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슬림 여성이 1월 26일 인도 뭄바이주에서 열린 시민권법 개정안 반대 시위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EPA연합
한 무슬림 여성이 1월 26일 인도 뭄바이주에서 열린 시민권법 개정안 반대 시위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EPA연합

인도 정부가 ‘반(反)무슬림(이슬람교도)법’이라는 지적을 받는 시민권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인도의 새 시민권법은 지난해 12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올해 1월 10일(이하 현지시각) 정식 발효됐다.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 등 이웃 3개국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인도로 간 불법 이민자에게 인도 시민권 신청 자격을 주는 내용을 담았다. 문제는 불교·기독교·힌두교·자이나교·파르시교·시크교 등 비(非)무슬림 이민자만 시민권 신청 자격을 주고, 무슬림 이민자는 제외했다는 점이다. 인도 정부는 “무슬림은 종교 박해를 받는 소수 민족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2억 명에 달하는 인도 국적의 무슬림이 종교 차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며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인도 인구 14억 명 중 힌두교도가 80% 수준으로 가장 많고, 이어 무슬림이 14%를 차지한다.

시민권법 개정에 불을 지핀 반정부 시위는 아삼주와 우타르프라데시주, 뉴델리 등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인도 당국은 시위가 극심한 일부 지역에서 인터넷 통신망을 차단하고 집회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8일까지 인도 당국의 강경 진압 탓에 최소 2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우타르프라데시주에서만 1100명 이상이 체포, 5500명 이상이 억류됐다. 반정부 시위는 해를 넘겨 계속됐다. 뉴델리 소재 명문대인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에서는 1월 5~6일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교수 40여 명이 복면을 쓴 괴한에게 피습돼 다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한 시위 현장에서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법 개정을 주도한 아미트 샤 내무부 장관의 인형이 불탔다.

인도의 종교 차별적 법안에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1월 22일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에 중심을 둔 인도의 정책은 히틀러의 인종 정책을 연상시킨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무슬림이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인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도 “인도는 세속주의를 내세우는 나라이기 때문에 종교에 따라 시민권 획득 기회를 막아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인도 출신 사타이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는 최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지금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서 무척 슬픈 것이다”며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비난 여론에도 모디 총리는 강경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22일 뉴델리에서 열린 집권 여당인 인도국민당 행사에서 “시민권법 개정은 무슬림 인도 국민에게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는다”며 “야당이 나를 권좌에서 밀어내기 위해 술책을 쓰고 있다”라고 야당을 탓했다. 말레이시아 총리가 인도의 새 시민권법을 지적하자 인도 정부는 말레이시아산 야자유 수입 제한으로 응수하기도 했다.


연결 포인트 1
‘힌두 민족주의’에 힘준 모디

모디 총리와 인도국민당은 2014년 10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은 뒤 국민 다수인 힌두교도를 우선시하고 무슬림 등 다른 소수 민족을 배제하는 힌두 민족주의를 강화했다. 모디 총리는 2014년 총선 승리 직후 힌두교 성지로 꼽히는 우타르프라데시주 바라나시를 찾았고, 공문서에 힌디어를 사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힌두교 중심의 인도 통합을 주장한 초대 부총리인 사르다르 파텔의 거대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2019년 총선에서 압승하자,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를 한층 더 노골화했다. 시민권법 개정에 앞서 무슬림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잠무 카슈미르의 자치권을 박탈했고, 아삼주에서 불법 이민자를 색출하겠다며 시민명부 등록 제도를 시행했다. 인도국민당의 모태는 힌두 민족주의 단체인 ‘민족의용단’이다. 이 단체는 인도가 힌두교 국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디 총리는 8세 때 이 단체에 가입했으며 이 단체의 후원으로 정치적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모디 총리가 2019년 12월 22일 뉴델리에서 열린 인도국민당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모디 총리가 2019년 12월 22일 뉴델리에서 열린 인도국민당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연결 포인트 2
다가오는 델리 선거…민심은?

인도국민당은 지난해 5월 연방의회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이후 경기 부진 지속, 시민권법 개정 탓에 민심이 돌아서고 있다. 최근 인도 최대 경제 도시 뭄바이가 속한 마하라슈트라주, 동부 자르칸드주 등의 주의회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하면서 사실상 재집권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월 6일 치러지는 델리 국가수도지구 주의회 선거는 모디 정부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이 선거에서 승리를 거둬야 향후 주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델리 국가수도지구는 연방직할지로 인도 행정체제상 정식 ‘주(州)’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델리주’ 또는 이 지역 내의 작은 행정구역의 이름을 따 ‘뉴델리’로도 불린다. 델리 주정부는 현재 아르빈드 케지리왈 주총리가 이끄는 좌파 성향의 지역 정당 보통사람당이 장악하고 있다. 케지리왈은 2013년 선거에서 정당 연합을 통해 과반 의석을 확보, 주총리에 올랐다. 보통사람당은 2015년 델리 주의회 선거에서 70개 의석 가운데 67개를 싹쓸이했다.


연결 포인트 3
경제 성장 둔화…실업률도 최고치

인도 통계청은 2019~2020 회계연도(매년 4월 시작)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회계연도의 6.8%보다 낮은 5%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망이 현실화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탓에 3.1%의 성장률을 기록한 2008~2009 회계연도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가 된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성장률이 전년도 6.9%에서 2%대로 급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모디 총리가 2014년 취임 후 해외 기업의 제조공장을 유치하자는 ‘메이드 인 인디아’ 등 대대적인 제조업 육성 정책을 폈지만, 실제 성과는 미미했다. 인도 경제는 이미 소비 위축, 유동성 악화, 투자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반정부 시위가 번지면서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3분기 인도의 경제 성장률은 4.5%로 2013년 이후 분기 기준 최저치, 지난해 실업률은 8.5%로 45년 만에 최고치였다. 모디 정부는 최근 금리 인하와 각종 경기 부양책을 내놨지만,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