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인처럼 부자다.” 오래전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문구라고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은 토지와 초원을 자랑하는 아르헨티나는 1880년 언저리부터 산업화가 시작됐는데, 그 원동력은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해외 자본의 유입이었다. 이에 힘입어 그 당시부터 근대적 공장이 세워지는 등 탄탄대로의 경제성장을 구가하게 된다. 1910년 전후로 세계 5~7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고 당시 선진국의 징표인 지하철도 1913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건설된다. 우리나라가 지하철을 1974년에 서울에서 처음 개통한 것과 비교하면 거의 60년의 격차가 발생한다.
1916년 아르헨티나 최초 보통선거에 의해 당선된 이폴리토 이리고옌(Hipolito Yrigoyen) 대통령이 포퓰리즘의 원조로 등장한다. 그는 국가가 철도와 항만 등을 국유화하여 저렴하게 공급하고 근로자의 임금도 두 자릿수 인상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사는 전략을 구사한다. 더불어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높은 환율(수입품이 비싸지게 하는 효과가 있음)과 수입 대체 산업화라는 지렛대를 활용해 보호무역주의에 나선다. 수입품에 높은 장벽을 치니 곧바로 국내 업체가 땅 짚고 헤엄칠 정도로 쉽게 영업이 가능해지고 만들기만 하면 팔려 산업이 번성하는 듯했다. 사람은 어릴 때 보호가 필요한 것처럼 산업도 약할 때 보호해야 나중에 강해져 국가에 기여할 것이라는 매우 희망적인 이론적 배경을 등에 업고 ‘유치산업보호론’이라는 멋있는(?) 간판도 달았다.
그러나 보호의 틀 속에서 경쟁이 없어지면서 많은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환율 등 높은 수입장벽은 원자재 조달을 어렵게 만들면서 기존에 경쟁력을 확보했던 상품 수출도 얼마 지나지 않아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이는 무역수지 적자에 따른 외화 부족으로 연결되고, 산업 보조금 증가로 재정도 고갈되는 악순환에 빠지면서 아르헨티나는 경제 대국에서 빈곤층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거명되는 수렁에 빠져들었다.
득표에는 유리, 경쟁력 퇴보 부메랑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에 유행하면서 좌파나 우파 정부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의 일환으로 보호무역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자유로운 무역이라는 협력 구도를 통해 경제를 부흥시키고 코로나19를 신속하게 극복해야 하지만 실제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백신 생산 및 개발, 그리고 그 원자재 수급을 두고 기술협력과 생산시설의 효율적인 활용이 절실한데 이를 인위적인 장벽으로 막는다면 보건 위기 타파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손대는 것이 국산품을 장려하는 것이다. 관세 부과 등으로 수입 장벽을 높이고 국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선언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를 반대할 국내 정치 세력이 없으니 표의 득실에 대한 고민도 필요 없다. 아주 획기적인 아이디어인 것처럼 자국산 사용(미국의 ‘바이 아메리칸’ 정책 등)이 강조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럼, 현재와 같은 글로벌 무역 구도에서 이런 보호무역주의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까? 최근 미국의 언론 매체는 ‘트럼프는 물러났지만 트럼프주의는 살아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새롭게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포퓰리즘이 미국 사회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새로운 행정부가 발족과 함께 행정명령에 서명한 40여 개 항목 중 무역통상 분야는 ‘바이 아메리칸 정책’이 유일하다. 보호무역주의 색채를 띤 정부라고 규정하는 것은 시기상조이지만 모두가 트럼프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에 무게를 두는 배경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자국 제품 우선 사용 정책이 바이든 행정부의 트레이드 마크인 동맹과의 협력과 기조가 맞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철회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2018년부터 미국은 중국산 제품의 자국 내 범람을 막기 위해 최고 25%에 해당하는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고 기술이전을 강제하는 등 불공정 행위를 일삼고 있다는 핑계를 내세웠지만 자국산 제품의 소비촉진을 통해 일자리를 늘려 보겠다는 기대가 섞여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 조치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코로나19가 창궐한 지난해만 보면 수천억달러 제품에 대해 관세율을 높였음에도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는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2019년에는 중국으로부터 수입액이 16.7%나 줄어 규제 효과가 가시화되는 듯했으나 지난해에는 3.7%만 줄어드는 데 그치면서 감소를 고대하던 무역수지 적자액은 3000억달러(약 343조원)대를 그대로 유지했다. 중국 상품에 매긴 고율 관세는 중국 기업이 아닌 미국의 소비자가 부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수입액이 줄지 않았으니 수입 대체를 통한 일자리 창출도 상당 부분 희망사항에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
한발 더 나아가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232조 조치(미국 안보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이유로 쿼터나 관세 인상을 통해 수입규제를 강화한 것)로 외국보다 미국 업체들이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 원자재는 관세로 인해 수입가격이 높아져 미국 기업의 제조 원가가 올라가 대외경쟁력 제고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내 적지 않은 기업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을 정도다. 바이 아메리칸 정책도 얼핏 보면 자국 산업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렴한 제품을 사용하지 못해 재정에 부담이 되고 관련된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연결돼 오히려 미국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경제 위기 이후 포퓰리즘 기세
최근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포털사이트에는 흥미로운 분석 결과가 게재됐다. 한 국가의 통치자가 본인의 통치 방식과 이념이 아닌 대중의 견해에 초점을 맞춘 포퓰리즘 정책의 비율을 60개국에 대해 분석하여 1900년부터 2018년까지 흐름을 그래프로 보여줬다. 이에 따르면 1930년대 대공황과 2010년대 금융위기 이후에 포퓰리즘 기세가 매우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금융위기 이후로 좌우파를 구분하지 않고 포퓰리즘 기세가 더욱 높아져 2018년에는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배척보다는 협업이 절실하다는 압박을 모두에게 가한다. 당장의 정치적 인기를 위해 보호무역주의라는 포퓰리즘 유혹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글로벌 경제 회복의 속도를 좌우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 연구는 포퓰리즘을 채택한 국가들은 경제 성장이 매년 1%포인트 정도 여타 국가에 비해 둔화했으며 장기적으로는 그 부작용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