. 많은 업체들이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빠르게 사라진다. 메종은 이런 시장이 아니라 처음부터 생체에 적합한 의료용 소재로 만든 화장품 시장을 타깃으로 했다. 검증된 효능의 의약성분을 화장품과 접목한 코스메슈티컬(화장품의 영어 ‘cosmetic’과 의약품의 영어 ‘pharmaceutical’을 합친 말) 제품을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메종의 미백과 주름 개선 기능성 화장품인 블랑 크림·마스크팩은 트러플, 흰목이버섯, 상황버섯, 동충하초 등 5가지 버섯 추출물과 아데노신 성분 등을 함유한 제품이다. 이 제품이 올 한 해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14만 개가량 팔렸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기능성 화장품으로 시장을 두드리면 성공할 것이라고 봤다. 또 암환자를 위한 저자극·고기능성 제품 등 시장이 작아 대기업이 뛰어들지 않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고가 원료를 쓰면 비용이 많이 들지 않나.
“이윤이 덜 남더라도 시장에 없는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려고 했다. 이윤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재구매’라고 생각한다. 화장품이 강조하는 기능성을 소비자가 실제로 경험해야지만 재구매가 일어난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려면 재구매를 많이 하는 충성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메종은 진귀한 원료를 써서 굉장히 좋은 제품을 만든다. 예를 들어 미백 기능을 위해 화학원료인 나이아신아마이드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메종은 천연원료인 알파-비사보롤을 쓴다. 알파-비사보롤은 캐모마일이나 브라질에서 자생하는 카데이아 나무에서 얻을 수 있는 천연 미백 원료로 항염과 진정효과가 뛰어나다. 다른 화장품 회사들도 천연원료를 쓰면 더 좋은 기능을 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단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화학원료를 쓴다. 대기업보다 더 좋은 화장품을 만들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봤다.”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거의 2년간 화장품을 잘 만들 수 있는 연구진을 섭외하기 위해 광주 전남권에 있는 대학을 발이 닳도록 다녔다. 화학, 향장학, 약학, 생물학 분야 교수를 찾아다녔고, 꼭 함께하고 싶은 분을 설득하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도 마다하지 않았다. 연구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상업화된 제품을 만드는 데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좋은 화장품을 사용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해보자고 설득했다. 전라남도 화순군 바이오특구에서 공장단지를 임대해 생명과학연구소를 만들고, 약 1년간 10억원을 투자해 화장품에 넣을 생체의료 소재를 개발했다.”

양 대표는 국내외 마스크팩, 크림 등을 안 써본 게 없다. 하루에 마스크팩을 100장가량 써보면서 시트 크기, 앰풀 제형, 사용 후 느낌 등을 기록하고 분석했다. 또 크림의 발림성과 흡수감을 파악하고 성분을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양 대표가 직접 만든 화장품 데이터베이스는 메종 제품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됐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공략한 이유는.
“가장 자신 있는 시장을 먼저 뚫겠다는 생각이었다. 말레이시아 헬프대에서 5년 동안 회계학을 전공했고, 창업을 준비하면서 5년 가까이 동남아시아 시장을 연구했기 때문에, 합치면 10년간 시장조사를 한 셈이다.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동남아 소비자가 어떤 화장품을 좋아하는지, 여기서 어떻게 마케팅을 해야 성공할지 등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에서는 한류의 인기가 상당하다. 한국 화장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기 때문에 적절한 채널에 마케팅만 잘해도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앞으로의 목표는.
“종합 홈케어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로 대표 브랜드명을 ‘블랑(불어로 ‘하얗다’는 뜻)’에서 ‘닥터메종(의사+집)’으로 바꿨다. 고객의 ‘피부 주치의’가 되겠다는 뜻이다. 내년부터는 화장품 위주였던 제품군을 이너 뷰티(식품 등으로 피부 관리) 제품, 미용 기기 등으로 확대한다. 천연물로 생체 의료 소재를 만들어 세계가 인정하는 제품을 선보이는 바이오 헬스케어의 선두 기업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