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냉동 컨테이너에서 숨진 채 발견된 39명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르 반하(30)의 아버지 르 민 투안이 10월 27일 베트남 응에안성 집 앞에서 손자를 안고 울고 있다. 사진 AFP연합
영국 냉동 컨테이너에서 숨진 채 발견된 39명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르 반하(30)의 아버지 르 민 투안이 10월 27일 베트남 응에안성 집 앞에서 손자를 안고 울고 있다. 사진 AFP연합

10월 23일 오전 1시 40분(이하 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동쪽으로 약 32㎞(20마일)가량 떨어진 에식스주(州) 그레이스의 워터글레이드 산업 단지에서 39구의 시신이 담긴 화물 트럭 컨테이너가 발견됐다. 사망자는 남성 31명, 여성 8명이었는데, 이들은 최저 영하 25℃까지 내려가는 냉동 컨테이너 안에서 동사했거나 질식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사망자의 국적과 사망 경위 등은 최종 확인되지 않았다. 현지 경찰은 일명 ‘브리티시 드림’을 쫓아 영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했던 베트남인이었을 가능성에 주목하며 조사를 진행 중이다.

부이 타인 선 베트남 외교부 차관은 최근 베트남 정부 웹사이트를 통해 “영국 정부가 에식스 트럭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망자의 신원 확인 협력을 위해 서류 4개를 베트남 공안부에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현재까지는 희생자 가운데 베트남 국민이 포함돼 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고 했다. 베트남 당국은 사건 현장에 외교관을 파견하고, 실종 신고를 한 베트남 가족의 DNA 시료를 채취하는 등 영국 측과 협력하고 있다.

영국과 베트남 현지 언론은 베트남 국민의 실종 신고 소식을 전하며 이번에 발견된 시신이 일자리를 찾아 영국 밀입국을 시도한 베트남 젊은이였을 정황을 제시하고 있다. 온라인 매체 VN익스프레스는 10월 27일 기준 베트남의 24가구가 이번 비극으로 자녀가 희생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당국에 실종 신고를 했다고 보도했다. 실종 신고를 접수한 곳은 모두 베트남 중북부 지역인 응에안성(14가구)과 하띤성(10가구)이다.

베트남 시민 커뮤니티 ‘휴먼 라이츠 스페이스’의 호아 응히엠은 컨테이너가 벨기에에서 영국으로 향할 때, 베트남 여성인 팜 티 트라 마이(Pham Thi Tra My·26)가 숨을 쉴 수 없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어머니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트라 마이 가족에 따르면 트라 마이는 애초 베트남에서 중국으로 건너갔고, 이후 프랑스를 통해 영국에 들어가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밀입국 알선 조직에 3만파운드(약 4500만원)를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BBC는 지난해 불법 경로로 영국 국경을 넘으려다 적발된 이들 중에 베트남인이 일곱 번째로 많았다고 보도했다. 영국으로 들어오는 불법 이민자의 상위 10개 국적을 보면 에리트레아, 이라크, 아프간, 이란, 알바니아, 수단, 베트남, 파키스탄, 시리아, 에티오피아로 베트남을 제외하곤 대부분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국가다.

일간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위성항법장치(GPS) 분석 결과 컨테이너가 10월 15일 모나간을 떠나 북아일랜드로 넘어갔다가 다시 아일랜드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더블린에서 출발해 웨일스 홀리헤드를 통해 영국 본토에 들어왔고, 16일 저녁 유럽 대륙으로 넘어갔다. 컨테이너는 프랑스 덩케르크와 릴, 벨기에 브뤼주 등으로 옮겨 다녔고, 17~22일 영국과 유럽 대륙을 두 차례 오간 것으로 나타났다. 덩케르크는 영국으로의 밀입국 시도가 빈번한 프랑스 칼레 지역에서 40여 분 거리에 있다.

영국 경찰은 현재까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모두 5명을 체포했다. 북아일랜드 크레이개번 출신인 모리스 로빈슨(25)은 자신의 대형 트럭에 해당 컨테이너를 적재했다가 사건 발생 당일 체포됐다.


연결 포인트 1
죽음도 불사하고
베트남 떠나는 청년들

‘포스트 차이나(post China)’로 불리며 고속 성장을 이어 가고 있는 베트남이지만, 극심한 빈부 격차로 불법 이민을 시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영국 냉동 컨테이너 사건이 알려진 후 베트남 내 실종 신고가 집중된 응에안성과 하띤성은 대표적인 빈곤 지역으로 꼽힌다. 응에안성의 경우 1인당 국내총생산(GDP) 1200달러(약 140만원)로 베트남 전체 평균의 절반에 그친다. 하띤성은 2016년 대만 회사인 ‘포모사 철강’이 페놀, 청산가리 등 독극물을 바다에 무단 방류하는 바람에 어족 자원이 고갈되고 관광 산업이 몰락하는 등의 시련을 겪었다. 이런 이유로 이 지역에서는 거액의 빚을 지더라도 영국 등 유럽으로 밀입국해 출로를 모색하려는 젊은이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결 포인트 2
反 이민 정책,
거대한 암시장을 만들다

영국 냉동 컨테이너 사건을 계기로 조직적이며 거대한 밀입국 알선 관련 암시장의 문제점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이민을 막는 봉쇄정책이 강화하면서, 입국 경로가 막힌 이들이 컨테이너 같은 위험한 방법을 찾아 나선 것이 비극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밀입국 알선업이 거대한 산업으로 그 규모를 키우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유로폴은 지난해 트럭에 숨어 영국으로 밀입국한 인원이 8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프랑스나 벨기에 국경에서 검문에 적발된 수만 3만5000여 명에 이른다. 영국 ‘더 타임스’는 유로폴의 자료를 인용해 유럽 내 밀입국 알선업 규모를 연간 46억파운드, 약 7조원으로 추산했다.


연결 포인트 3
불법체류자 노동 착취
현대판 노예 논란

유럽 내에서는 ‘현대판 노예’에 대한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유럽 반(反)노예제도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8년 사이 최소 3187명의 베트남인이 ‘잠재적 밀수 피해자’로 영국에 밀입국했다. 이 단체는 밀입국자들이 ‘인간 밀수업자’에게 고액의 현금을 지불했고, 불법 체류 상태에서 대마초 농장이나 세차장, 네일 마사지 살롱에서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으며 일부는 매춘을 강요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 영국 국가범죄국에 따르면 영국은 유럽에서 알바니아에 이어 인신매매 의혹이 가장 많이 제기되는 나라다. 지난해에만 ‘현대판 노예’ 사건이 700건 이상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영국과 베트남 정부는 인신매매 단속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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